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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감독 "단일팀 신기하고 놀라운 한 달 … 또 한다면 실력대로 뽑아야"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새러 머리 감독
새러 머리(30·Sarah Murray)라는 캐나다 여성을 누가 알았을까.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전격 결성되기 전까지 말이다. 미국 미네소타대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인 새러 머리는 2014년 9월 한국 여자 대표팀을 맡았다. 그는 차근히 팀을 성장시켰고, 개최국 자격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존재감이 없던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단일팀으로 변신하는 순간, 올림픽 이슈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가 됐다. ▶정치적 결정에 의한 단일팀 구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파격적인 지원 ▶한국 선수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 ▶이낙연 총리의 “어차피 메달권 아닌데” 발언 ▶북한 선수들과의 합동훈련 ▶1·2차전 0-8 참패 ▶북한 응원단과 김일성 가면 논란 등등…. 남북 단일팀은 5전 5패(2득점·28실점)로 올림픽을 마쳤다.
 
한 달도 안 지났는데 벌써 오래 전 일같다. 그 속에서 또렷하게 기억되는 인물은 작고 당찬 머리 감독이었다. 일본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그를 지난 12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 4년 임기 연장을 보장받은 머리 감독은 이날 대표팀을 다시 소집해 첫 훈련을 했다.
 
그는 “오키나와의 한적한 섬에서 남자친구·지인과 함께 서핑을 했다. 바다거북이와 함께 수영하는 소원도 이뤘다”며 발음이 재미있는지 “고부기(거북이), 고부기”를 연발하며 웃었다.
 
새러 머리 감독이 하키 퍽을 높이 올렸다 스틱으로 받아내는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새러 머리 감독이 하키 퍽을 높이 올렸다 스틱으로 받아내는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올림픽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일본전에서 올림픽 첫 번째 골을 넣었을 때다. 아이스 밖에선 남북 선수들이 하나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매우 흥미로웠고 경기보다 더 특별했다. 처음 모여 비디오분석 할 때 남한 선수들이 북한 선수들에게 통역과 용어 설명을 해 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단일팀이 되면서 목표가 바뀌었나.
“처음에는 ‘후회를 남기지 말자’였는데 어느 새 선수들 말이 ‘이기고 싶다. 플레이오프 나가고 싶다’로 바뀌었다. 그런데 북한 선수 12명이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2월 4일 스웨덴과 평가전 때 경찰이 에스코트했는데 이쪽에선 단일팀 반대, 저쪽에선 지지 시위를 했다. 경기도 하기 전에 심리적으로 많이 지쳤다. 처음 두 경기는 압박감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목표는 같았지만 결과는 달라졌다. 북한 선수 잘못도 우리 선수 잘못도 아니다.”
 
단일팀에 대해 처음 들은 게 언제인가.
“지난여름 그런 소문이 돈 적이 있었다. 그런데 ‘유니폼은? 장비는?’ 하고 하나하나 따져 보니 말이 안 됐다. 선수들한테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1월 중순에 미국에서 ‘큰일 났다(big problem)’는 코치 전화를 받았다. 그때까지 문체부나 체육회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인천공항에 내리니 기자들이 몰려왔다. 비로소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구나’ 싶었다.”
 
단일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컸는데.
“올림픽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우리 선수들을 보호해 주려는 게 고마웠다. 4년간 준비한 선수들에게 ‘어차피 여자 하키는 메달권 밖’이라고 말해선 안 되는 거였다. 당황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누구도 우리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선수들이 팀에서 잘 지냈고, 끝났을 때 모두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단일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북한 선수들끼리 따로 조를 편성하려다가 기존 조에 섞었는데.
“미니게임을 하면서 선수들을 평가했다. 북한 선수들의 체력과 움직임이 예상보다 좋았다. 우리 선수들도 활력을 얻는 것 같았고, 남북 선수끼리 케미스트리(융합)도 좋았다. 그래서 섞기로 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숫자가 많아 두 파트로 나눠 연습을 했다. 나중엔 게임조-비게임조를 갈라야 했는데 못 뛰는 선수들 동기부여가 고민이었다. 남측 선수들에게는 ‘기회를 뺏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결국 골리 1명을 뺀 모두가 한 게임씩은 뛰었다.”
 
