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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2만, 기업 3만 … 시총 2위 이더리움도 반한 알프스 도시

암호화폐, 투기서 산업으로 <중>
고적한 호수와 하얀 알프스로 둘러싸인 추크(Zug). 관광지처럼 보이지만 스위스 최대의 기업도시 중 하나다. 낮은 법인세와 글로벌 인프라를 앞세워 지멘스·로슈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했고, 스타트업 창업도 활발해 도시 전체에 생동감이 넘친다. [사진 추크 칸톤]

고적한 호수와 하얀 알프스로 둘러싸인 추크(Zug). 관광지처럼 보이지만 스위스 최대의 기업도시 중 하나다. 낮은 법인세와 글로벌 인프라를 앞세워 지멘스·로슈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했고, 스타트업 창업도 활발해 도시 전체에 생동감이 넘친다. [사진 추크 칸톤]

스위스의 추크 칸톤(주·州) 인구는 12만4000명이다. 기업 수는 3만2000개나 된다. 글로벌 기업과 젊고 도전적인 기업이 공존한다. 이 지역 거주자의 국적은 131개에 달한다. 이 글로벌 도시에 세계 각국 암호화폐 관계자가 몰린다. 암호화폐 공개(ICO)의 성지(聖地)로 알려지면서다. 이 지역을 크립토밸리(Crypto Valley)로 부르는 이유다.
 
지난달 23일 만난 크립토밸리 지휘자 마티아스 미셸(사진) 추크 칸톤 경제장관은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며 “스위스는 투기를 용인하지 않는다. 아무런 규제 없이 ICO를 허용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전제를 강조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티아스 미셸

마티아스 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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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울 때 모래 상자(Sandbox)를 떠올려 보자. 일정 크기의 모래 상자에 넣어 두고 맘껏 놀게 하는 거다. 혁신적인 기술을 규제해야 할 땐 이런 식의 접근이 옳다고 생각한다. 단 그 상자를 벗어나면 안 된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산업 분야에서 혁신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하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도 규제개혁 방안의 하나로 이 제도를 활용할 방침이다. 미셸 장관의 말은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관련 신기술 서비스를 마음껏 사업화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뜻이다. 다만 투기를 조장하거나 불법 활동을 하면 엄단한다는 의미다.
 
지난 2월 스위스 연방금융감독청(FIN MA)은 새 ICO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FINMA는 ICO를 준비하는 암호화폐가 지불형·기능형·자산형 세 가지 중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라 규제를 달리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불형은 지불 용도로만 쓰는 경우, 기능형은 애플리케이션 등에서 각종 이용권 형태로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자산형은 회사의 수익과 배당금 등을 직접 받을 수 있는 경우다. 이렇게 나눈 뒤 지불형은 현행 자금세탁 규정을, 자산형은 증권법을, 기능형은 자산 성격을 가진 경우에만 증권법을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일종의 규제안이지만 스위스 정부는 가이드라인의 목적이 산업 진흥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마크 브랜슨 FINMA 회장은 “역동적인 암호화폐 시장 상황과 수요 확대를 고려할 때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면서도 “암호화폐의 성격이 다양한 만큼 금융법이나 규제를 모든 ICO에 일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시 미셸 장관과의 인터뷰.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법에 없으니 하지 말라고 단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블록체인이든 암호화폐든 현행 법체계로는 다룰 수 없다. 정해진 답이 없다면 경험적으로 접근하는 게 맞지 않나? 각각의 암호화폐가 어떤 기술을 바탕으로 움직이는지, 또 그 용도가 어떤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카테고리도 나누고, 어떤 것이 되고, 어떤 것이 안 되는지 선별해 나가야 한다.”
 
스위스는 연방정부 차원에서도 암호화폐 육성과 ICO 유치에 적극적이다. 지난 1월 요한 슈나이더 암만 스위스 연방 재무장관은 “스위스를 암호화폐 허브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20세기 스위스는 중립국 지위를 앞세운 ‘비밀 금고’로 금융 강국이 됐다. 그러나 ‘투명하지 않은 돈’을 규제하려는 각국의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최근 그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암호화폐를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장기 전략인 셈이다.
 
19일 열릴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암호화폐가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본 기술이다. 모든 참여자가 권리와 이익, 재산에 투명하게 접근하도록 만든다. 계약은 간단해지고, 물건을 사고파는 방식도 바꿔 나갈 게 확실하다. 은행이나 보험회사 중심인 금융 질서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긴장해야 할 거다.” 
 
암호화폐 육성이 기존 금융 질서와의 결별로 비치기도 한다.
“스위스 시계는 오래전부터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디지털 시계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전통을 고집했다. 지금도 일부 명품은 가치를 인정받지만, 큰 시장을 일본 등에 내줬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시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물론 암호화폐가 성장하면 은행 등 기존 금융 회사와 부딪치는 일이 생길 거다. 그러나 혁신은 언제나 주어진 토양 위에서 자라는 것이고, 나는 암호화폐가 기존 금융의 파괴자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름처럼 실리콘밸리만큼 성장할까.
“얼마 전까지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를 잘 몰랐다. 예전엔 10년을 준비해 100년 갈 산업을 키웠지만 지금은 아니다. 크립토밸리 역시 앞으로 어떻게 될진 나도 알 수 없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게 미래 예측보다 중요하다.”
 
한국도 고민이 많다.
“개발자를 지원하고 그들이 맘껏 뛰놀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기술적으로 우수한 나라다. 급할수록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한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면 그들을 상대하는 건 결국 공무원이다. 그들이 신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아이템이 사장될 수 있다.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핵심은 교육이다.”
 
◆ 암호화폐 공개(ICO)
ICO는 블록체인 기술을 가진 업체가 투자자에게서 사업자금을 모으고, 자신이 만든 암호화폐를 나눠주는 걸 말한다. 사업자금은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로 받는다.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기업공개(IPO)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과 비슷하다. 업체는 조달한 비트코인 등을 현금화해 사업자금으로 쓰고, 투자자는 새 암호화폐의 시세가 오르면 수익을 낼 수 있다. ICO에 성공했다고 모든 암호화폐가 상장되는 건 아니다. 상장 안 된 암호화폐도 개인 간 거래는 가능하다.

 
추크=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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