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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사향노루 똥만 찾아 헤맸죠”…흔적 발견된 곳은?

DMZ 일대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사향노루. [사진 국립생태원]

DMZ 일대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사향노루. [사진 국립생태원]

지난 8일 오후 강원도 화천군 민통선 인근의 한 도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양옆으로 눈이 채 녹지 않은 가파른 산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차를 타고 군 초소를 지나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니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멧돼지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남한 최북단에 위치해 지난 60여년 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곳은 야생동물에겐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다. 멸종위기종 중에서도 개체 수가 가장 적다고 알려진 사향노루의 흔적을 찾아 기자가 이곳을 찾은 이유다.
멸종위기종인 사향노루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 화천군 일대. [천권필 기자]

멸종위기종인 사향노루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 화천군 일대. [천권필 기자]

기자는 황기영(44) 네이처원 소장의 안내를 받아 도로 한쪽에 차를 세우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황 소장은 2012년부터 산양·사향노루 등 멸종위기 동물을 조사하는 현장 연구가로 활동해 왔다. 재작년부터는 이 일대를 돌며 사향노루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그를 따라 산을 오르다 보니 경사면 여기저기에 야생동물의 분변이 흩어져 있었다. 황 소장은 하나하나 설명했다. “이건 산양이 남긴 거예요. 산양도 멸종위기종이지만 사향노루의 흔적은 훨씬 찾기가 힘들죠.”
눈을 걷어내자 사향노루의 것으로 추정되는 분변이 나타났다. [천권필 기자]

눈을 걷어내자 사향노루의 것으로 추정되는 분변이 나타났다. [천권필 기자]

한 시간쯤 올라갔을까. 황 소장이 나뭇가지로 바닥의 눈과 낙엽을 치우자 콩알만 한 작은 분변들이 나타났다. 사향노루가 남긴 것이었다. “사향노루는 몸집이 고라니보다도 작기 때문에 분변도 5㎜ 정도로 조그맣죠. 얼마 되지 않은 분변에선 사향노루만의 독특한 냄새가 나요.”
분변의 흔적을 따라 산길을 좀 더 오르니 이번엔 꼬불꼬불한 모양의 사향노루 털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향노루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사향노루의 것으로 추정되는 털뭉치. [천권필 기자]

사향노루의 것으로 추정되는 털뭉치. [천권필 기자]

DMZ 등에 극소수만 생존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인 사향노루. [사진 환경부]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인 사향노루. [사진 환경부]

천연기념물 제216호이자 멸종위기 1급으로 지정된 사향노루는 멸종위기종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동물이다. 시베리아와 몽골, 중국, 한국에 걸쳐 서식하는데 1920~30년대에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국제적으로도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에서 ‘취약(Vulnerable)’ 종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사향노루 수컷의 사향주머니. [중앙포토]

사향노루 수컷의 사향주머니. [중앙포토]

수컷의 생식기와 배꼽 사이에 있는 사향(麝香) 주머니에서 만들어지는 사향이 고급 약재와 향수의 원료로 쓰이면서부터 사향노루는 무분별한 밀렵의 희생양이 됐다. 사향은 한국에서도 g당 10만 원 이상에 거래될 정도로 고가의 한약재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진한 향을 풍기는 사향이 멸종의 위기를 불러온 셈이다.
 
국내에서도 한때 전남 목포에서부터 백두산까지 전국적으로 많이 살고 있었지만, 밀렵 탓에 그 수가 급속도로 줄었다. 1960년대 이후로는 DMZ(비무장지대)와 일부 산악 지대에 극소수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국내에는 30마리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개체 수가 워낙 적은 데다가 겁이 많고 단독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흔적을 찾기조차 어렵다. 황 소장은 “수년간 사향노루의 흔적을 찾아다녔지만 실제로 사향노루를 본 건 딱 한 번밖에 없다”고 했다.
6마리 서식 결정적 단서는 ‘분변’
강원도 화천군 민통선 인근의 산에서 발견된 사향노루 분변.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강원도 화천군 민통선 인근의 산에서 발견된 사향노루 분변.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생물자원관이 최근 발표한 ‘주요동물자원의 유전자 다양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은 화천군 일대에 사향노루가 6마리 이상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내 연구진이 사향노루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단서는 사향노루가 남긴 분변 덕분이었다.
주삿바늘 등을 사용해서 생체 시료를 직접 채집하는 방식이 아닌, 분변이나 털 등 비침습 시료를 채집해 유전자를 분석하는 방식을 국내 최초로 사향노루를 찾는 데 적용했다. 덕분에 한정된 서식지에서 사는 사향노루의 개체 수를 유전적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이 기법은 대상종을 직접 접촉하지 않고 연구를 할 수 있는 데다가 혈연관계까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멸종위기종의 서식환경을 파악하는 데 활용도가 높다.
국립생물자원관 안정화 연구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멸종위기종에 위해를 가하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생태 유전학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사향노루 분변을 채취하는 황기영 소장.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사향노루 분변을 채취하는 황기영 소장.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하지만, 그만큼 조사를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단점도 있다. 이번 연구 역시 사향노루의 분변을 수집하는 데만 반년이 넘게 걸렸다.
현장 조사원으로 연구에 참여한 황 소장은 1년 전부터 화천군 민통선 일대를 전수조사하면서 사향노루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6개 지역을 선정했다. 그리고는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매달 2주씩 산속에 머물면서 사향노루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분변 369개와 털 등 유전자 분석에 필요한 시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황 소장은 “사향노루는 삵이나 담비 같은 포식자들을 피해 햇볕이 들지 않는 북사면의 바위 사이에 숨어 지낸다”며 “활동반경이 좁기 때문에 흔적을 따라다니면서 분변을 채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식지가 확인된 만큼 사향노루를 복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립생태원 최태영 책임연구원은 “사향노루는 DMZ가 없었다면 벌써 멸종이 됐을 만큼 국내에서 가장 사라질 가능성이 큰 동물 중 하나”라며 “서식이 확인된 지역을 대상으로 밀렵을 막고 사향노루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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