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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의 퍼스펙티브]'1988년 체제' 허물어야 MBC가 산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MBC 방송인들은 2012년에 인디언을 본받기로 했다. 사장이 물러날 때까지 파업할 작정이었다. 왜 그 길을 택했는가? 파업에 참여했다가 정직 징계를 받은 MBC 임명현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방송의 정권 종속화’를 더는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 기자는 최근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라는 석사 논문을 썼다. 그에 따르면 2011년 들어 보수 정권의 방송 통제가 극심해졌다. MBC의 간판 프로그램 ‘뉴스데스크’는 4대강 사업,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 민간인 불법 사찰, 10·26 재보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 쟁점 사안을 줄여 보도하거나 빼야 했다. 또 다른 간판 프로 ‘PD수첩’도 방송을 연기하거나 내보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노조원들은 결국 2012년 1월 30일부터 사장 퇴진을 촉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사장은 물러나지 않았지만, 노조는 170일 만에 파업을 접었다. 정치권이 그 명분을 만들었다. 여야가 국회 개원에 앞서 MBC 지배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가 노사 양측의 요구를 ‘합리적 경영 판단 및 상식과 순리에 따라’ 조정하도록 협조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한 것이다.  
 그럼 MBC는 파업 이후 상식과 순리에 따라 노사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했는가? 아니다. 경영진은 노조가 파업을 풀자 곧바로 칼자루를 휘둘렀다. 6명을 해고하고 38명에게 정직  처분을 내렸다. 그 뒤에도 징계가 이어졌다.  
 아울러 경영진은 이른바 ‘비인격적 인사 관리’를 통해 징계 아닌 징계를 자행했다. 취재기자를 보도 지원부서로 돌리는가 하면, 광고국이나 마케팅부서 등과 같이 취재보도와 거리가 먼 곳으로 밀어냈다. PD나 아나운서·엔지니어들도 마찬가지였다. 내로라하는 PD를 아이스링크 관리부서로 유배 보내기도 했다. 임 기자에 따르면 경영진에 의해 잉여적 존재로 규정된 방송인은 제작 현장에서 격리됐고, 도구적 존재로 규정된 방송인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뉴스나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최승호 체제, 성공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MBC는 한바탕 난리를 벌였다. 구정권에서 구여권 추천을 받은 방문진 이사 일부가 다양한 압박을 받아 사퇴했다. 이사장도 바뀌었다. 해직을 당했던 최승호 PD가 사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해직됐거나 한직에 머물던 방송인들이 제자리를 찾고 일부는 고위 간부가 됐다.  

 그럼 최승호 체제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 가늠자의 하나가 MBC 뉴스의 불편부당성 수준이다. 2012년 한 해에 해고, 정직 6개월, 다시 해고라는 징계를 받은 박성호 기자는 최승호 사장이 들어선 뒤 앵커를 맡았다. 해직 상태에서 대학원에 들어간 그는 KBS와 영국 BBC의 선거 보도를 비교·분석한 ‘공영방송 뉴스의 불편부당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 기자는 논문에서 KBS와 BBC가 모두 균형성을 내세우지만, BBC가 전체성과 완전성의 추구를 통해 균형성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데 반해 KBS는 기계적인 균형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또 BBC 보도가 적절한 불편부당성을 유지했다면, KBS 보도는 적절하지 않은 불편부당성에 갇혀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지금 많은 시청자의 시선이 MBC에 꽂혀있다. 임 기자가 말한 방송의 정권 종속화를 지양하면서, 박 기자가 역설한 ‘보도의 적절한 불편부당성’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눈을 뚝 뜨고 지켜보고 있다. 최승호 체제의 성패는 물론 우리 방송저널리즘의 미래가 거기에 걸려있다.  
 
 지배기구의 구조적 문제 해소해야  
 MBC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보수의 나팔수가 되고,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진보의 고적대가 된다. 그 기박한 팔자는 어디에 연유하는가? 근본적으로는 지배기구의 구조적 성격 때문이다.  
 MBC의 최다 출자자인 방문진은 이사장 1인을 포함해 모두 9인으로 이사회를 구성한다. 이사는 정부 여당과 야당의 추천을 받아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 여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를 이사로 추천하기 때문에 이사회 자체가 여야 정파의 대리전을 치르는 전장이다. 싸움은 2대1로 수가 많은 여권의 승리로 귀결한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는 정부모델, 의회모델, 전문모델, 시민모델의 네 유형이 있다. 정부모델은 공영방송을 정부와 여당이 직접 통제하는 모델이다. 의회모델은 의회의 의석 비율에 따라 지배기구를 구성한다. 전문모델은 방송사의 전·현직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시민모델은 다양한 시민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대변할 사람을 참여시켜 다원성을 구현하고자 한다. 
방송학회 차기 회장인 전남대 주정민 교수는 “현행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정부모델과 의회모델의 절충형태로 볼 수 있다"며 "방송의 독립성과 공영성을 강화하기 위해 현행 제도에 전문모델이나 시민모델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대리인단이 사장 선출하면 
 
