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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지난 8일밤 백악관 주인공이 된 대가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대화파’의 상징이던 조셉 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 그가 퇴임 전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보고 자꾸 ‘대화파, 대화파’라 하는데, 난 사실 ‘가운데’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말 최고의 대화파가 누군지 아느냐?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모두가 웃고 넘어갔다. 괜히 하는 소리거니 했다.
 
그의 말은 맞았다. 백악관을 찾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전하자 트럼프는 각료들을 향해 말했다. “보라, 내 말이 맞았지? 대화하는 게 맞았다고!” ‘로켓맨’이라 조롱하고, ‘화염과 분노’를 예고하고, 틸러슨 국무장관을 향해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했던 모든 것이 결국 ‘대화의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무서운 인물이다. ‘절친’이자 정치적 배우자였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았다. 정 실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발표하자 트럼프는 그제야 아베에게 ‘통첩성 위로 전화’를 걸었다. 아베는 뒤통수를 맞았다.
 
지난 7일 워싱턴에선 5년 임기를 마치고 워싱턴을 떠나는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를 위한 성대한 송별파티가 열렸다. 워싱턴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과 각료들이 운집한 주미대사 관저는 미·일 밀월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불과 하루 뒤인 8일. 일본은 ‘북·미 정상회담’ ‘철강 25% 관세 부과 면제 대상 제외’라는 더블펀치를 맞았다. 둘 다 예상도 못하던 것이었다. ‘워싱턴 일본 외교 참사의 날’이었다. 외교에 영원한 친구가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지금 우리의 환호 또한 언제 탄식으로 변할지 모름을 뜻한다.
 
북·미 정상회담은 위험한 도박이다. 벼랑 끝 단판승부다. 그만큼 절박하다. 게다가 지금은 말뿐이다. 그것도 우리의 말뿐이다. 노동신문도 조선중앙통신도 일언반구 비핵화나 정상회담 관련 언급을 하지 않는다. 언제 “우리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정색하고 나설지 모른다. 미국도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라”고 북한에 외치지만 회담 전에 진정성을 증명할 행동 따윈 없다는 걸 안다. 그러니 백악관 회동 후 회담 개최 발표를 굳이 정 실장이 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정치적 보증’을 한국이 선 셈이다. 3월 8일 밤의 주인공은 한국이었지만 5월 말의 희생양 또한 한국이 될 수 있다. 모든 게 깜깜이다.
 
세 가지 정도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첫째는 핵·미사일 문제를 일괄 타결하는 방안이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주고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CVIG(G는 Guarantee·체제안전 보장)를 주는 교환 방식이다. 둘 다 비정상적 지도자이기에 가능할 수도 있다. 둘째는 ‘단계적 비핵화’.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사후 검증 및 폐기에 동의하는 대신 미국은 대북제재를 풀고 에너지·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 미국이 우려하는 ICBM은 즉각 폐기한다는 선물이 나올 수 있다. 트럼프는 바로 트위터에 “내가 북한 ICBM이 미 본토에 오는 걸 봉쇄해 냈다”는 승리 선언을 할 것이다. 11월 중간선거는 승리할 것이다.
 
마지막은 결렬. 이 경우 전쟁 직전으로 내몰릴 수 있다. 책임을 전가하며 군사행동이나 도발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빅터 차는 “트럼프 스타일은 검은색=흰색, 앞=뒤, 혼란=좋은 것”이라 말한다. 가늠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깜짝쇼에 올인한 채 지켜보기만 할 순 없는 이유다. 남은 두 달 시나리오별로 물샐틈없는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운명, 우리 자손들의 운명이 거기에 달렸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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