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낙도 옛 등굣길 걷고, 신라의 숨결 느끼고

3월 10일 개장한 규슈올레 사이키ㆍ오뉴지마 코스. 돌다리가 아니라 방파제다. 아래로 바다가 넘나든다.

3월 10일 개장한 규슈올레 사이키ㆍ오뉴지마 코스. 돌다리가 아니라 방파제다. 아래로 바다가 넘나든다.

규슈올레는 대한민국이 수출한 최초의 관광 콘텐트다. ‘올레’ 브랜드부터 간세·리본 등 제주올레의 상징을 물려받은 일본 규슈(九州) 지역의 트레일(Trail·걷기여행길)이다.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가 코스 선정에도 직접 관여한다. 규슈올레를 주관하는 규슈관광추진기구가 ㈔제주올레에 해마다 100만엔(약 1000만원)씩 주고 있다.

 
규슈올레는 2012년 2월 29일 사가(佐賀)현 다케오(武雄市) 코스가 개장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19개 코스가 열렸다. 올해도 두 개 코스가 개장했다. 지난 10일 오이타(大分)현의 사이키·오뉴지마(佐伯·大入島) 코스가, 11일 후쿠오카(福岡)현의 지쿠호·가와라(筑豊·香春) 코스가 각각 문을 열었다. 이로써 규슈올레는 21개 코스가 됐다. 전체 길이는 243.1㎞다.
 
제주올레와 규슈올레는 ‘자매 길’ 사이다. 그러나 성격은 판이하다. 제주올레는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나, 규슈올레는 지역마다 10㎞ 내외의 독립 코스를 둔다. 애초부터 지역 명소를 잇는 관광 콘텐트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규슈올레는 코스 대부분이 기차역에서 시작해 기차역에서 끝나며 신사·온천·사찰 등 명소를 들른다. 가벼운 산책을 곁들인 일본 여행을 작정한다면 규슈올레는 마침맞은 선택이다. 규슈올레 신규 코스 두 곳을 소개한다.
 
 학교 가는 길 - 사이키·오뉴지마 코스
사이키ㆍ오뉴지마 코스는 산을 두 개 넘는다. 정상에 간세가 서 있다. 제주올레를 본뜬 이정표다.

사이키ㆍ오뉴지마 코스는 산을 두 개 넘는다. 정상에 간세가 서 있다. 제주올레를 본뜬 이정표다.

오이타는 온천의 고장이다. 벳푸(別府)·유후인(由布院)·구로카와(黑川) 등 유서 깊은 온천 고장이 오이타현에 몰려있다. 온천의 명성이 자자하다 보니 오이타현의 오른쪽이 태평양과 만난다는 사실은 종종 잊는다. 일본 최초의 온천 도시 벳푸도 항구 마을이다.
 
오이타현 맨 남쪽 해안마을이 사이키시다. 규슈에서 가장 면적이 큰 시라지만, 인구 7만여 명의 한갓진 지방 도시다. 한때는 번창했다는 조선업이 쇠락의 길에 접어든 지 오래, 도시는 한가롭다 못해 허전하다. 변변한 명소도 없어 한국인은커녕 일본인의 발길도 뜸하다.
 
사이키 항구 앞바다에 길게 누운 섬이 오뉴지마(大入島)다. 둘레 17㎞에 불과한 섬의 이름이 거창하다. 섬을 돌아서 항구를 들락거렸던 사이키 어민의 정서가 밴 듯하다. 이 섬에 규슈올레 20번째 코스가 들어섰다. 조선업이 호황일 때는 주민 수가 5000명이 넘었다는데 지금은 700명도 안 된다. 섬 주민 대부분이 앞바다에서 굴·진주 따위를 키우며 산다. 말하자면 사이키·오뉴지마 코스는 낙도 올레길이다.
 
항구에서 보면 섬은 벽처럼 서 있지만, 하늘에서 보면 호리병 모양이다. 남북으로 기다란 섬을 올레길이 종단하듯이 들어섰다. 길의 절반은 해안을 따라 이어지고, 나머지 절반은 섬 복판의 산 두 개를 넘는다. 길이 10.5㎞의 트레일에 난이도 ‘중·상’을 매긴 까닭이다. 해발 200m 언저리라 해도 섬 산행은 힘들다. 해발 0m에서 산행이 시작되거니와 섬 산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경사가 심하다. 체력이 달리면 산 하나는 안 넘어도 된다. 해안을 따라 대체 코스를 조성했다.
 
