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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러슨, 북·미 물밑 접촉서 소외…전권 쥔 CIA의 승리

13일 전격 경질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의 지난해 방한 모습. [사진 공동취재단]

13일 전격 경질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의 지난해 방한 모습. [사진 공동취재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오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후임에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내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폼페이오 국장이 우리의 새 국무장관이 될 것"이라며 "그는 멋지게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틸러슨 장관의 봉직에 감사한다!"며 "지나 해스펠(현 CIA 부국장)이 새 CIA 국장이 될 것이다. 그는 첫 CIA 여성 국장으로 선택됐다. 모두 축하한다!"고 덧붙였다.
 
12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수도인 아부자에서 오네야마 나이지리아 외교부 장관과 만난 틸러슨 미 국무장관(오른쪽).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수도인 아부자에서 오네야마 나이지리아 외교부 장관과 만난 틸러슨 미 국무장관(오른쪽). [A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틸러슨 장관은 대표적인 '대화파'로 분류돼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아무 조건 없이 북한과 얼굴을 맞대야 한다"고 말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내 강경파로부터 견제를 받기도 했다. 또 지난해 9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북한과 백 채널(물밑 대화 창구)을 2~3개 운영하고 있다"는 언급 때문에 트럼프로부터 트위터를 통해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선 "틸러슨 장관이 잘리는 것은 시간 문제"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올 들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남북 간 대화가 활발해지고 북·미 간 접촉이 이뤄지면서 틸러슨 장관은 부활하는 듯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살아나는 듯했던 틸러슨 장관이 갑자기 경질된 것은 북·미 정상회담 결정 과정에서 100% 소외됐던 틸러슨 장관이 '더 이상 나의 역할은 없다'고 판단했고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사임으로 받아들여 교체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틸러슨은 아프리카 순방 일정을 하루 앞당겨 12일 귀국해 트럼프에게 사의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소외돼 있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소외돼 있었다.

 
한국의 대북특사단이 5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과 면담한 결과를 미국에 전하는 과정에서도 틸러슨은 소외됐다고 한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NSC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에게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했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CIA에만 공유됐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장기 순방을 떠났던 틸러슨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 제안이 있다는 사실을 정 실장 일행이 미국을 방문한 지난 8일 오전에야 전해 들었다고 한다. 더구나 8일 저녁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의 '45분 면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할 것이란 뜻도 트럼프로부터 전혀 언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시점에서 틸러슨 장관의 역할은 끝나 있었던 셈이다. 견원지간이던 맥매스터와의 파워게임에서 결국 틸러슨이 패배한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다음날 트위터에서 틸러슨 미 국무 장관의 경질 소식을 알렸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다음날 트위터에서 틸러슨 미 국무 장관의 경질 소식을 알렸다. [AP=연합뉴스]

다른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틸러슨 장관이 CBS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moron)라고 불렀다고 하는 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더 큰 이슈가 많다'며 확답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큰 불쾌감을 나타냈다"며 "업무적 측면보다 두 사람 간의 신뢰관계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전했다. 실제 트럼프는 틸러슨 장관의 당시 발언이 나온 뒤 "(틸러슨 장관이) 임기를 채울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향후 최대 관심사는 새로운 국무부 진용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뤄나갈까 하는 점이다. 
어찌 보면 북한에 대한 오랜 압박과 제재 국면이 끝나고 대화 국면으로 급전환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대화파가 제거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정상회담에는 응했지만 상당히 강경한 정책을 북한에 내세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현재 북한 문제를 다뤄나갈 협상파 인물은 고갈된 상태.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지난달 주한대사 내정이 전격 취소됐고, NSC로부터 '드리머(dreamer·꿈꾸는 사람)란 조롱까지 들으면서도 대화를 모색해 왔던 조셉 윤 국무부 대북문제 특별대표는 '은퇴' 형식을 빌려 사임한 상태다. 이른바 '틸러슨 사람들'이 모두 전면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새롭게 형성된 '폼페이오-맥매스터 강경 라인'은 쉽게 북한과 타협하는 쪽으로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거취다. 그동안 트럼프의 도발적인 대북 언사나 즉흥적 정책을 막아왔던 매티스 장관은 "틸러슨 장관을 경질하면 나도 그만둘 것"이란 의사를 트럼프에게 전달하며 대북 대화 노선을 힘들게 이끌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매티스 장관마저 행정부에서 사라져 '어른들의 축'이 무너질 경우 비록 북·미 정상회담은 성사됐다고 하지만 '회담 결과' 그리고 '회담 후 상황'에 대한 위험과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경화-틸러슨 회담 무산될 듯=틸러슨 장관의 경질로 16일(현지시간)로 예정됐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도 차질이 생겼다. 당초 강 장관은 15~17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이 기간 중 틸러슨 장관과의 회담이 예고됐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13일 “상황에 따라 강 장관의 방미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이날 틸러슨 장관 경질 소식을 접한 뒤 심야 긴급 대책회의에도 나섰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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