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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직격 인터뷰] “판 움직이는 김정은 … 경제 위해 핵 포기 대담판에 나설 듯”

대북특사와 북·미대화 ‘쪽집게’ 예언한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지금 문재인-트럼프-김정은 세 지도자가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만큼 남북, 북·미정상회담은 핵 문제에 성과가 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지금 문재인-트럼프-김정은 세 지도자가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만큼 남북, 북·미정상회담은 핵 문제에 성과가 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미묘한 시기에 “대북특사가 북·미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칼럼을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다. 특사단 방북 일주일 전인 2월26일자였다. 그는 “북한이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조건하에 미국이 대화에 나설 수준의 비핵화 언명을 할 것”이라고 썼다. 딱 들어맞았다. 심지어 “대북특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에 내준 긴 면담시간(약 3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김정은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특사단을 4시간여 만났다. 특사단이 김 위원장과의 면담시간을 정해놓고 간 것도 아니었는데 ‘예언’에 가까운 분석이었다.

남북, 북·미회담 나선 건 기만 아냐
‘톱-다운’ 합의되면 성공확률 높아
제재 풀리면 북, 연 15% 성장 가능
워싱턴 가면 비핵화 의지 상징한다

김정일은 조건 달지만 김정은 달라
김정은, ‘단숨에’ 해내는 실용주의
남북 정상간 구축한 핫라인도 중요
‘악마의 디테일’ 퇴치할 수단될 것

 
14일 저녁 이 전 장관을 만났다. ‘북한 문제의 관해선 쪽집게 도사’인 그가 4월 말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어떻게 점칠지 궁금해서다.
 
어떻게 대북특사의 성과를 칼럼에서 정확히 예상했는지 궁금하다.
“김여정이 전격적으로 특사로 내려온 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김여정은 북한의 잠재적 후계자다. 북한에 특사를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 김여정이 들어왔으니 답례로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여정이 돌아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우리측 의중과 미측 동향까지 광범한 얘기를 했을 것이니, 그런 상황을 전제로 분석한 것이다. 서훈 국정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천해성 통일부 차관 모두 예전에 저와 함께 북핵문제를 갖고 밤새워 수백번 토론하고 전략을 세우던 분들이다. 제 생각과 ‘싱크로율’이 높았던 것 같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을 연구한 학자이자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안보사령탑을 맡았던 협상가다. 4년(2003~2006)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실질적으로 이끌며 북한과 직·간접으로 대화했다.
 
과거와 달리 대북특사를 5명 보냈다.
“어떤 자리에서 특사의 조건으로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에 정통하고, 대통령 최측근인 공직자여야 하며, 설득력 있는 언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서훈 원장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그런데 대미관계의 상징 정의용 안보실장, 남북관계의 상징 서훈 국정원장, 이렇게 투톱을 세운 게 절묘했다. 두 사람은 서울고 선·후배로 호흡도 잘 맞는다.”
 
특사단 방북을 전후해 한반도 상황은 상상력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급진전하고 있다. 특사단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한 여론(리얼미터, 지난 9일 전국 500명 조사)은 “환영”(73.1%)이 압도적이다. 동시에 북한에 대해선 “믿음은 안 간다”는 응답이 64.1%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도 높지만, 김정은의 진의에 대한 불신도 높은 이중적 상황이다.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전제하고 있어서다. 지금 상황은 김정은 위원장이 작년 말부터 구상하고 있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작년 11월 아직은 완성을 안 했을 텐데도 무리하게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나한테 살아갈 조건을 주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북한이 핵군축(북한만의 핵 폐기가 아닌 핵 보유국간 협상)에 나설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북한이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보상을 핵포기와 교환할 수 있다는 ‘조건부 비핵화’를 얘기했다.”
 
김정은을 믿을 수 있을까.
“개인을 믿는 게 아니라 패턴을 보는 것이다. 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김 위원장 세 사람은 한반도 문제의 주인공이다. 전혀 다른 측면에서 이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갈등상태를 종식시키고, 남북경협을 통해 북방시대로 가는 기회의 창을 열어젖히겠다는 열망이 강하다. 트럼프도 북핵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결론을 내리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판돈을 높이면서 위기를 고조시켜왔는데, 이런 식으로 전쟁없이 해결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익이다. 김정은은 야심 차다. 지금 김정은이 원하고 있는 건 경제다. 펌프에서 물이 나오게 하는 마중물을 문 대통령이 열었다. 이제 펌프질을 김정은이 하자고 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손잡고 같이 펌프질을 하겠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물이 흐르게 도랑을 쳐야 한다.”
 
김정은이 경제를 위해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우리가 워낙 핵에 몰두하다 보니 개방을 못 봤다. 노동신문을 보면 1면이 늘 경제 얘기로 출발한다. 그는 지난 2014년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경제개방을 선언한다. ‘시장경제는 체제를 위험하게 한다’고 인식하던 수준을 넘어섰다. 국제표준도 계속 강조한다. 북한은 작년 12월에 강남경제개발구를 22번째로 지정했다. 2017년의 대북제재 압박상황에서 무슨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경제개발구를 만들겠나. 대북제재 해제를 목표로 빨리 움직이겠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지 않나. 만약 대북압박과 제재만 없다면 북한경제는 연 15% 성장이 가능하다. ‘김정은을 믿을 수 있나’.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판을 움직이는 게 김정은이다. 기만을 위해 이렇게 나올 수는 없다. 기만을 통해 무엇을 얻을까. 미국의 선제공격 회피? 그 정도라면 ‘전략도발 안 하겠다’는 것 하나만 줘도 된다. 만약 기만이라면 후폭풍은 감당이 안 되지 않을까.”
 
