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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18분18층…‘단역배우 자매 사건’ 피해자의 풀지 못한 분노

[JTBC 화면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JTBC 화면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지난 2009년 8월 한 단역 여배우가 드라마 스태프들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당하다 목숨을 끊은 이른바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사건을 재수사해 달라"는 글이 올라오는 등 재수사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의 '탐정 손수호' 코너에서는 '단역배우 자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코너를 진행한 손수호 변호사는 "이 사건은 미투 운동의 가늠자라며 사건 재수사를 통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범했던 대학원생이 성폭행 피해자로  
이 사건은 2004년 보조 출연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원생 A씨와 그의 여동생 B씨가 6일 간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손 변호사에 따르면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다닐 정도로 성적도 우수하고, 행동도 모범적이었던 A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명가수 백댄서로 활동하던 여동생 B씨의 권유로 드라마 단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2004년 7월 어느 날 A씨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경남 하동에서 진행된 드라마 촬영장을 찾았고, 그곳에서 단역배우 들을 관리하는 반장의 보조 역할을 하는 보조 반장 이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손 변호사에 따르면 이씨의 성추행은 한 달 뒤 성폭행으로 이어졌고, 이씨는 9월까지 두 달간 여러 차례에 걸쳐서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 1명, 가해자 12명   
이씨는 자신이 A씨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기획사의 또 다른 반장들에게 알리기까지 했다. 이는 사실상 이씨가 A씨를 다른 반장들에게 알선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만들었고, A씨는 11월까지 촬영지 인근 모텔, 차량 등에서 현장 반장, 부장, 캐스팅 담당자 등으로부터 수시로 강간과 강제 추행을 당했다. A씨가 피해를 당할 때마다 기록한 일기에 따르면 A씨를 성폭행 한 사람은 4명, 또 성추행은 8명이었다. 손 변호사에 따르면 A씨는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A씨에게 '주위에 이 사실을 다 알려 사회생활 못 하게 하겠다' '동생과 어머니를 죽여버리겠다' '동생 팔아넘기겠다'는 등으로 협박했고, 폭행도 했다.  
 
배려없는 수사에 고소 취하
[JTBC 화면 캡처]

[JTBC 화면 캡처]

A씨는 점점 폭력적 성향으로 변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의 설득으로 가해자 12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당시 가해자들은 A씨의 일기장 등 구체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합의하에 한 것으로 강제로 한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국 A씨는 고소 후 1년 7개월 만에 고소 취하를 했다. 손 변호사는 A씨가 수사과정에서 수사기관으로 부터 합당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손 변호사에 따르면 가해자 중 한 명인 반장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고소 취하를 종용했고, A씨의 어머니를 때리기 까지 했다. 또 손 변호사는 "경찰에서 조사가 이뤄질 때 A씨는 가해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 옆에서 같이 조사를 받았다"면서 "가해자가 많기 때문에 수사를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건 맞지만, 수사의 절차, 수사과정에서 배려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손 변호사는 "A씨 맞은편 책상에 가해자들이 앉아 있었고, A씨의 진술을 들은 가해자들은 반박하고, 비웃었다. 심지어 그 자리에서 A씨와의 성행위 자세를 취하는 가해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다시 범죄를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버티려 했지만 결국 고소를 취소했다.  
 
피해자가 남긴 2009년 8월 28일 오후 8시 18분 18층의 의미  
결국 A씨는 '나는 그들의 노리개였다. 나를 건드렸다. 더는 살 이유가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2009년 8월 28일 오후 8시18분 18층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언니에게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여동생 B씨도 언니가 떠난 6일 만에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끊었다. 손 변호사는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단순한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분노 표출로 이해된다"면서 목숨을 끊은 날짜와 장소의 숫자는 읽는 발음에 따라 욕설로 읽힐 수도 있을 정도로 분노가 거셌다고 덧붙였다.  
 
홀로 남은 어머니의 소송, 가해자들의 명예훼손 고소  
이후 자매의 어머니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했지만, 소멸시효 때문에 패소했다. 오히려 가해자들이 A씨의 어머니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권력이 범한 참담한 실패와 이로 인해 가중됐을 A씨 모녀의 고통을 보면서 깊은 좌절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손 변호사는 "결국 법원도 공권력의 잘못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사건이 구체적으로 폭로된 것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고 있는데, 이걸 본 다른 사람들, 어떻게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을까. 진상이 꼭 밝혀져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한편 최근 미투 운동 확산과 함께 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단역배우 자매 사건을 재수사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청원을 시작한 국민은 "여전히 가해자들과 부실 수사를 한 사람들은 잘산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청했고, 15일 오후 10시 기준 7만 명 넘는 이들이 이 청원에 동의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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