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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야 경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 미디어에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에 저항해 기꺼이 내 한몸 던지겠다”며 “함께 연대해 세상을 바꾸자”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순식간에 영웅이 되고, 영웅과 뜻을 같이하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간다. 하지만 이런 사태의 배후에는 실업난에 밥줄을 잃지 않기 위해 절박한 사람들과 그들을 이용해 돈과 힘으로 공작과 음모를 꾸미는 세력이 있다.  
 
혹시 2018년 대한민국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뉴욕을 배경으로 한 창작뮤지컬 ‘존 도우’ 이야기다. 게리 쿠퍼 주연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고전 영화 ‘존 도우를 찾아서’(1941)를 무대화했다. 거의 한 세기 전의 이야기지만 공연장은 현장감이 넘친다. 보기 드물게 무대 위로 올라온 16인조 빅밴드가 공연 20분 전부터 관객을 그 시절 뉴욕의 재즈클럽으로 타임슬립시키고, 커튼콜 이후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함께 하며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살리에리’ ‘파리넬리’ ‘라흐마니노프’ 등 음악을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을 여럿 제작해온 HJ컬처의 신작답게 음악에 공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라흐마니노프’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이진욱 음악감독이 30년대 미국 감성을 살려 작곡한 중독성 있는 재즈풍 넘버들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빅밴드의 풍성한 사운드가 140분 동안 뮤지컬과 콘서트의 경계를 넘나든다. 원캐스트로 열연하는 존 도우 역 정동화를 비롯해 고음 위주의 고난도 넘버들을 골고루 소화하는 조연들도 탄탄한 가창력을 갖췄다.  
 
대공황기 뉴욕.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언론사 ‘불레틴’도 재벌에 팔려 ‘뉴 불레틴’으로 이름을 바꾼다. 신문기자 앤 미첼은 자극적인 기사를 선호하는 새로운 경영진에게 하루아침에 해고통지를 받자 홧김에 ‘가짜뉴스’를 작성한다. ‘존 도우’라는 실업자가 타락한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청 옥상에서 투신자살하겠다는 예고장을 보내왔다는 그녀의 가짜뉴스에 사람들의 관심이 치솟자 앤은 해고를 모면한다. 대신 전직 야구선수인 실업자 윌로비를 ‘분노와 저항의 상징’인 가짜 ‘존 도우’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대국민 사기극은 뜻밖에 ‘어려운 세상에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서로의 이웃이 되어주자’는 자발적인 ‘존 도우 운동’으로 발전해 간다.
 
난세에 영웅을 기다리는 군중들, 점점 더 자극적인 뉴스를 생산하는 저널리즘 경쟁과 거기 편승해 뱃속을 채우려는 정재계 등 원작 자체가 동서고금의 인간세상을 그리고 있지만, 무대는 좀 더 현재를 사는 우리를 비춘다. 소극적인 ‘존 도우’ 윌로비에게 “세상을 바꾸자”고 부추기는 게 여주인공 앤이고, 편집국장 등 주요인물도 여성으로 바꿨다.  
 
대사에도 공들인 각색의 흔적이 역력하다. “내가 아니라 세상이 문제다.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바로 잡겠다” “정당하게 얻은 기회를 부당해고로 뺏어가는 놈들에게 ‘그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혼자 싸우는 건 어렵다. 모두 함께해야 경기가 시작된다” 등,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을 깨알처럼 투영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이런 구호들이 과연 정치와 무관할 수 있을까. 윌로비는 평범한 사람들의 ‘존 도우 운동’이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고 믿지만, 세상은 그리 순수하지 못하다. 후원자를 자처하던 언론사주와 시장은 선거가 가까워오자 속내를 드러내고, ‘영웅’의 출현이 돈과 힘에 의한 ‘공작’이었음이 밝혀지자 시민들은 허탈해 한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존 도우 운동’의 시작이다. ‘존 도우’라는 이름이 한국식으로 ‘아무개’ ‘홍길동’ 쯤 되는 것처럼, 윌로비도 모든 시민도 어느덧 가짜가 아닌 진짜 ‘존 도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란 얘기다. 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공동체의 아름다운 연대가 대공황기 사람들의 고단한 현실을 달래주던 동화에 불과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요즘 우리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HJ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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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