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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테이아

김수영의 행복어 사전
행복의 거주지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대개 그렇게 생각합니다. 몸이 조금 피곤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마음이 따뜻해지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맛난 음식도 불편한 사람과 함께 해야 하면 그만 피하고 싶습니다. 따뜻한 마음에 행복이 거하고 슬픈 마음은 불행을 찾아갑니다. 행복하기 위해 우리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

그런데 문제는 이 마음이란 것이 분명히 내 마음인데도 내 마음처럼 좀처럼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이 마음은 갖가지의 감정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 감정들이란 본래 우리의 의지로 잘 통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감정을 가리키는 고대 그리스어 단어인 파토스(pathos)라는 말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단어는 동사 파스케인(paschein)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동사는 어떤 일을 겪는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말하자면 수동태의 동사죠. 파토스, 그러니까 감정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동적으로 겪음으로써 생겨납니다. 기쁨과 분노와 실망과 슬픔은 내가 스스로 지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 대해 절대적으로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갑자기 우리 내면으로 돌진해 들어와서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만들어낸 결과들입니다. 사랑이 어찌 처음부터 내가 만들어낸 것일까요. 나는 그저 저 아름다움의 힘이 일으킨 파장에 몹시 흔들렸을 뿐입니다.
 
때로 이 마음의 동요는 참으로 곤혹스럽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 마음을 잘 살피고 잘 다스리는 일이 중요한데, 이 연약한 마음은 그저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기만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만일 마음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내 완전한 지배 아래에 두면 어떨까요. 내 내면을 강하게 단련시켜서 외부의 사건과 상황의 변화가 내 감정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면 행복의 길은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로마 제국을 휘어잡았던 스토아학파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는 마음을 갈망했습니다.
 
명상록

명상록

그래서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행복의 이상적 형태를 ‘아파테이아(apatheia)’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어 ‘a’와 파토스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념이 없는 상태, 감정이 없는 상태를 지칭하죠.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완전한 자기 지배의 상태입니다. 여기서 나는 내 마음의 온전한 주인입니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55~135)는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김재홍 역, 서광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억하라. 당신은 잔치에 와 있는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 어떤 음식이 당신 앞에 왔는가? 손을 뻗어서 적절한 당신의 몫을 취하라. 그냥 지나가는가? 놔두어라. 아직 오지 않았는가? 그에 대해 욕망하지 말고, 그것이 올 때까지 다만 기다리라 (…) 지위에 대해서도 재물에 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행동하라.” 맛난 음식이 담긴 접시를 옆으로 돌리면서 적절한 내 분량만큼만 더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앞선 이가 욕심을 한껏 부려 많은 음식을 덜어냈다면 나라고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죠. 또한 음식이 그냥 나를 무심히 지나쳐 가거나,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누구라도 화가 많이 날 겁니다. 그러나 모두 아마도 원래 내 소유가 아니었을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다른 아름다운 선물들이 부지런히 피어나 우리 주변을 맴돌게 됩니다. 거기가 내 마음이 굳건히 자리를 지켜야 할 나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죠.  
 
또 다른 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는 『명상록』에서 바위처럼 살라고 충고합니다. 바위는 매 순간 파도에 맞고 파도에 젖어 살아가지만 자기 자신을 강인하게 지켜냅니다. 파도는 바위에 무수히 부딪히며 그렇게 힘없이 사라져갈 뿐입니다. 마음은 지키는 자의 것이고 가꾸는 자의 것이며 다스리는 자의 것입니다. 행복의 거주지는 아파테이아입니다.
 
김수영 한양여대 교수 ksypb@naver.com
연세대 대학원 철학과,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플라톤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땄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로도스 대표를 지냈다.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SeriCEO 철학 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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