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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코인판 만한 먹잇감 없어 … 다단계 ‘선수’들 달려든다

[SUNDAY 탐사] 암호화폐의 그늘, 다단계 사기
12일 열린 비트클럽네트워크의 특강. 강사는 출처 없는 보도를 보이며 ’투자할 때“라고 말했다.

12일 열린 비트클럽네트워크의 특강. 강사는 출처 없는 보도를 보이며 ’투자할 때“라고 말했다.

전국의 다단계 ‘선수’들이 암호화폐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불법 사금융 일제단속을 벌이고 있는 검찰이 지난해 7월~올해 2월 수사 중이거나 종결한 암호화폐 관련 범죄 86건 중 73건(약 84.9%)에 다단계 사기 및 유사수신 혐의가 적용됐다. 익명을 요청한 대검의 한 관계자는 “기소한 122명 중 구속된 50명 대부분이 이미 유사수신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라며 “다양한 다단계 판매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이 큰돈을 노리고 코인업계로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2700억원대 피해가 발생한 마이닝맥스 사건의 피의자도 대부분 다단계 사업 경력자였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한태화 인천지검 부부장검사는 “최상위 사업자 대부분이 소비재 다단계 사업을 경험했거나 다년간 보험·화장품 등 방문판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명퇴금 3억 날린 50대 전직 여교사
 
지난해 27년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난 이모(51·여)씨는 명예퇴직금 3억원을 허무하게 날렸다. 대당 300만~370만원이라는 이더리움 채굴기 103대 값을 마이닝맥스에 넣었다. 초기에 수익금 등의 명목으로 받은 이더리움은 대부분 암호화폐 투자를 대행해 준다던 또 다른 다단계 업체 ‘이더트레이드’에 전송했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 3BTC(13일 기준 업비트 거래소 시세로 약 3100만원)를 ‘에이치닥(Hdac·일명 현대코인)’ 프리세일(초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ICO 예정인 코인의 일부를 한정된 사람이나 기관에 판매하는 것)에 넣었다. 지난해 5~7월 경북 구미의 다단계 업자 신모씨 등의 꾐에 빠져 덜컥 돈을 내줬다. 하지만 마이닝맥스와 이더트레이드는 곧 사라졌고, 마지막 희망인 에이치닥은 거래를 거간한 김모(36)씨가 마이닝맥스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받을 길이 막혔다.
 
이씨 사례는 불법 다단계 조직이 채굴 대행, 프리세일 모집, 투자 대행 등 다양한 형태로 암호화폐 유통의 전 경로에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경우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에어비트클럽’ ‘마이닝맥스’ ‘비트클럽네트워크’ 등은 채굴기 투자를 명목으로 하는 다단계 업체다. 이미 사이트를 폐쇄하고 사라져 경찰이 추적 중인 ‘이더트레이드’ ‘컨트롤파이낸스’ ‘비트리젼’ ‘트레이드코인클럽(TCC)’  등은 각종 코인에 투자를 대신해 고수익을 돌려준다던 다단계 업체다.
 
3만5000여 명에게 1552억원을 뜯어낸 ‘헷지비트코인’ 등 아예 블록체인 기술과 무관하게 홈페이지상 숫자와 로고만 존재했던 사기 코인들도 다단계 유통망을 타고 있다. 더구나 시장에서 거래되거나 거래를 앞둔 일부 ‘정상적인’ 암호화폐의 프리세일 과정에도 다단계 유통 조직이 개입했음이 확인되고 있다.
 
암호화폐 관련 다단계 피해는 중복 피해자와 중복 가해자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의정부에서 혼자 사는 김모(71) 할머니가 사채를 얻어 마련한 1억여원은 채굴 사기업체인 에어비트클럽과 마이닝맥스에 연이어 빨려들어갔고, 부산에 사는 군 장교 출신 박모(57)씨는 6000만원 이상을 같은 다단계 사업자에게 속아 비트리젼과 마이닝맥스에 연이어 넣었다.
 