길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산길 대부분이 50년쯤 전에 끊긴 학교 가는 길을 이은 것이어서다. 섬 주민들이 지난해 넉 달 동안 500만 엔(약 5000만원)을 들여 옛 등굣길 일부를 복원했다. 올레길의 절반 정도가 옛 등굣길이다. 해안을 따라 도로가 깔리면서 산을 넘는 등굣길도 자연스레 지워졌다. 그 사연 많은 길이 올레길로 거듭난 것이다. 길은 새로 내는 것이 아니다. 잊힌 옛길을 되살리는 것이다. 하여 길을 걷는 것은, 길을 걸었던 누군가의 흔적을 되새기는 일이다.
오뉴지마의 유일했던 학교. 지금은 문을 닫아 휑하다.

오뉴지마의 유일했던 학교. 지금은 문을 닫아 휑하다.

섬에서 유일한 학교가 섬 남쪽에 있었다. 과거형 시제를 부리는 이유는 이 학교도 지난해 3월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코스에서 떨어져 있는 학교를 찾아갔다. 아이들은 떠났어도 학교는 그대로였다. 텅 빈 운동장을 하릴없이 거닐었다. 바람에 그네가 흔들렸다.
 


 신라의 흔적 - 지쿠호·가와라 코스
지쿠호ㆍ가와라 코스는 광산촌에 들어서 있다. 올레길이 터널을 지나고 철길을 따라 이어진다.

지쿠호ㆍ가와라 코스는 광산촌에 들어서 있다. 올레길이 터널을 지나고 철길을 따라 이어진다.

 
규슈는 일본 열도를 이루는 큰 섬 4개 중에서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섬이다. 하여 규슈는 예부터 한민족과 교류가 활발했다. 백제 무령왕이 태어난 섬이라는 전설이 규슈 북쪽 가라쓰(唐津) 앞바다의 가카라시마(加唐島)에 전해온다. 규슈 남쪽의 화산은 아예 이름이 한국악, 가라쿠니다케(韓國岳)다. 가야 유민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집결했던 도시도 가라쓰였다. 그 유적을 따라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가 들어서 있다. 조선 도공이 끌려와 뿌리를 내린 땅도 여기 규슈다. 아리타(有田)·이마리(伊万里) 같은 도자 마을, 도자 가문 심수관(沈壽官) 모두 규슈에 있다.
 
신라는 없었다. 뻔질나게 규슈를 드나들었어도 신라와 얽힌 역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신라의 흔적을 찾았다. 후쿠오카(福岡)현 내륙 깊숙한 곳에 들어선 지쿠호·가와라 코스가 신라의 숨결을 찾아가는 길이다.  
 
지쿠호는 후쿠오카 내륙 산간지역을 가리키는 전통 지명이고 가와라가 행정 지명이다. 가와라는 마치(町)다. 우리나라의 읍·면 단위로, 가와라 인구는 1만 명이 겨우 넘는다. 지쿠호·가와라 코스는 강원도 정선 같은 내륙 산골 에 들어선 시골길을 닮았다.  
 
굳이 정선을 떠올린 것은 가와라가 광산으로 이름난 고장이어서이다. 특히 사이도쇼(採銅所) 광산의 구리는 역사가 깊다. 8세기 이 광산에서 캐낸 구리로 거울을 만들었고, 이 거울은 지금도 일본 천황 가문을 받드는 신사 우사진구(宇佐神宮)에 모셔져 있다. 가와라에서 신사가 멀지 않다.  
 
지쿠호ㆍ가와라 코스는 한갓진 산골 마을을 구석구석 헤집는다. 마침 매화가 만발했다.

지쿠호ㆍ가와라 코스는 한갓진 산골 마을을 구석구석 헤집는다. 마침 매화가 만발했다.

광산촌 사이도쇼의 무인 기차역에서 지쿠호·가와라 코스가 시작한다. 1915년 개통 당시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정감 어린 간이역이다. 간이역을 출발한 올레길은 산을 넘고 사찰을 들르고 마을을 지나 가와라역까지 이어진다. 지쿠호·가와라 코스는 사이도쇼역과 다음 기차역인 가와라역을 잇는 트레일이다. 직선을 버리고 곡선을 택해서 올레길은 길이가 11.8㎞나 된다. 반듯한 기찻길을 구불구불한 올레길이 여러 번 지나다녔다. 난이도는 ‘중’에 속한다. 마침 만개한 매화가 길을 환히 비췄다.  
 
가와라 신사 마당의 거대한 바위. '산왕석'이라고 쓰여져 있다.

가와라 신사 마당의 거대한 바위. '산왕석'이라고 쓰여져 있다.

가와라역 직전에 가와라 신사를 들렀다. ‘신라국의 신이 건너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8세기 유적이다. 4∼5세기 신라인이 구리 제련 기술을 전파했다는 역사의 현장으로 신사 규모가 상당하다. 마당에 놓인 커다란 바위 앞에서 정성껏 머리를 조아렸다.  
 
 규슈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