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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이제 와서 “저출산 정책, 여성을 출산 수단으로 다뤄”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여성을 ‘인구 정책의 대상·수단’으로만 다루고 있어 전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여성가족부의 권고가 나왔다. 하지만 저출산 정책 수립에 참여한 여가부가 때늦은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성가족부는 2015년 확정해 시행 중인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16~2020)’에 이런 문제가 있다며 총괄부처인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고 12일 밝혔다. 여가부는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를 해서 이런 문제점을 찾았다. 이 평가는 정부의 주요 정책과 법령을 양성평등 관점에서 분석·검토한 뒤 문제점을 개선하라고 권고하는 제도다.
 
여가부는 “3차 기본계획의 목표가 ‘출산’ 자체에 집중돼 있다. 아동을 출산하는 데 필요한 ‘모성건강’만을 강조하고, 임신과 출산 전후 의료 지원만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3차 기본계획의 핵심인 출산율 목표(2020년 1.5명)를 설정한 게 여성은 ‘당연히 출산해야 하는 존재’라는 전제를 반영한 것”이라며 폐기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여가부는 “일차적인 임신·출산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남녀 생애주기 전반의 재생산과 관련한 건강권 증진 대책을 마련해 반영할 것”을 권고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현저히 높은 모성사망(임신·출산으로 인한 사망)을 줄일 대책을 마련하고, 난임 부부를 위한 맞춤형 상담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라고 권고했다.
 
여가부는 3차 기본계획이 여전히 사실혼을 배제한 ‘법률혼’을 전제로 한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아이를 둔 사실혼 관계의 부부는 행복주택 등 신혼부부 주택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고, 동거 부부의 아빠가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비혼(非婚)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3차 기본계획은 박근혜 정부 시절 만든 것이다. 여가부는 여기에 참여했다. 또 일·가정 양립, 미혼모 정책, 영유아 양육 지원(아이돌봄서비스), 다문화 가정 지원 등 저출산 정책의 주요 부분을 담당한다. 여가부는 원래 양성평등 증진을 위해 설립됐다. 저출산 대책의 양성평등에 침묵하다 뒤늦게 목소리를 냈다.
 
3차 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한 이삼식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저출산 기본계획 수립 주무 부처는 복지부이지만, 정부 합동 기본계획 인만큼 여가부도 참여했다”며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좋지만 정책 수립 단계에서 의견을 제시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우정 여가부 성별영향평가과장은 “3차 기본계획만이 잘못됐다기 보다는 그간 우리나라 저출산 정책이 여성을 어떻게 하면 출산할 것이냐에 집중하다보니 정말 중요한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 이제는 여성의 삶 전반의 건강 문제에 대해 다룰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가부 권고의 근거가 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 보고서를 작성한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차 저출산기본계획이 만들어졌지만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대폭 수정됐다. 이 때 저출산 정책에서 ‘성평등’ 관점이 아예 사라졌고, 지난 9년간 이어졌다”며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 저출산 정책의 비전을 성평등 사회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가부 권고에 대안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출산율은 세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이를 폐기하면 어떤 지표를 목표로 잡을 것인지 대안이 없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성평등 관점에서 좋은 인구 정책이 뭔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성평등만 중요하고 인구는 중요하지 않다고 비칠 수 있어 (여가부의 지적이) 비판을 위한 비판에 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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