한때 채굴 사기 업체의 전산 책임자였던 윤모(51)씨는 “잘 속는 사람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보험 약관 대출, 카드깡까지 유도해 마지막 1원까지 빨아들이는 게 불법 다단계 업자들의 특징이다. 피해자에게 ‘피해를 회복할 기회’라며 새로운 아이템을 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더트레이드와 컨트롤파이낸스 사건의 피해자 측을 대리하고 있는 최종화(법무법인 정동국제) 변호사는 “컨트롤파이낸스는 이더트레이드의 중상위 사업자 일부가 사업 모델을 복제해 또 다른 사기를 저지른 케이스”라며 “상위 사업자들이 구속되거나 도주해도 남은 이들이 이름만 바꿔 같은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관련 불법 다단계를 수사한 수사관과 검사들은 “암호화폐는 다단계 업자들의 좋은 먹잇감”이라고 입을 모았다. 왜일까.
 
대박 신화들의 존재가 첫 번째 요인으로 꼽힌다. 2009년 1월 도입될 당시 100원에도 못 미쳤던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해 최고 2492만원까지 오르는 동안 거부(巨富)들의 탄생 소식이 미디어와 SNS를 타고 퍼졌다. 한 다단계 업체의 중간 사업자로 활동 중인 보험설계사 신모(42)씨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미래가 밝다는 점만 강조하면 복잡한 다단계 보상 플랜을 설명하지 않아도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거래의 속성이 다단계 유통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도 한 이유다. 법무부의 한 간부는 “현재 암호화폐 시장은 먼저 사들인 사람의 이익이 뒤따라 산 사람들의 손해에 의존하는 구조”라며 “다단계 사업의 기본 속성이 암호화폐 거래 구조에 내재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각기 다른 사용가치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앞세워 투자자를 모집한 3000여 종의 암호화폐 중 실제로 그 계획을 실현해 살아남는 건 전체의 1~2%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대로면 대다수 암호화폐 거래가 밑돌을 빼 윗돌을 괴다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수익 배분 왜 늦나” 물으면 “믿고 기다려라”
 
기술적으로 난해하고, 확인도 어렵다는 게 다단계 사업자들에겐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한다. 지난 12일 한 다단계 업체의 특강에 처음 다녀온 김모(42·사업)씨는 “두 시간 강연 중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절반도 안 된다. 주변에 앉아 계신 어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호응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충무로에서 인쇄업을 하며 매주 다단계 업체의 강의에 참여해 온 한 50대 남성은 “‘나 믿고 1000만원만 묻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고 했다.
 
암호화폐 관련 다단계 업체들은 대부분 본사나 채굴장이 해외에 있고, 외국인이 CEO라고 주장하며 신비주의 전략을 쓰고 있다. 회원이 “수익 배분이 늦어지는데 본사 누구에게 물으면 되냐”고 물으면 “회장과는 최상위 사업자들만 대화할 수 있다. 믿고 기다려라”고 답하는 식이다.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주범인 마이닝맥스 사건의 한 피해자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해외에서 개발되고 확산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인이 기획해 우리나라의 다단계 업자들과 손잡는 다국적 사기도 적지 않지만 최근엔 외국인 대역 배우를 명목상 대표로 내세우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다.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본사로 제시하고 외국인을 앞세우면 사기꾼 입장에서는 피해자들의 검증과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면서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게 된다는 게 검경 수사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소비재 다단계와는 달리 보관 및 유통 비용이 전혀 들지 않고 현금이 계좌로 오가는 유사수신처럼 계좌 내역을 투자자들에게 내보일 필요가 없다는 점도 다단계 업자들이 느끼는 암호화폐만의 매력이다.
 
한태화 검사는 “채굴기 다단계의 경우 사업장을 실사한다 해도 비전문가들이  실제 투자한 만큼의 채굴이 이뤄지고 있는지 알기란 어렵다”며 “전산 조작을 통해 홈페이지나 앱상에만 실제 사업이 순항하는 것처럼 꾸미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임장혁(팀장)·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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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