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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관세 살생부’ 쥔 미국 보호무역 저승사자

트럼프 정부의 철강 관세 폭탄 막후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임을 무기로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철강 관세 폭탄 막후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임을 무기로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984년 10월 24일 한국산 철강 수입 규제 회담을 위해 미국 통상대표부(USTR) 협상단 7명이 한국을 방문한다. 회의는 난항을 거듭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협상은 그해 12월까지 이어진다. 협상문에 ‘자율 규제’란 수식어가 붙었지만 결과는 미국의 판정승. 한·미 양국은 한국산 철강 제품의 대미 수출 물량을 미국 내 수요의 1.9%(약 180만∼190만t)로 제한하기로 최종 합의한다. 미국이 휘두르는 힘의 논리에 신흥 수출국 한국은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 협상은 37세 젊은 나이의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이끌었다.
 
84년 뉴욕타임스(NYT)는 철강 무역 협상 중심에 서 있던 그를 조명한다. “보좌진에게 위임하지 않고 직접 협상을 주도한다.” NYT가 내린 그에 대한 평가다. 그 역시 NYT의 평가를 부인하지 않는다. “나는 통일된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득의 기술은 결국 힘의 균형추가 어디에 있느냐다.”
 
당시 한국·일본 등과의 철강 협상을 이끈 인물이 바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71) 미 무역대표부 대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철강 관세 폭탄을 담은 행정명령이 발효되려면 서명한 날(8일)로부터 15일이 지나야 한다. 이 기간에 관세 대상에서 빠지려는 동맹국들의 로비가 치열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을 앞둔 캐나다와 멕시코가 일찌감치 이름을 지웠고, 총리까지 나선 호주가 이미 관세 대상에서 빠졌다. 관세 폭탄을 눈앞에 둔 한국 또한 이 남자를 만나 설득해야 한다.
 
올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태양광·세탁기 긴급수입제한조치에 서명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올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태양광·세탁기 긴급수입제한조치에 서명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어느 나라를 관세 대상에서 빼줄지 말지는 1차적으로 라이트하이저가 판단한다. 그에게 엄청난 힘이 주어졌다. NYT는 라이트하이저에 대해 ‘워싱턴에서 막강한 파워를 지닌, 잘 알려지지 않은 무역 보좌관’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은 그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까지 진행해야 하는 관계여서 한국 수출업체들에는 라이트하이저가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그는 미 의회나 언론의 비난에 귀 기울이지 않는 ‘배짱’이 있다. 미 의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NAFTA 협상에 따른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지자 그는 “청중은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 한 명은 트럼프 대통령을 의미한다.
 
라이트하이저는 국수주의자의 본능과 통상 전문 변호사의 예리한 시각을 앞세워 트럼프의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1월 11일간의 아시아 순방 기간에 트럼프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면서 신임을 크게 얻었다. 당시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최근 사임)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미 의회를 상대로 세제 개편안 관련 로비에 집중하느라 동행하지 못한 결과였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시니어펠로인 개리 후프바우어는 “(라이트하이저는) 미국 회사의 권리가 짓밟히는 사건이나, 불공정하고 균형 잡히지 않은 국제 경쟁에 매우 예민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라며 “여기에 보호무역을 공손하게 말하는 화법이 더해져 트럼프의 신임을 얻었고, 결국 막강한 파워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철강’을 빼놓고도 그의 인생을 말할 수 없다. 철강 수입제품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조치가 나오자 라이트하이저의 어렸을 적 기억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란 견해가 나오고 있다.
 
그는 오하이오주 애쉬타블러라는 항구 도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자라면서 철강 공장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장면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세계화와 공장 자동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정부 일을 그만둔 뒤에는 통상 전문 변호사로 변신했다. 당시 그의 가장 큰 고객이 미국 최대 철강사인 유에스스틸(USS)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트럼프 행정부에 스카우트되기 전까지 미국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당한 불공정에 관한 산더미 같은 송사 자료를 검토했다. 이런 자료가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의 핵심 타깃은 중국이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로 자신들의 시장 개방은 게을리하면서, 물량 공세를 앞세워 세계 무역 시장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협상 테이블을 라이트하이저에게 맡겼다. 지난해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주도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로스 장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관된 회사에 투자해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어 라이트하이저로 교체됐다.
 
라이트하이저가 중국과 함께 손보려는 기관이 WTO이다. 중국이 세계 무역 강자로 부상하는데 WTO가 막후에서 많은 도움을 줬고, 중국도 WTO를 이용했다는 판단이다. WTO에 대한 전면적인 현황 파악을 통해 권한과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전략도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라이트하이저가 측근에게 “중국과 WTO를 손보려면 우방의 힘이 필요한데, 철강 관세로 인해 우방에까지 피해가 미칠 것 같다”며 우려했다고 NYT는 전했다. 한국에 대한 라이트하이저의 시각도 고운 편이 아니다. 멕시코와 함께 미국 제조업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다고 인식하고 있다. 철강 관세 면제 협상이나 한·미 FTA 재협상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1947년 미국 오하이오주 북동부 애쉬타블러에서 태어났다. 조지타운대 법학전문대를 졸업했다. 워싱턴의 한 법무법인에서 일하다가 78년 밥 돌 당시 상원의원이 이끄는 의회 재무위원회에 합류하며 공직에 뛰어들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 때인 83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로 임명됐다. 85년 부대표에서 물러난 이후 통상 전문 변호사로 일해왔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조현숙 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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