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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터치로 그려내는 살랑살랑 여심

뮌헨과 함부르크, 파리를 오가며 살고 있는 케라 틸(Kera Till·37)은 요즘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일러스트레이터 중 하나다. 지난 10년간 마카롱으로 유명한 프랑스 브랜드 라뒤레(Ladurée)를 비롯해 에르메스·샤넬·라 메르·파버 카스텔·리모와·메르세데츠 벤츠 같은 명품 브랜드와 손잡고 상큼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여성과 패션, 음식과 액세서리에 관한 자신만의 감각을 경쾌한 터치와 명랑한 파스텔 톤으로 그려내 여심을 자극하는 게 장기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그녀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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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나.  
“12년 전인 2006년 영국의 럭셔리 온라인 숍 네타포르테(Net-a-Porter)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아트 디렉터에게 내 그림을 보여줬는데 매우 흥미로워 했다.”  
 
원래 전공이었나.  
“대학에서는 정치학을 공부했다. 취미가 드로잉이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꾸 스케치를 하는 게 내 버릇이었다. 포토샵도 독학으로 터득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잘 풀렸나보다.  
“웬걸. 열심히 그렸지만 버는 돈은 아주 적었다. 처음 2~3년은 생활을 못할 정도여서 부모님의 도움으로 살다가 잡지에 연재하고 브랜드 작업을 시작하면서 가까스로 숨통이 트였다.”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있을텐데.  
“7~8년 전쯤 브랜드와 아트 간에 컬래버레이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패키징 작업을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를 많이 찾았다. 내 커리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전기였다.”  
 
명품 브랜드와는 어떻게 처음 시작했나.  
“2008년 세계화 전략을 내세운 라뒤레에서 브랜드 패키징을 맡게 됐다. 그 뒤로 10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라뒤레에는 어떻게 발탁됐나.
“좀 무모했다. 마케팅 팀에 무작정 이멜을 보냈다. 답변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반년이 지나 연락이 왔을 때 깜짝 놀랐다. 상젤리제 작은 오피스로 가보니 직원도 2~3명에 불과했다. 주말마다 가서 뉴스레터를 만들고 패키징 드로잉을 했다.”  
 
파버 카스텔과도 인연이 깊다고 했다.  
“지난해 새로 회장이 된 찰스 그라폰 파버 카스텔 백작 부부와 친분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브랜드를 젊게 해줄 방법을 찾고 있던 찰스가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이번 방문도 한국 파버 카스텔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샤넬 이벤트에도 참가했다.  
“함부르크에 아주 유명한 오페라극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지난해 12월 6일 샤넬 패션쇼가 열렸다. 칼 라거펠트가 함부르크 출신이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오고 싶어했다. 내가 패션쇼를 보고 펜과 마카로 재빨리 드로잉한 뒤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독일 보그가 실시간에 온라인으로 퍼뜨리는 식이었다. 소셜 미디어 덕에 좋은 경험을 했다.”  
 
여러 브랜드와 동시에 일하는 비법이라면.  
“한 브랜드와 계약을 맺으면 같은 업종은 절대 하지 않는다. 지역도 겹치지 않게 한다. 그것은 신뢰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비싸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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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는 어떻게 하나.
“일단 내 스타일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물론 컴퍼니만의 시그니쳐가 있다. 그런 특징이나 색깔을 살리는 것 역시 중요하다. 브랜드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내는 게 재미다. 파버 카스텔 같은 경우 오래된 역사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많다. 또 GQ 같은 잡지가 남성적 느낌으로 해달라고 하면 원하는 대로 해준다. 아이덴티티가 없는 새 브랜드의 경우 같이 만들어내기도 한다.”  
 
유명 브랜드들이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 중 왜 당신을 선택한다고 보나.  
“글쎄, 내가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어떤 면에서 먹혀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나는 항상 새로운 트렌드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드로잉 도구를 항상 갖고 다니며 재미있는 것을 스케치하고 이것을 인스타그램에 바로 올려 반응을 확인한다. 내가 생각한 것과 사람들의 반응이 엇갈릴 때 아주 흥미롭다.”
 
한국 파버 카스텔 행사장에서

한국 파버 카스텔 행사장에서

정치학도가 일러스트레이터로 변신한 배경에는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인인 그의 아버지는 뮌헨 시립미술관에서 40년간 디렉터로 지내다 은퇴했고 프랑스 사람인 어머니는 여전히 아트 딜러로 일하고 있다. 오빠는 파리에서 독일 작가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4년 전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만났다는 남편은 독일의 유력 매체인 디 자이트(Die Zeit)의 주간지 문화에디터다. “남편은 신문사가 있는 함부르크 아파트에, 나는 뮌헨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함부르크는 북쪽, 뮌헨은 남쪽에 있어 서로 다른 나라 같다. 마감에 쫓겨 사는 인생은 나도 남편도 마찬가지”라고 웃었다.  
 
일 말고도 개인적으로 많이 그리나.  
“물론이다. 크리스마스 카드나 캘린더를 내 브랜드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난 내 작업을 사람들과 공유한다. 나는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상업적 아티스트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것을 그리면 재미있을까 하는 것이 내 관심사다.”  
 
사람들이 뭘 좋아하던가.  
“예를 들어 유럽에서 음식은 더 이상 관심 분야가 아니다. 한국에 와 보니 요리와 음식에 여전히 관심이 많더라. 패션 트렌드도 마찬가지다. 이제 사람들은 웬만한 옷은 다 갖고 있지 않나. 요즘은 모두 뭔가를 경험하는 데 자신의 자원을 쏟아붓는 것 같다. 여행이나 쿠킹이나 드로잉 같은 것이다. 유럽에서는 트렌드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 할아버지 시대는 필요한 물건을 사모으는 시대였다면 우리 세대는 물건 사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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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와서는 뭘 했나.  
“한글박물관도 가고 DDP도 다녀왔다. 인사동에서 미술재료도 샀다. 채식주의자인데 진관사에서 먹은 식사도 최고였다. 한국은 내가 가본 나라 중 가장 젊은 나라다. 중년인 유럽과는 다른 느낌이다. 인천공항 제2청사도 멋있었고 대한항공 트레이닝 센터도 인상적이었다. 대한항공과도 새로운 작업을 할 것 같다.”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항상 연습하라. 매일 연습하라.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성공했나? 어떻게 멋진 직업을 가졌나? 난 드로잉 외엔 하는 게 별로 없다. 그것 외에 다른 취미가 없다. 하지만 내 일을 사랑한다. 여행도 따로 시간을 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출장을 와서 잠깐 말미를 얻어 다른 것을 본다. 그게 전부다. 정말 프로가 되려면 자신이 하는 일을 파트타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쉬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드로잉 하는데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1분에 그려낼 수 있지만, 그렇게 그릴 수 있기까지 전 인생이 걸렸다고.”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케라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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