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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 생존의 불가사의, 비결은 ‘트랜스포머 가시’ 덕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피부에 가시 달린 동물들
성게와 불가사리가 바글바글한 바다를 보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특히 양식하는 생물을 잡아먹는 불가사리는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불가사리들이 일주일에 조개를 50개나 먹어치우기도 한다. 상식에 어긋난다. 재빨리 움직이지도 못하는 성게와 불가사리 같은 동물이 어떻게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면서 자신은 포식할 수 있을까?
 
 


불가사리는 조개처럼 갑옷을 입고 있지만 껍데기가 작은 골편으로 연결돼 유연성이 있다. 조개와 달리 쉽게 잡아먹히지 않는 이유다.

불가사리는 조개처럼 갑옷을 입고 있지만 껍데기가 작은 골편으로 연결돼 유연성이 있다. 조개와 달리 쉽게 잡아먹히지 않는 이유다.

몸속에 가스 채워 조류 타고 물 위 이동도
성게 껍데기에는 길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나 있다. 성게의 껍데기와 가시는 조개의 껍데기와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탄산칼슘으로 만들어졌다. 성게는 가시를 세우는 것만으로도 몸을 지킬 수 있다. 가시는 방어무기이면서 몸집을 쉽게 키우는 장치다. 가시 길이만큼 포식자는 접근하지 못한다.
 
문제는 해류다. 거친 바다에서 성게는 숨을 곳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시로 덩치를 키우니 숨을 곳도 적다. 성게는 기발한 장치를 개발했다. 바로 가시를 접어서 개는 것. 방법은 간단하다. 가시와 껍데기의 연결부를 관절로 만드는 것이다. 마치 옛날 라디오 본체에서 안테나를 360도 빙글빙글 돌릴 수 있도록 만든 조인트와 같은 구조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을 쓴 일본의 생리학자 모토가와 타츠오는 안쪽 구조를 ‘캐치(catch)결합조직’이라고 이름 붙였다.
 
캐치결합조직은 성게뿐만 아니라 모든 극피(棘皮)동물에게 다 있다. 극피동물문에는 불가사리강, 거미불가사리강, 바다나리강, 성게강, 해삼강이 있다.
 
극피동물은 이름 그대로 가시(棘)가 거죽(皮)에 나 있다. 작은 골편들이 캐치결합조직으로 얽어매어진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불가사리는 조개처럼 몸 바깥쪽에 탄산칼슘 뼈로 된 갑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조개와 달리 불가사리는 쉽게 잡아먹히지 않는 동물이다. 조개의 껍데기는 하나의 커다란 뼈로 이루어졌지만, 불가사리의 껍데기는 작은 골편으로 나뉘어 있으며 골편끼리는 캐치결합조직으로 결합되어 있다. 작은 조각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유연성이 좋아서 제법 빠르다.  
 
극피동물은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등장해서 지금도 북극해를 제외한 지구의 모든 바다에 살고 있다. 바다나리는 마치 산호처럼 완전한 고착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느리게나마 이동한다.  
 
극피동물은 오(五)방사대칭이며 이동성이 작지만, 극피동물의 모든 유생(幼生)은 좌우대칭이며 자유생활을 한다. 이것은 자유생활을 하고 좌우 대칭 체계를 가진 어떤 조상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극피동물의 성체는 모두 5각형이다. 성게는 둥근 모양처럼 보이지만 가시를 전부 제거해 보면 입 부분과 몸체가 5각형이다. 불가사리의 다리는 다섯 개다. 해삼도 몸통을 잘라 보면 단면이 5각형이며 입 주변도 5각형이다.
 
좌우대칭에서 오방사대칭으로 진화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첫째는 극피동물의 조상형에서 촉수 다발이 오각형이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오각형 구조가 비틀리는 힘을 받을 때 반대편 쪽의 틈에 쪼개는 힘이 덜 가해진다는 것이다. 극피동물의 조상 동물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을지는 아직 모른다.
 
초기의 극피동물들은 입을 위쪽으로 향한 채 고착생활을 했다. 그런데 현재 남아 있는 상당수의 극피동물들은 고착생활을 하지 않으며 불가사리는 입이 아래로 나와 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단순히 몸통이 뒤집어지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체내의 많은 기관이 급속하게 재배치되어야 했다. 아직 틈을 메워 줄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진화의 막다른 골목서 돌아나온 극피동물


성게와 같은 극피동물의 가시 밑에는 캐치결합조직이 있어서 껍질을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다.

성게와 같은 극피동물의 가시 밑에는 캐치결합조직이 있어서 껍질을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다.

동물은 진화하면서 선택해야 했다. 약점을 외부로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숨길 것인가? 조개 같은 연체동물, 게 같은 갑각류, 성게 같은 극피동물은 약한 살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갑옷을 두르기로 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갑옷은 이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척추동물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약점을 외부로 드러낸 것이다. 약한 살을 외부로 드러냈지만 몸은 자유롭게 움직이게 됐다.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운동 능력 덕분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약점을 바깥으로 노출시킨 채 이동을 선택한 동물이 더 안전한 셈이 됐다.
 
고착생활을 하던 조상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후손이 생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고착생활을 하면서 퇴화된 신경계와 운동계를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착생활 생물은 진화의 막다른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극피동물은 막다른 골목에서 돌아나왔다. 신경계와 운동계를 만들지 않고서 말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잘 움직이는 쪽이거나 아예 움직이지 않는 쪽으로 디자인됐다. 극피동물은 단단하지만 껍데기 때문에 운동지향형 동물들이 잡아먹기에는 버겁고, 느리지만 움직일 수 있으므로 해조류나 조개류, 산호 또는 해저 유기물 같은 먹이를 독점한다. 극피동물은 달아나지도 않고 숨지도 않으면서 당당하게 커다란 몸집으로 바다 밑을 느릿느릿 옮겨 다닌다. 캐치결합조직이라는 작은 장치 하나가 극피동물을 수억 년 동안 버티게 만들었다.
 
극피동물은 대멸종의 위기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거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아직도 살아 있다. 뇌도 없다. 하지만 지구 바닷속을 지배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빠르고 똑똑해야만 오랫동안 생존하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장치 하나면 된다. 
 
 
이정모 서울 시립과학관장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에서 공부했다.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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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