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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워싱턴에서 한국을 생각하며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아시아학 석좌명예교수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아시아학 석좌명예교수

굳이 ‘혈맹’이라는 수사 어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한·미 양국의 관료들이 계속 주장하는 것처럼 한·미동맹이 정말 굳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대로 실질적이든 잠재적이든 양국 관계에 나름의 마찰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한·미관계는 그동안 지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면을 보면 많은 의견 불일치와 시련을 겪어왔다. 앞으로도 마찰은 발생할 것이기에 양국 간에 신중한 검토·대화·이해·타협이 필요하다.
 
한국 집권층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교육하기 위해 방대하고 다각적인 캠페인을 벌여왔다. 한국문화원·한국국제교류재단 등 다양한 민관 지원을 통해 많은 미국 대학들에 한국학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들도 한국이 후원하는 프로그램 덕을 봐왔다. 워싱턴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EI)도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왔다. 이러한 모든 창구는 미국의 엘리트들을 교육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런데 일각에서 미국 정가에 영향을 미치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도가 지나친 면이 있고, 너무 짧은 시간에 비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한국 정부가) 기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서울에서는 정책 결과 검토를 통해 행정부와 입법부 차원의 한·미관계가 애초 기대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좀 더 공격적으로 워싱턴 측을 접촉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의견도 한국에서 개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만이 직면한 문제가 아니고 미국도 종종 비슷한 문제에 처한다.
 
한·미동맹의 역사를 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한국인 중에는 워싱턴에서 좀 더 주도적인 역할 수행을 통해 미국에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 듯하다. 이러한 생각은 옳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릇된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
 
시론 3/13

시론 3/13

일반적으로 교육계라 불리는 영역은 다양한 형태로 한국 측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매우 중요한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학은 교육을 주로 하지만 이에 비해 싱크탱크는 연구를 수행하고 대화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KEI 같은 기관은 내부에 교육 및 연구역량을 갖고 있지 않지만, 정책 담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독립적인 대화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학과 싱크탱크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생각한다면 이는 서로 다른 기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오해다. 이들이 독립적인 대화 창구라는 인식을 포기하는 것은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단 독립성이 훼손되면 이를 다시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고, 과거의 모든 투자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한국인 친구들과 동료들의 전언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는 어차피 비용을 한국 측이 지불한다면 전략적 목표에 대한 상호이해가 있더라도, 전술적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주도권과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 즉, 비용을 부담하는 쪽이 행동도 결정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복잡한 권력구조, 주요 의사 결정권자의 태도, 한·미 현안을 오랫동안 관찰해오거나 직접 다뤄온 워싱턴 인맥의 의견이나 분위기를 정확히 간파할 역량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점은 한국이 해외 공공외교 기관을 관리할만한 충분한 신뢰를 얻고 있느냐는 점인데, 이에 대한 한국 측의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중국 정부가 전 세계적으로 설립한 공자학원(孔子學院·Confucius Institute)은 노골적으로 중국 국익을 대변하는 바람에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일본도 과거에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일본의 경제 프로그램을 전제로 한 일본 교육 프로그램을 후원해 워싱턴에서 비난받았다. 만약 한국이 과거든 미래든 출연기금 제공을 이유로 너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려 한다면 이는 큰 시행착오가 될 것이다.
 
신뢰는 동맹의 기반이다. 이러한 신뢰를 위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워싱턴에 있는 한국 공공외교 관련 기관의 독립적인 관리다. 그런데 서울의 단기적·정치적·개인적 필요에 따라 쉽게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워싱턴의 단체들과 한국 정부 사이에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이는 한·미 동맹의 기반 중 하나인 민주주의적 가치에 따라 서로 신뢰하며 대화하는 과정에서 풀면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궁금해하는 사항에 대해 워싱턴에서 후원을 받는 기관들과 대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들 기관을 통제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면 오히려 한국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아시아학 석좌명예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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