북한 박철호 감독은 어땠나.
“처음에는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코치실에 자리를 마련해 줘도 오지 않았다. 자주 만나고 얘기하면서 편해졌다. 박 코치는 매우 오픈된 사람이었다. 훈련 일정, 트레이닝 기법 등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다.”
 
선수들 화합에 특히 신경 썼는데.
“쉬는 날 경포대 소풍 가서 소녀들처럼 깔깔거리면서 친해졌다. 폐막식 뒤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과 햄버거로 파티를 했다. 북측 선수들이 ‘평양 오면 냉면 100그릇 사 주겠다’고 했다던데 나한테는 그런 말 안 했다(웃음). 친선 경기가 있으면 평양에 갈 수 있겠지만 정치적 발언 같은 건 피했으면 한다.”
 
남북 선수들이 하나 되는 과정을 외국인으로서 본 느낌은.
“난 역사도 잘 모르고 남북한 사이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도 모른다. 다만 북한은 위험한 나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남북한 사이에 골이 엄청 깊을 줄 알았는데 똑같은 20대 스포츠인으로서 같은 음식 먹고, 같은 노래 부르고 하면서 팀으로 하나 되는 과정이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하고 놀라웠다.”
 
정치적 결정에 따른 단일팀이었는데.
“지난여름 처음 얘기 나왔을 때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 결정이긴 하지만 단일팀 안 한 것보다 하는 게 나았다. 여자 아이스하키를 전혀 몰랐던 사람도 관심 갖고 응원해 주지 않았나.”
 
앞으로도 단일팀을 하는 게 좋을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까 조심스럽다. 단일팀을 한다면 시간은 길수록 좋고, 남북한 선수 숫자는 페어(공정)하게 해야 한다. 실력에 따라 경쟁하는 게 맞다.”
 
‘머리 패밀리’는 캐나다의 유명한 하키 일가다. 아버지인 앤디 머리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명 감독 출신이고 오빠들도 NHL에서 뛰었다. 새러 머리는 대학 졸업 후에 스위스 프로 팀에서 뛰었고, 중국에서 영어 강사를 한 적도 있다.
 
아이스하키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나.
“정말 어렵다. 평창 올림픽 금메달 딴 미국 팀도 지난해 ‘남자 대표팀만큼 대우해 주지 않으면 올림픽 안 나가겠다’고 파업을 했다. 그들도 대부분 세컨드 잡이 있다. 내가 영어 강사를 한 것도 경력란에 ‘하키-하키’만 있으면 다른 직업을 찾기 어려워서다. 스위스 팀에서 뛸 때도 저축 한 푼 못 했다.”
 
대부분 대학생인 한국 대표선수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키 선수 끝나면 뭘 할 건지 생각하고, 학위는 반드시 따야 한다. 그래서 대표팀 훈련 때도 수업 빠지지 않도록 일정을 조절해 주려고 한다.”
 
한국 팀을 맡았던 2014년엔 26살이었다. ‘어린 감독’으로서 힘들었을 텐데.
“나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이 많았다. 처음엔 거리를 유지했다가 차츰차츰 다가서자고 생각했는데 베테랑 선수들이 ‘너 우리 싫어하니?’ 라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 오해를 풀고 더 가까워졌다.”
 
이름이 ‘머리’인데 머리가 좋은가.
“하하, 그런 농담 많이 들었다. 한국에 와서 이것저것 ‘머리 아파’ 할 때가 많았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5년째 접어든 서울살이에 대해 묻자 “고향 미네소타에 갔다가도 서울에 돌아오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서울은 늦게까지 여는 가게가 많고 모든 게 편리하다. 특히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역동성이 좋다”고 했다.
 
자신이 인기가 높은 이유를 묻자 “잘 모르겠다. 겸손하고 솔직한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으로 얼굴이 빨개졌다.
 
진천=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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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