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어쩌다 집사] #2. 사람이 좋았던 애교냥이의 쉽지 않은 공원살이

 나무는 바쁜 고양이였다. ‘어쩌다 집냥이’가 돼버린 지금은 캣타워를 오르내리며 창밖을 보는 게 고작이지만, 예전에 살던 공원은 아무리 뛰어도 끝이 없었고 볼거리도 많았다. 베이스캠프와도 같았던 급식소를 비우고 몇 시간씩 ‘마실’을 나갈 때면,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유롭고 화려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나무의 공원 생활. 그 일상을 내가 파악한 범위 내에서 관찰일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관련기사
 
2016년 8월 x일
오늘만 길냥이 급식소에 세 번째 찾아왔는데 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공원에 나온다고 매번 나무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원은 워낙 넓고 나무도 나무만의 묘생이 있으니. 내가 찾아오는 시간에 맞춰 나무가 그 자리에 있으란 법은 없다.
“나무야~” 아쉬운 마음에 허공에 이름을 부르자 수풀 속에서 어슬렁거리며 나무가 나타났다. 반갑게 인사하는 나를 지나쳐 급식소로 향한다. 배가 고파서 왔군. 원목으로 된 급식소 안에는 건식사료가 소복이 쌓여 있다. 나무 혼자가 아니라 이 구역의 길냥이 여럿이 함께 먹는 양이다. 이 동네에서 ‘도둑고양이’는 다 옛말이다. 길냥이들은 인간의 음식을 탐낼 이유가 없다.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까드득 까드득…’ 고양이가 사료를 씹을 땐 이런 소리가 난다. ‘찹찹찹…’ 혀를 내밀어 물을 마실 땐 이런 소리. 식사를 마친 나무는 다시 홀연히 사라졌다.
 
지금은 체중 감량을 위해 제한급식을 (당)하고 있는 나무가 밥을 원 없이 먹던 시절. 공원의 길냥이들을 아끼는 캣맘이 특별히 공수해 온 원목급식소는 지붕이 있어 비가 올 때 길냥이 사료가 젖는 걸 막아 준다. 이런 '럭셔리'한 급식 시설은 흔치 않다.

지금은 체중 감량을 위해 제한급식을 (당)하고 있는 나무가 밥을 원 없이 먹던 시절. 공원의 길냥이들을 아끼는 캣맘이 특별히 공수해 온 원목급식소는 지붕이 있어 비가 올 때 길냥이 사료가 젖는 걸 막아 준다. 이런 '럭셔리'한 급식 시설은 흔치 않다.

2016년 9월 x일  
가을비가 내렸다. 급식소에서 비를 맞으며 밥을 먹는 나무를 발견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우산을 들고 나왔다. 크기가 너무 커서 평소에 잘 안 썼던 우산인데 급식소를 덮기엔 딱 맞았다. 좁은 공간을 좋아하는 나무가 우산 밑으로 쏙 들어가 앉는다. 그래, 그렇게 쓰는 거란다.
 
2016년 9월 x일
나무는 오후에 가장 바쁘다. 초딩들이 학교에서 몰려나오는 시간. 귀찮아 질 수도 있는 시간인데, 나무는 굳이 자전거길 한가운데나 풀밭에 앉아 있곤 한다. 분명 자신의 뜨거운 인기를 즐기기 때문일 거다. 초딩들은 나무를 발견하면 빙 둘러서서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다. 더러는 나뭇가지 등을 주워다 휘두르며 관심을 끌려고 애쓴다. 한 명이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으면 너도나도 우르르 달려든다. 옆에서 지켜보는 어른은 초조하다. ‘나무 오빠 피곤하시니까 줄 서서 한 명씩 오실게요!’ 맘 속으로만 외쳐본다.
팬미팅과도 같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나무는 슬그머니 일어나 잘 곳을 찾는다. 대개 초딩들의 손이 닿지 않는 수풀 속이나 폭신하게 쌓인 낙엽 위다. “나무 자나 봐. 이제 가야지.”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초딩들이 나무의 낮잠을 위해 하나둘 자리를 뜬다. 생명을 존중하는 법을 이렇게 배워가나 보다.
 
나무는 겁도 없이 자전거길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골골송'(고양이가 기분이 좋을 때 내는 '고롱고롱 혹은 골골' 소리)을 부르곤 했다.

나무는 겁도 없이 자전거길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골골송'(고양이가 기분이 좋을 때 내는 '고롱고롱 혹은 골골' 소리)을 부르곤 했다.

2016년 10월 x일
나무의 사회생활을 목격했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진 않았다. 나무가 다른 길냥이를 졸졸졸 따라다니는데, 아무리 봐도 같이 노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나무보다 덩치가 크고 연배가 있어 뵈는 그 길냥이는 나무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무가 다른 고양이와 어울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아들내미를 보는 기분이 이럴까. 멀찍이서 발만 동동 구르다 집으로 돌아왔다.
 
2016년 10월 x일
나무의 또 다른 보호자를 만났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공원 길냥이들을 챙겨주는 손길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실제로 마주친 건 처음이다. 캣맘들은 능숙하게 급식소에 사료를 채우고, 참치캔 간식을 나눠줬다. ‘가끔 마실 물을 갈아주고 비 올 때 우산을 놓아줬던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더니 “아~”하며 알아 보신다.
“이 녀석 정말 애교가 많아요, 그쵸?” 나무의 귀여움을 찬양하며 시작한 대화는 이내 걱정으로 이어졌다. 사람을 너무 따라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긴, 나무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모두 캣맘이나 초딩들처럼 무해하다는 보장은 없다. 동네 길냥이들에게 배척을 당하는 것도 사람을 반기는 성격 때문인 듯했다. 길에 사는 고양이는 야생 동물에 가깝다. 보통은 사람을 보면 멀리 달아난다. 밥을 주는 캣맘에게도 가까이 가지 않는 고양이가 많다. 길냥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 편이 옳다. 이미 사람을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선배 길냥이’들에게 나무는 별종이고 기피 대상이었을 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이토록 예쁨을 받으니 굶어 죽지는 않겠다’며 안심했던 내 생각이 와장창 깨졌다. 우리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나무는 천하태평하게 ‘발라당(배를 보이고 드러눕는 모양)’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나도 캣맘들의 걱정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글·그림=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캣셔너리 -고양이 용어 사전-
길냥이 길에 사는 고양이를 뜻하는 ‘길고양이’를 귀엽게 부르는 말. 길냥이는 한 명의 집사는 없지만 여러 명의 캣맘을 거느리기도 한다.
캣맘 모든 고양이에게 집사를 내리지 못해 미안했던 신이 길냥이들에게 보내준 천사들. 길냥이들의 건강과 식사를 꼼꼼히 챙긴다.
급식소 길냥이와 캣맘들의 약속의 장소. 이 곳에 오면 언제나 먹을 것이 있다.
아깽이 ‘아기 고양이’의 애칭. 주로 성묘(어른 고양이)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손바닥만한 존재들을 말한다.
치즈냥 나무와 같은 노란색 줄무늬 고양이. 한국의 길냥이 종인 ‘코리안숏헤어’ 중 가장 흔한 색깔이다.
골골송 고양이가 아주 만족스럽고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 ‘골골골’ 또는 ‘고롱고롱’ 정도로 표현된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