 이사회 개편도 중요하지만 사장 선출 제도만 손봐도 획기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2012년 MBC 파업을 주도한 이용마 기자는 국민대리인단을 구성해 사장을 뽑자고 외치고 있다. 무작위로 101명을 뽑아 국민대리인단을 구성해 그들에게 사장 선출을 맡기자는 것이다.  
 “국민대리인단이 사장을 선출하면 사장은 권력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국민을 바라보며 MBC를 경영하지 않겠어요? 사장이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을 보고 방송사를 이끈다면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핵심 장애가 사라지는 셈이죠.”
 국민대리인단이 사장을 선출하는 과정에 MBC 관계자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기자의 지론이다. 기자나 PD 등 방송인은 사장이 누가 되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기자의 제안은 MBC가 아닌 KBS가 먼저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KBS 이사회는 시민자문단을 구성해 사장 후보들을 평가하게 했다. KBS 이사회는 자문단 평가점수(40%)와 이사회 점수(60%)를 합산해 최종 후보자를 가렸다. 이제 MBC가 이 기자에게 응답할 차례다.  
 
 민영화는 절대 안 되는가
 여야 권력이 방송사 이사회를 분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은 정치권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MBC 민영화를 검토할 필요는 없을까? MBC는 애초 민영방송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사주인 김지태를 부정축재자로 몰아 MBC를 빼앗았다. 김지태는 방송을 국가에 헌납한다고 했지만, MBC는 5·16장학재단이 가져갔다.
 이 재단이 방송의 경영 주체가 된 뒤에도 MBC는 민영체제를 유지했으나, 신군부가 등장하고 나서 공영방송으로 둔갑했다. 신군부가 1980년 11월 언론 통폐합을 단행하면서 MBC 주식의 70%를 KBS에 현물로 출자함으로써 KBS가 졸지에 MBC의 대주주가 되고, 덩달아 MBC가 공영방송이 된 것이다. MBC는 88년에 방송문화진흥법이 제정돼 공익법인으로 새로 자리매김했다. 이 법을 근거로 설립된 방문진이 MBC 주식의 70%를 보유한 대주주가 돼 오늘에 이르렀다.  
 여론은 섬겨야 하지 지배할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권력과 언론은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견제와 균형의 관계라야 한다. 여야 정치권력이 이사회라는 지배기구를 분할해 미디어를 지배할 적실성은 없다. MBC 구성원이 일정 지분을 보유하는 것을 전제로, 시민주 모집 등을 통해 시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영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사회가 사회적 논의기구 만들어야
MBC 기자로 활동하다가 80년에 해직당해 7년 뒤에야 복직했고, 후배인 최문순 PD가 사장이 되자 지방 MBC 사장직을 물러나야 했던 양영철 전 사장은 말했다. 

“언론의 핵심적 소임은 산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나 현 체제에서는 죽은 권력을 부관참시하기는 쉬워도 산 권력을 감시하기는 절대 쉽지 않아요. 근본적 처방을 마련해야해요.”    
 지금 MBC는 88년 체제다. 그때 방문진이 만들어졌다. MBC를 30년 전의 그 틀에 그냥 묶어둬야 할까? 아니다.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거쳐 노태우 시대에 완성된 88체제는 민영방송이던 MBC를 공영의 허울에 가두고 사실상 정치권력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88체제를 허물어야 MBC가 산다. 앵커를 역임한 엄기영 전 사장은 말했다.  
 “이제 방문진 이사회가 큰일을 할 시점에 놓여있어요. 공영체제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그 체제를 그대로 둔다면 이사회 구성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이용마의 국민대리인단 제도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민영화 방안을 검토할 것인지 등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야 해요. 이사회가 직접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 그 작업을 맡게 했으면 해요.”
 방문진 이사들은 그들을 추천한 정치권력의 대리인 역할에 자족할 것인가? 아니면 MBC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할 것인가? 거듭되는 MBC의 흑역사가 지금 방문진 이사회에 그걸 묻고 있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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