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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안 걸리면 메달 건다’는 유혹에 … 자기피 수혈 혈액 도핑까지

도핑

도핑

올림픽은 선수들에겐 꿈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면 꿈은 지옥이 된다.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 즉 도핑(doping)을 검사하는 도핑컨트롤센터(DCC)가 그곳이다. 전 세계에는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공인한 28개의 DCC가 있다. 한국에도 서울 홍릉 국립과학기술연구원(KIST) DCC가 있다. 지난달 25일 막을 내린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참가 선수들은 이곳에 자신의 소변과 혈액을 보내 도핑검사를 받아야 했다. 1차 샘플 검사에 이상이 있을 때는, 선수가 직접 홍릉을 찾아 재검사해야 한다. 컬링 믹스더블(혼성 2인)에서 동메달을 딴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크루셸니츠키 선수도 이곳을 찾은 뒤 선수촌을 떠났다. 이후 동메달은 박탈당했다.
 
DCC가 있는 KIST L4건물 6층은 4중 보안시설을 갖춘 ‘비밀의 공간’이다. KIST 자체가 ‘가’급 국가보안시설인점을 고려하면, KIST 내 DCC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 속에 있는 셈이다. 패럴림픽 개회를 앞둔 지난 2일 DCC를 찾았다. 안내자의 지문과 IC카드로 첫째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문기록지 옆에 예전 지하철 개찰구처럼 IC카드를 대야 열리는 회전 차단봉이 설치돼 있었다. 한쪽 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DCC 내부 곳곳에 설치된 40개의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비추는 화면이 가득하다. DCC 내부에 CCTV 카메라가 대규모로 설치되기는 이번 평창 올림픽이 처음이다. 복도를 따라 두 차례의 지문·IC카드 차단문을 지나고 나서야 DCC의 핵심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패럴림픽에서도 도핑 검사는 계속되기 때문에 DCC 보안은 계속되고 있었다. CCTV 카메라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검사 샘플 바꿔치기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다.
 
스포츠 선수들의 ‘저승사자’, 도핑 검사가 해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7일 도핑 관련 보도자료를 내며 “겨울올림픽 사상 가장 강력한 도핑 검사가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이번 올림픽 참가 선수 2963명 중 54.5%인 1615명이 최소 한 차례 이상 약물 검사를 받아, 역대 겨울올림픽 중 가장 많은 3149건의 도핑 검사가 진행됐다.
 
2018평창 겨울올림픽 컬링 믹스더블에서 동메달을 딴 러시아 알렉산드르 크루셸니츠키.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인 멜도니움 성분이 검출돼 동메달을 반납했다. [AP=연합뉴스]

2018평창 겨울올림픽 컬링 믹스더블에서 동메달을 딴 러시아 알렉산드르 크루셸니츠키.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인 멜도니움 성분이 검출돼 동메달을 반납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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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정 평창 도핑팀장은 “올림픽 참가 선수 중 과거 경력을 조회해 위험도 분석 등 여러 정보를 분석해 검사 대상 선수를 결정한다”며 “의심되는 혐의에 따라 소변이나 혈액 중 하나만 검사하기도 하고 둘 다 할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도핑 검사가 강화되고 있는 것은 도핑 방법 또한 갈수록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반도핑기구(WADA)에 따르면 88서울올림픽 당시 40여 개에 불과하던 금지약물은 매해 증가해 최근에는 450개 이상으로 많이 늘어났다. 과거에는 도핑 사례가 나오면 이를 새로운 금지약물 리스트에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선제적으로 금지약물을 정하고 있다.
 
최근 도핑 검사 강화의 직접 원인은 러시아다. 4년 전인 2014 소치 겨울올림픽 때 러시아는 관료와 정보요원 등을 동원,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도핑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러시아는 DCC 벽까지 뚫어 도핑한 선수들의 검사 샘플을 바꿔치기했다.
 
최근에는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 ‘도핑 디자이너’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도핑 관련 전문지식으로 무장하고, 도핑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도핑 디자이너는 최근 성장호르몬과 근육 향상 관련 단백질 의약품을 이용한 도핑방법을 주로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성장호르몬 등은 사람 몸속에 존재하는 단백질과 유사하고 대사되는 양이 적어 기존 분석법으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약물이 아닌 자신의 피를 이용한 ‘혈액도핑’도 기법도 있다. 혈액도핑이란 고산지대에서 산소 포화도를 높인 자신의 피를 채혈했다가 경기 직전 수혈하는 등의 방식으로 체내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량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는 수법이다. 이런 방법을 쓰면 지구력이 강화돼 마라톤이나 육상선수의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 치명적인 고환암을 이겨내고 정상에 올라 ‘싸이클의 황제’로 불렸던 프랑스의 랜스 암스트롱도 이 방법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올림픽 도핑검사수와 적발건수

역대 올림픽 도핑검사수와 적발건수

권오승 KIST DCC 센터장은 “도핑 검사가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기 때문에 검사에 걸리지 않으려면 평소 식사뿐 아니라 물 마시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며 “감기약·고혈압약·이뇨제와 같은 것도 도핑에 모두 걸릴 뿐 아니라 우리나라 홍삼·보약도 (도핑 검사에) 걸리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중 도핑 검사에서 적발된 선수는 단 네 명뿐이다. 소치 올림픽의 절반 수준이다. 러시아 컬링 대표 크루셸니츠키를 비롯, 일본 쇼트트랙 대표 사이토 게이와, 러시아 여자 봅슬레이 선수 나데즈다 세르게예바, 슬로베니아의 아이스하키 대표 지가 제글릭이 그들이다.
 
자칫하면 선수 생명까지 끝장날 수 있는 도핑을 왜 할까. 도핑(doping)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수렵민족인 카필족이 사냥을 나서기 전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마시던 술 이름에서 유래했다. 스포츠 선수들이 초기에 쓰던 약물은 심장 흥분제나 근육 증강제 등이 주류였다. 이런 약물을 복용하면 순간적으로 운동능력이 상승할 수 있지만 부작용이 심각하다. 습관적으로 약물을 사용하게 되면 건강을 심각히 해치게 된다. 1886년 프랑스에서는 코카인과 헤로인을 복용한 사이클 선수가 경기에 나섰다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초의 도핑 사망 기록이다.
 
그럼에도 도핑이 줄지 않고 되레 느는 이유는 도핑의 강력한 효과 때문이다. 도핑이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평소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는 선수라도 메달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68년 프랑스 그레노블 겨울올림픽 때부터 선수 보호와 공정한 경쟁을 위해 도핑 검사를 시작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위원장(2012~2015년)을 지낸 김한겸 고려대 의대(병리과) 교수는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 과학이 발달하는 것처럼, 도핑도 그 강력한 유혹 때문에 계속 진화할 것”이라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머잖아 유전자 조작을 통한 도핑도 나올 것으로 예견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World Anti-Doping Agency)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운동선수들의 금지약물 사용을 관리ㆍ감시ㆍ제재하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에 창설된 기구다. WADA는 도핑을 검사할 수 있는 ‘도핑컨트롤센터(DCC)’를 공인하고, 감시한다. 지난해 11월 현재 한국을 비롯 세계 25개국에 28개 DCC가 운영되고 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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