곧 회담장에서 만날 세 지도자의 ‘케미’는 어떤가.
“작년에 문 대통령을 만났는데, 워싱턴 정통 외교문법으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돌출된 사람, 이단아’라는 평을 말씀드리니까 문 대통령이 ‘그렇지 않다. 기존문법과 달라 보이지만, 자기방식이 있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성격은 달라도 상당한 신뢰가 있다. 그간 예측이 안 된 건 김정은이었다. 김정은이 핵포기 카드를 갖고 나올지 몰랐던 것은 김정은의 리더십, 북한의 상황을 등한시해서다. 김정은 스타일은 김정일 스타일과도 다르다.”
 
김정은과 김정일의 차이는.
“김정은의 특징은 뭐든지 ‘단숨에, 단번에’다. 장기간에 천천히는 없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곧장 접근하는 스타일이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도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 여기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회담도 김정일 때는 기선제압을 위해 진을 빼고 기싸움부터 했는데 그런 게 다 없어졌다. 김정은─김정일의 가장 큰 차이는 실용주의다. 김정일은 ‘허장성세’다. 김정일은 ‘강성대국’, 김정은은 ‘강성국가’를 말한다. 이 차이는 큰 것이다. 실용주의의 예로 김정은이 2013년 장성택을 숙청했는데, 과거엔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이 처형당하면 그 사람과 관련한 사업이 모두 풍비박산 나고, 해당 분야가 초토화됐다. 하지만 장성택이 관장하던 대외경제 ,북·중경협 분야가 모두 건재했다. 장성택과 몇 명만 핀셋으로 들어내듯이 했다.”
 
4월에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5월에 북·미정상회담을 한다. 각각의 회담에서 비핵화를 어디까지 어떻게 진전시켜야 할까.
“중요한 문제다. 한반도 갈등의 축은 남북, 북·미의 대결구도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도 북·미에 의해 깨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순환적으로, 한쪽에서 하나의 대결축을 해소하면 다음 회담에서 화룡점정을 통해 대전환의 역사를 만들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먼저 얻어야할 것은 물론 조건부지만 비핵화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 이내 북·미정상회담이 또 열린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 대담판을 지어야 하니 남북정상회담에서 선물을 내줄 수 있는 것이 제한돼 있다. 결국 북핵문제에서 우리도 성과가 있고, 북·미도 대타결이 되도록 의제와 합의수준을 정부 전략가들이 섬세하게 조율해야 한다.”
 
북·미정상회담에서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까.
“김정일 시대에는 우리가 북한을 설득하고 김정일은 설득당했다. 지금은 그게 아니고 김정은이 판을 만들어 엔진을 돌린다. 트럼프-문재인 대통령이 ‘이 정도면…’하고 받는 상황이다. 미국이 받을 수 있는 ‘맞춤형 트럼프 정책’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또다른 내용이 나올지 모른다.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상징적으로 핵 생산시설이라든가 ICBM 생산시설을 조기에 불용화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이 적대시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등의 공식 언명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수순을 밟고 국제사회가 반대급부를 준다고 하더라도 대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로드맵도 짜야 하고 시간이 걸린다. 합의된 내용의 실천기간을 빠르게 하기 위해 몇 개의 실행조치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추정적 소설이지만 미국도 북한에 대한 테러지정국 지정을 조기에 해제해주는 등의 수순을 밟으면서 대타결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반도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하며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이미 2005년 9·19합의에서부터 남·북·미·중 4자가 평화협정을 논의한다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 4자협정은 아마 남북정상회담에서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 철수를 말하면 판이 깨지는데, 판을 깨려고 회담을 하자고 하겠나. 기분 나쁠 때 선전전 차원에서 주장하는 문제다.”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추측이 어렵다. 다만 가장 상징성이 있는 곳은 워싱턴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으로부터 자기존재를 인정받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김정일도 대담한 측면이 있으나 항상 조건이 붙는다. 반면 김정은식 대담성은 별로 조건이 없다. 특사단과 회담할 때도 까칠까칠한 부분은 스스로 없앴다. 만약 워싱턴을 간다면 비핵화에 대한 가장 명확한 의지 표시다. 북한이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스위스에 오래 있어 영어를 잘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에서 영어로 몇 마디 하면? 그런 걸 나름 생각할텐데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효과로 본다면 나쁜 방법은 아니다. 아니 좋은 방법이다.”
 
협상이라는 게 상황이 계속 낙관적이지만은 않을텐데.
“지금 세 지도자의 절박성이 서로 마주쳐 있다. 세 사람이 큰 틀에서 합의하면 톱-다운(Top─down) 합의다.실무자들이 버텀-업(bottom─up)으로 합의하면 ‘악마는 디테일이 있다’는 말처럼 로드맵을 만들 때 수많은 디테일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런데 최고지도자들이 정치적 승부수를 걸었으면 디테일이란 악마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퇴치할 수 있다. 거기다가 남북간에 핫라인을 두기로 했다. 트럼프─김정은 사이 문제가 있으면 문재인─김정은 핫라인으로 풀 수 있다. 디테일의 악마를 때려잡을 도깨비방망이를 갖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이종석(60) 전 통일부장관은 …
성균관대 행정학과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재학 시절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논문이 실릴 정도로 북한 연구에 두각을 나타냈다. 노무현 정부에선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재직했다. 2006년에는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NSC 상임위원장으로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한 실세였다. 북한이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강행하자 그 해 12월 통일부장관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있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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