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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편집의 힘, 마음만 먹으면 ‘맞춤형 아기’도 가능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유전자가위 어디까지
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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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5살 소년 로렌조는 또래 아이들과 공을 차고 있었다. 다른 날과 달리 다리에 힘이 빠졌다. 이후 말이 어눌해지고 눈이 안 보이고 사지가 마비됐다. 의사는 유전 불치병(부신백질이영양증)이라 했다. 이후 5년간 부모는 도서관에서 밤을 새워 치료제(로렌조 오일)를 찾아냈다. 이 실화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로렌조 오일’(1992, 미국)에서 아이(로렌조)는 기적의 치료제 덕분에 완치돼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소년 로렌조는 ‘기적의 오일’로 치료되는 듯했지만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22년을 사지마비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다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대물림되는 치명적 유전병에 그동안 과학은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치료 희망이 보인다.
 
 현재 20개 유전병 치료 임상실험이 진행 중이다. 유전병만이 아니다. 대물림되지 않지만 비정상유전자 때문에 생기는 질병(자궁경부암·폐암·망막이상 실명·심장병·AIDS·청력손실)도 치료 가능하다. 핵심에는 ‘초정밀 유전자가위’기술이 있다. 족집게처럼 비정상 유전자만을 정상으로 바꾼다. 하지만 ‘맞춤형 아기’도 가능하다는 말에 섬뜩하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유전자치료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보자.
 
 
영화 ‘로렌조 오일’ 유전병 치료 확률 88%
주걱턱이 인상적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2세. 유전자와 환경이 주걱턱의 원인이다.

주걱턱이 인상적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2세. 유전자와 환경이 주걱턱의 원인이다.

5살 로렌조 몸에서는 비정상유전자 때문에 ‘독성 지방산’이 만들어졌다. 이놈이 두뇌·척추 신경다발 보호껍질(미엘린)을 파괴했다. 껍질이 벗겨지면 신경전기신호가 제대로 가지 않아 사지가 마비된다. 발병 2~3년 내 사망하거나 전신마비 상태로 5~15년 연명하기도 한다. 현실 속 로렌조 부모가 찾아낸 치료제는 오일(올리브, 유채)이다. 오일성분(올레인산)을 먹이자 로렌조 혈액 속 독성 지방산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병이 치유되지는 않았다. 평생침대에 누워 있다 사망했다. 95년 전 발견된 ‘로렌조 유전병’은 아직도 치료법이 없다. 다른 787종 유전병들도 마찬가지. 증상을 늦추기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완치하려면 비정상유전자를 고쳐야 한다.
 
 유전자치료(Gene Therapy)는 두 가지다. 첫째 비정상유전자를 놔두고 정상을 추가하기, 둘째 비정상을 없애고 정상을 넣기다.
 
 추가하는 첫째 방법이 기술적으로 더 쉽다. 몸의 필요 부분 세포에 정상유전자를 추가로 삽입하면 정상단백질이 추가로 만들어진다. 정상유전자를 바이러스(아데노)에 실어 세포핵 속 DNA에 삽입시킨다. 이 바이러스는 인체호흡기를 들락거리는 놈이다. 마치 창고를 들락거리던 쥐처럼 잘 들어간다. 크게 위험하지도 않다.
 
 둘째 방법, 즉 비정상유전자를 현장에서 정상으로 고치는 방법이 근본 치료다. 최근 개발된 초정밀유전자 가위기술이 그 핵심이다. 비정상부위의 염기(A·T·G·C)를 하나하나 정상으로 바꾼다. 2년 연속 세계 10대 기술로 선정됐다. 유전자가위가 발견된 곳은 놀랍게도 박테리아 속이었다. 그 기술은 인간면역을 뺨친다.
 
 박테리아는 외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바이러스 DNA를 산산조각낸다. 이후 조각난 DNA에 착 달라붙는 짝꿍(가이드RNA)을 방어용 무기로 차곡차곡 준비해 놓는다. 침입했던 바이러스가 또 들어오면 준비된 짝꿍 RNA가 착 달라붙어 DNA를 잘라 내기 시작한다. 30억 년 살아온 박테리아 90%가 보유한 고도방어무기다. 이를 발견한 과학자들이 무릎을 쳤다. DNA를 원하는 대로 수정할 수 있지 않을까? 개발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는 3종 세트다. 타깃DNA에 달라붙는 짝꿍RNA(CRISPR), 타깃DNA를 자르는 가위(cas9 효소), 그리고 바꾸려는 DNA다. 짝꿍RNA가 달라붙으면 가위가 자르고 바꾸려는 DNA가 대신 채워진다.
 
 병원에서 유전자 가위치료방법은 두 가지다. 직접 몸에 주사하거나 환자줄기세포를 꺼내 가위로 정상으로 만든 후 재주입한다. 정상유전자 덕분에 정상단백질이 만들어지니 몸이 정상으로 작동한다. ‘치료 끝’이다. 만약 35년 전 로렌조가 같은 유전병으로 지금 다시 태어난다면 치료될 수 있을까? 확률은 88%다.
 
