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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sible 한반도] 김정은, 소련 따라간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과연 핵무기를 어떻게 할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면서 비핵화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반면 과거 기만 전술적인 행동으로 이번에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과거 미국과 소련의 핵 협상 과정을 보면 북·미간의 협상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소련은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해 미국의 핵무기 독점을 깨뜨렸다. 그리고 53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그 이후 한동안 잠잠했다. 화근은 소련이 57년 미국을 제치고 로켓 추진력에 의한 첫 번째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를 궤도 상에 쏘아 올린 것이다.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중앙포토]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중앙포토]

 
소련은 미국을 명중시킬 만큼 강력한 로켓에 의해 추진되는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선제공격할 수 있게 됐고 미국은 이를 방어해 낼 수 없었다. 미국은 이를 ‘스푸트니크 쇼크’라 불렀다.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무기체계와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서 당연히 소련을 앞서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핵실험 이후 스푸트니크호 발사까지 8년 동안 잠잠했다가 그 이후 미국에 공격적으로 변했다. 61년 베를린 위기를 거쳐 급기야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정점에 달했다. 핵무기보다 장거리 미사일이 미국과 소련의 긴장을 촉진하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전쟁으로 갈 뻔했던 상황까지 이르렀다가 협상으로 끝났다. 그리고 미·소는 72년 군비통제 조약으로 ABM(Anti-Ballistic Missile) 을 체결했다. 군비경쟁을 완화하는데 시금석이 된 대표적인 조약이다. 미·소는 핵무기 경쟁을 하다가 장거리 미사일로 핵전쟁 위기로 갔다가 결국 협상으로 돌아섰다.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흐루쇼프(왼쪽)와 케네디. [중앙포토]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흐루쇼프(왼쪽)와 케네디. [중앙포토]

북·미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수소폭탄을 포함해 6차례 핵실험을 감행했다. 유엔 대북제재는 강화됐고 북·미간의 긴장은 고조됐다. 그러는 사이 북한은 2017년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괌 포위사격까지 엄포를 놨다. 이에 미국은 항모전단 3척이 한반도 주변에 집결시키는 고강도로 대응했다. 북한은 2017년 11월 신형 ICBM 화성-15형을 발사하고 서둘러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김정은은 소련보다 형식과 내용에서 다를지언정 협상으로 빠르게 가고 있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것이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김여정 특사를 보내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리고 방북한 대북 특사단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해 비핵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김정은이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이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소련은 49년 핵실험→57년 스푸트니크호 발사→61년 베를린 위기→62년 쿠바 미사일 위기→72년 ABM 조약 체결 등을 밟았다. 핵실험에서 조약 체결까지 23년이 걸렸다. 
 
북한은 2006년 핵실험→2017년 ICBM 발사→2018년 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진행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가시적인 조치가 나오면 핵실험에서 12년이 걸린 셈이다.
 
북한에 핵무기 야욕을 키워 준 나라는 소련이다. 소련은 64년 북한 영변에 핵연구소를 건설하고 85년 핵발전소 건설협정까지 체결했다. 조건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이었다. 그리고 핵발전소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로 핵발전소 건설은 중단됐고 북한은 독자적인 핵개발로 갔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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