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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콘, 타이어, 삽...가장 서민적인 사물들의 이유있는 변신

'콘트리트 믹서'(2013), 스테인리스 스틸에 레이저-컷,84.5x45x105cm. 델보예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럭, 콘크리트 믹서(레미콘) 등을 레이저 컷 기술로 섬세하게 제작해왔다. [사진 갤러리현대]

'콘트리트 믹서'(2013), 스테인리스 스틸에 레이저-컷,84.5x45x105cm. 델보예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럭, 콘크리트 믹서(레미콘) 등을 레이저 컷 기술로 섬세하게 제작해왔다. [사진 갤러리현대]

 
'무제'(2010). 다양한 크기의 타이어에 꽃과 소용돌이, 잎사귀 등 섬세한 문양을 새긴 타이어 연작 중 하나. 델보예는 실용적인 사물에 과잉의 장식을 더함으로써 기존의 용도에 혼선을 일으킨다. [사진 갤러리현대]

'무제'(2010). 다양한 크기의 타이어에 꽃과 소용돌이, 잎사귀 등 섬세한 문양을 새긴 타이어 연작 중 하나. 델보예는 실용적인 사물에 과잉의 장식을 더함으로써 기존의 용도에 혼선을 일으킨다. [사진 갤러리현대]

 
 Engraved Shovels (2016) Embossed aluminium 각 21x17x100cm. 델보예가 "가장 민주적인 사물 중 하나"라고 소개한 삽. 인간의 노동과 가장 가까운 사물이 귀족적인 문양을 입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갤러리현대]

Engraved Shovels (2016) Embossed aluminium 각 21x17x100cm. 델보예가 "가장 민주적인 사물 중 하나"라고 소개한 삽. 인간의 노동과 가장 가까운 사물이 귀족적인 문양을 입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갤러리현대]

 
멀리서 보면 은빛 마세라티의 몸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표면이 눈부시다. 알루미늄 차체에 이란의 장인들이 한땀 한땀 새긴 전통 문양 때문이다.  그 옆에 전시된 자동차 타이어엔 손으로 화려한 꽃문양이 새겨져 있다. 도로에 굴러다녀야 할 자동차와 타이어가 놓인 곳은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 전시장. 벨기에 신개념(neo-conceptual) 미술 작가 빔 델보예(53)의 개인전 '빔 델보예'가 열리는 곳이다. 이곳엔 생활에서 흔히 보는 사물을 가져다가 만든 흥미로운 작품 30여점이 즐비하다.
 
이것은 공예일까, 예술일까.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이런 질문을 퍼붓고 싶었던 듯하다. 마당이나 공사장에서 써야 할 삽에도 그는 장인들의 손을 빌려 문양을 새겼고, 독일 여행 가방 브랜드 '리모와'(Rimowa)에도 빈틈없이 수공예 작업을 해놓았다.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덤프 트럭, 2011, 스테인리스 스틸에 레이저 컷. [사진 갤러리현대]

덤프 트럭, 2011, 스테인리스 스틸에 레이저 컷. [사진 갤러리현대]

 
햄과 살라미로 대리석 바닥의 문양을 만든 사진 작품을 내놓았는가 하면, 우리가 흔히 '레미콘'이라 부르는 콘크리트 믹서 트럭을 눈부신 고딕 양식의 조각으로 완성했다. 흔히 무겁고, 단순하고, 거칠다는 이미지를 주는 트럭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섬세한 조각으로 변신한 광경은 그야말로 '반전'이다. 
 
Marble Floor(대리석 바닥)#9,2000,Cibachrome on aluminium 125x100cm. 햄과 살라미의 배열로 대리석 바닥 문양을 만들었다. [사진 갤러리현대]

Marble Floor(대리석 바닥)#9,2000,Cibachrome on aluminium 125x100cm. 햄과 살라미의 배열로 대리석 바닥 문양을 만들었다. [사진 갤러리현대]

 
"사람들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와서 작품을 보며 이해하는 척하고, 재미있어하는 척하죠. 하지만 정작 그들은 영화관에서 가서 울고, 웃지 않나요? 이 현상을 솔직하게 봤으면 해요. 공예든, 예술이든, 건축이든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않고, 그들과 교감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죠?" 델보예가 던지는 질문이다.
 
신개념미술 작가로 불리는 그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작업한다. 
이른바 '비틀기'를 통한 용도의 재발견 전략이다. 온몸이 닳도록 도로를 달려야 했을 타이어는 섬세한 문양으로 예술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고딕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얻어 정교하게 조각된 트럭은 또 하나의 예술이 된다. 
가장 흔한 생활 도구 중 하나인  '삽'도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작품'이 되었다. 델보예는 이처럼 고급문화와 대중(저급)문화, 전통공예와  첨단기술, 미니멀주의와 장식주의의 경계는 허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파격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왔다. 
 
그 파격이 극에 달했던 것은 2000년대 중반 인간 소화기관을 기계로 재현한 설치 작품 '클로아카'(Cloaca·하수구)를 내놓았을 때다. 인간의 소화기관을 모방해 어떠한 음식을 넣어도 똥으로 나오도록 컴퓨터 전문가·기술가 등과 함께 설계한 이 작품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고딕 작품은 클로아카와 함께 델보예의 대표적인 연작. 이른바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을 비꼬며 예술 아닌 것을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요즘은 현대 예술에선 공예는 금기(터부·taboo)가 되었고, 단순한 것이 심오한 것으로 평가받죠.  여기엔 절제된 것이 더 본질에 가깝고, 더 가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중국 윈난 목공예 장인들도 자녀들에게 의사나 변호사가 되라고 하지 기술을 물려주지 않잖아요."  델보예는 이같은 경향의 '반대 노선'을 택했다. 이란의 전통 공예 도시 이스파한의 장인들을 찾아가 그들과 협업한 것이다. 일종의 '금기'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그는 이에 대해 "첨단 기술의 시대에도 인간의 손이 해낼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담아낸 작품을 통해 예술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델보예는 "나는 과거와 경쟁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첨단 기술의 도움 없이도 눈부신 예술과 건축물을 만들었던 그 '과거'를 끊임없이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든다는 얘기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더는 우리가 할 게 없다고 하죠. 하지만 그런 건 변명에 불과한 것 같아요. 저는 500년 전보다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작업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습니다."  
 
흔히 보는 사물을 소재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그는 무엇이 예술인지를 묻는다. 최정동 기자

흔히 보는 사물을 소재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그는 무엇이 예술인지를 묻는다. 최정동 기자

 
그의 이런 '악동 기질'은 어디에서 온 걸까.  "화목하고 편안한 집안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무난하게 자란 나는 오래전부터 '덜 편한 것'에 도전하는 작업에 이끌렸다. 사람들이 '순수성'(purity)을 추구한다면, 나는 그 반대의 것을 드러내는데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술가는 과거를 사랑하고 또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과거와 경쟁하는 것"이라며 "일단 겁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2010년 프랑스 파리 로댕미술관에 이어 루브르 박물관(2012),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2014), 스위스 팅켈리 미술관(2017)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현재 벨기에와 영국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전시는 4월 8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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