 2017년 보스턴대학 연구진은 ‘로렌조 유전병’환자 17명에게 유전자 임상치료를 실시했다. 그 결과 88%(15명)에게서 병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방법은 간단했다. 연구진은 환자 몸에서 줄기세포를 꺼내 여기에 정상유전자를 추가로 삽입했다. 이 정상 줄기세포를 환자에게 정맥주사했다. 새로 들어간 정상 줄기세포덕분에 더 이상 신경다발 보호껍질이 손상되지 않았다. 신호전달이 제대로 됐다. 사지마비가 없어졌다. 유전자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지금 침대 대신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다. 이와 유사한 유전자치료 임상실험이 전 세계에서 20건 진행 중이다. 어떤 질병까지 치료 가능할까.
 
 
주걱턱 유전 때문에 병약했던 합스부르크가
중세 유럽 최대 왕실 합스부르크가는 주걱턱 왕가다. 기형적 턱 구조로 제대로 음식을 씹지 못해 항상 병약했다. 급한 대로 턱을 가렸다. 스페인 카를로스 2세는 턱수염으로, 프랑스 마리 앙투와네트는 부채로 가렸다. 주걱턱뿐만 아니라 혈우병, 색맹도 유전된다. 비정상 유전자로 생기는 모든 질병은 원칙적으로 유전자치료가 된다. 여기에는 대물림과 상관없는 에이즈(AIDS), 자궁경부암도 포함된다. 어떻게 가능할까.
 
 2017년 6월 중국 중산대학은 자궁경부암 환자 20명 경부에 유전자가위세트 주사 임상을 시작했다. 자궁경부암은 문란한 성생활로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자궁상피세포에 침입해서 생긴다. 이 바이러스는 인체 다른 세포(구강·목·혀·인후·두뇌)에도 침입, 암을 일으킨다. 현재까지 백신예방은 가능하지만 치료법은 없다. 치료원리는 간단하다. 유전자가위로 정상세포DNA는 놔두고 감염 세포 내 바이러스DNA만 자른다. 이 원리를 AIDS 치료에도 적용한다. AIDS는 바이러스(HIV)가 면역T세포를 감염시켜 발생한다. 연구진은 환자면역T세포를 꺼내서 바이러스가 들어오는 입구유전자(CCR5)를 가위로 잘라낸 후 다시 주입했다. AIDS 출입구를 막은 셈이다. 환자는 이후 AIDS 억제약을 먹지 않아도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 이 방법으로 폐암치료도 임상에 들어갔다. 환자 면역T세포를 꺼내 면역에 걸려 있는 ‘브레이크(PD-1)’를 가위로 잘라냈다. 브레이크 풀린 면역세포는 암을 공격했다.
 
 2017년 8월, 미 FDA는 유전자치료기술로 브레이크 풀린 면역세포 항암치료제(급성백혈병) 임상을 허가했다. 연이어 12월 비정상 망막유전자로 생긴 선천성 실명치료주사도 승인했다. 이 주사는 이미 20명 대상 실험에서 한 번 주사로 65%가 시력을 찾았다. 이제 유전자치료 인간 본격적용은 시간문제다. 만능 유전자가위기술, 이 방법의 위험성은 무얼까.
 
 현재 유전자 가위기술은 환자 몸에 직접 주사하기 때문에 그 사람, 그 부위는 치료되지만 그 자식은 비정상유전자가 대물림된다. 대물림을 막으려면 자식 유전자가 불어나기 시작하는 수정란 상태, 즉 배아단계에서 고쳐야 한다. 하지만 인간배아교정은 ‘맞춤형 아기’도 가능케 한다.
 
 
치료와 개량, 어디서 멈출지 고민할 때
2017년 8월, 유명학술지 ‘네이처’에는 수정란의 비정상 심장유전자를 유전자가위로 교정, 정상으로 만든 연구가 실렸다. ‘맞춤형 아기’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인간개량이 아닌 치명적 심장병치료’라고 오리건대학 연구진은 반박했다. 하지만 치료와 개량의 경계는 모호하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 치료를 넘어 더 좋아진다면 부모로서는 욕심을 낸다.
 
 미국 식품의약 안전청(FDA)은 배아교정 임상시험을 금지했다. 현재 배아교정은 못하지만 인공수정시 치명적 유전자 결함을 조사, 부적절한 배아는 폐기한다. 일종의 선별이다. 이제는 개인들도 유전자검사로 치명적 유전병 이외에 심장병·우울증·비만·운동능력·눈색깔·키·알코올중독가능성도 알 수 있다. 사실상 아이 특성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맞춤형아기’는 마음만 먹으면 사실상 가능하다. 이제 과학은 인간배아 선별을 넘어 배아유전자수정이 가능한 곳까지 와 있다. 어디까지 갈 수 있고 어디에서 멈추어야 할까?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몹쓸 병들을 이제는 고쳐야 한다. 유전자 치료기술은 거기까지다. “천재와 멍청이의 차이는 천재는 어디가 한계인가를 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어디에서 멈추어야 할지를 고민할 때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서울대 졸업. 미국 조지아공대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창의재단 바이오 문화사업단장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를 통해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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