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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리를 용서할 수 있을까

“OO샘에게 한 번 찍히면 아웃이에요. 무조건 하라는 대로 해야 돼요.”  
 
예고에 진학한 딸의 새 전공 선생님에 관한 풍문을 들었다. 죄진 것도 없는데 가슴이 뛴다. 중학교 시절 전공 선생님과의 안 좋은 기억 탓이다. 거두절미하고 “이러려면 전학시키라”는 말에 납작 엎드려야 했다. 좁은 예술계 바닥에서 ‘찍히면 죽는다’는 게 진리다. 지금까진 그랬다.  
 
 
조정석·김재욱 등 호화 캐스팅으로 오랜만에 다시 제작돼 화제가 되고 있는 피터 쉐퍼의 명작 연극 ‘아마데우스(4월 29일까지 광림아트센터사진)’는 20여 년전 이미 본 작품이지만, 지금 보니 사뭇 다르게 와닿았다. 당시엔 화자인 살리에리의 시선에 설득당해 ‘범접할 수 없는 천재를 질투한 준재의 비극’에 꽤나 공감했었다. 그런데 ‘위계에 의한 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진 지금은 ‘권력자’ 살리에리의 폭력적 행위에 더 신경이 쓰인다.
 
 
 
 
‘궁정 예술감독’이라는 최고 지위를 목전에 둔 궁정 작곡가 살리에리는 어느날 혜성처럼 나타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질투와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자유로운 영혼의 모차르트가 자신을 깔보는 듯한 태도에 복수심까지 불붙고, 결국 지위를 이용해 응징에 나선다. 주변에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폄훼해 얘기하고 일자리를 주지 않는 방식이다. 당시 음악가들은 아무리 공연이 성공해도 렛슨을 해야 생계가 유지됐는데, 그걸 쥐고 있는 게 궁정 음악가들이었다. 제아무리 모차르트라도 업계 권위자 살리에리의 추천이 없으면 굶어야 했단 얘기다.  
 
살리에리가 권력을 과시하며 콘스탄체를 추행하려는 장면에선 무릎을 쳤다. 남편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유혹에 마지못해 추행을 용납하는 콘스탄체에게서 ‘미투’ 피해자들이 보여서다.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가해자는 내가 속한 세계의 왕이었다”고 고백한다. 연출가에게, 교수에게 휘둘려야 했던 건 단지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위해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면 권력은 폭력이 되지 않았을 터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모차르트가 권력 앞에 좌절했을까. 만일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의 추천이 아니라도 렛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아름다운 그의 음악을 더 많이 향유하고 있지 않을까.  
 
“배가 고파야 좋은 예술이 나온다”는 말도 있긴 하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들이 후대에 길이 남을 좋은 예술가가 된 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그들이 돈과 힘에 기대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기 때문이다. 스승의 후광이 아니라도, 줄을 잘 서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예술생태계 구축이 절실한 이유다.  
 
평창올림픽 때 논란의 중심이 됐던 노선영 선수가 한 방송에 나와 한 얘기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사회가 메달을 딴 선수에게만 주목하지 않는다면 차별이나 특혜 없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메달을 못 딴 선수의 노력이 결코 덜하지 않다”는 요지였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인식의 전환은 예술계에도 시급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의 숭고한 예술혼 따위 없으면 어떤가. 만드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도 함께 행복한 것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이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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