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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쓸 줄 몰랐다, 배신감" 朴에 등돌린 전 국정원장 3인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3인방이 15일 법정에서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뇌물 목적으로 돈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선 “그렇게 사용될 줄 몰랐다”고 혐의를 부인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책임을 넘겼다.
 

특활비 건넨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쓰일줄 몰랐다" 혐의 부인
"뇌물죄 벗으려는 전략" 해석도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 성창호)는 이날 전직 국정원장들에 대한 첫 공판 기일을 열었다. 세 사람이 나란히 법정에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7년 11월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향하고 있는 이병기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지난 2017년 11월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향하고 있는 이병기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이병기(72) 전 원장은 정장 차림의 다른 원장들과 달리 하늘색 수의를 입고 피고인석에 섰다. 그는 “그렇게 올린 돈(특활비)이 제대로 된 국가 운영에 쓰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반대로 된 것이 안타깝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데 저의 지식이 모자란 책임이 있다면 기꺼이 지겠다”고 말했다.  
 
뒤이어 발언한 이병호(78) 전 원장은 “제가 아닌 다른 원장이 임명됐다면 그 사람이 법정에 섰을 것”이라고 제도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제가 부패해서가 아니라 제도적 미비에서 비롯된 일이 아닌가 싶다”며 “대한민국이 얼마나 엉망인 나라이면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뇌물 혐의는 부인했다. 그의 변호인 역시 “박 전 대통령에게 용처를 물어볼 수도 없었고, (박 전 대통령이)사적으로 유용한다는 생각도 못 했다”고 주장했다.
 
남재준(74) 전 원장은 직접 발언을 하진 않았지만 변호인은 “상위 기관인 청와대에서 사용할 예산을 제공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 외의 목적으로 쓰일 줄 몰랐다”고 비슷한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왼쪽부터 이병기, 남재준, 이병호 전 국정원장 [뉴스1]

왼쪽부터 이병기, 남재준, 이병호 전 국정원장 [뉴스1]

이날 이들은 “특활비가 청와대로 전달된 사실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합법적인 국정 운영에 돈이 쓰일 것으로 생각해 특활비를 건넸을 뿐 이를 사적으로 유용한 책임은 박근혜(66) 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 측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두고 이날 법원 안팎에선 뇌물 공여 혐의를 벗으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뇌물공여죄의 형량은 징역 2년 6개월~3년 6개월(1억원 이상)에 이른다. 가중 처벌되면 징역 5년까지 선고될 수 있어 중범죄로 분류된다.  
 
한 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미 관계자 진술이나 증거 등이 나온 이상 상납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이나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해 혐의를 벗으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이 상납 사실은 인정한 뒤 돈을 전용한 책임을 당시 청와대 측에게 돌렸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특활비 수수 의혹 재판은 오는 16일부터 시작된다.  
 
지난 2017년 10월 24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는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연합뉴스]

지난 2017년 10월 24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는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연합뉴스]

이날 법정에는 검찰의 특활비 의혹 수사 과정에서 각종 진술을 쏟아내며 ‘키맨’으로 불렸던 이헌수(65)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도 출석했다. 그는 이날 법정에서 “제가 잘못한 부분 때문에 원장님들이 고초를 겪는 것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국정원 예산 전반을 담당했던 이 전 실장은 특활비 상납 과정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2월 2일에는 안봉근(52)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52) 전 총무비서관의 특활비 수수 의혹 재판에 출석해 특활비를 건넨 사실을 인정하며 “대통령이 특활비를 받으면 수석이나 비서관들에게 매달 나눠주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국정원으로부터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원종(77)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같은 법정에 섰다. 그는 “평생 공무원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서니 제가 얼마나 지혜롭지 못했는지 죄송스럽고 반성한다”면서도 “직무 대가성이나 박 전 대통령과 공모를 했다는 (검찰 공소사실) 부분에 대해선 혐의를 부인한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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