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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솔직하게, 뻔뻔하게 … 시인 김수영은 위대한 산문가

김수영 전집

김수영 전집

김수영 전집 1·2
김수영 지음

사후 50주년 맞아 전집 새로 나와
자신의 어둠마저 가감없이 까발려
“혁명은 금방 상하는 생선 같은 것”
자유를 향해 달려갔던 치열한 언어

이영준 엮음, 민음사
 
오래전 나는 내 어느 글에서, 고인(故人)이 된 한국 문인들 중 만일 하나님께서 하룻밤 이승으로 다시 보내주신다면 부디 단둘이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해 보고픈 이를 셋 꼽았던 적이 있었다. 시인 김수영, 문학평론가 김현, 시인 진이정이 바로 그들이다. 차례로 사십칠 세, 사십팔 세, 삼십삼 세에 돌아가셨으니 비록 그들이 속했던 시대의 한국인 평균수명이 각기 다르다 하여도 공히 세상을 일찍 등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가을 『김수영 전집』 1·2를 우연히 접하기 전까지 김수영이라는 시인을 전혀 알지 못하였더랬다. 우선 『김수영 전집』 2(산문)의 엄청난 두께에 놀랐던 나는 곧이어, 시인 김수영의 산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니컬함’에 난생처음 록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먹었던 것 같다. 아, 시인이고 뭣이고를 떠나서, 어떻게 한 인간이 이토록 뻔뻔하게 치열하고 솔직할 수 있단 말인가. 괴팍함과 아름다움이 어찌 이렇게 당연히 일치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이 그의 성격을 지나 그의 철학이자 과학이고 작가로서의 입장이자 생명, 곧 그의 문학 자체라는 사실을 온전히 깨달은 건 한참 뒤였다. 대신 나는 사랑에 빠진 소년이 되어 읽고 또 읽었다.
 
김수영 전집

김수영 전집

김수영의 아내는 김수영의 관 속에 그가 평소 열독해 마지 않던 하이데거의 전집을 넣어줬다던데, 그런 식이라면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 관 속에는 『김수영 전집』 1·2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너덜너덜해지면 아무 갈등 없이 새로 산 다음, 낡은 것은 화장실에 비치해두는 짓을 서너 차례 반복했으니 와중에, 열일곱 살 가을 구입했던 그 『김수영 전집』 1·2는 닳아지고 닳아지다 소실되고 없다. 그리고 오늘 내 책상 앞에는 ‘김수영 사후 50주년 결정판’ 『김수영 전집』 1·2 두 권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다. ‘감회에 젖는다’는 것과 ‘감동’이라 함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름이다. 위대한 시인인 김수영은 위대한 시인조차,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 더 도달하기 힘든 경지인 위대한 산문가이기도 했다. 산문에서는 시인과 소설가가 자신의 모든 범박(汎博)함들을 요리조리 꽃꽂이해버릴 수 있는 ‘수사학적 범죄면허’가 일절 통하지 않는다. 시와 소설에서는 미학일 수 있는 요소들이 산문이라는 철조망 둘러싸인 팔각의 링 위로 올라와서는 나약한 반칙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시인 김수영(1921~1968).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읽힌다. 시인들이 특히 그의 시를 사랑해 ‘시인들의 시인’으로 통한다. 그의 전집 개정판이 최근 출간됐다. [중앙포토]

시인 김수영(1921~1968).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읽힌다. 시인들이 특히 그의 시를 사랑해 ‘시인들의 시인’으로 통한다. 그의 전집 개정판이 최근 출간됐다. [중앙포토]

산문은 연극공연이 아니라 종합격투기(MMA)다. 뛰어난 시인과 소설가들 가운데서조차 뛰어난 산문가가 거의 드문 것은 그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문학사에서 자신의 시라든가 소설의 업적에 비견하거나 그것들을 뛰어넘는 동시에 그것들과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산문을 남긴 작가는 시인 김수영과 소설가 최인훈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김수영 사후 50주년 결정판’ 『김수영 전집』의 발간에 감격하며 반드시 교정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모더니스트 김수영은 이 해괴망측한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오용되고 악용돼 오염되고 모욕 받아왔다. 그는 정치투사가 아니었고 그의 문학은 ‘자유’였지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총 181편(이 전집을 통해 발굴된 시 7편을 포함)의 시들 속에서 과연 도시의 시인답게 ‘바다’라는 낱말을 단 한 번 사용한 김수영은, 시인이란 설령 천국에 있다고 한들 천사들의 행태를 비아냥거리고 하나님에게도 이의를 제기하는 존재라는 진실을, 혁명이란 그것이 그 어떤 천금의 값어치를 지닌 것일 지라도 인간과 세상의 환희 속에서 금방 상해버리기 쉬운 생선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어둠조차 스스로 환하게 까발리는 정직함을 자신의 시와 산문으로 실천한, 아직까지 우리 ‘한국문학사의 유일한 진보지식인’이었다. 하여 어디서건 정확하고 정교한 안티테제이길 소망했던 그는 외로웠고 괴로웠고 방황했고 미쳐갔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인은 세상의 적(enemy)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보들레르였으니, 만약 오늘날 김수영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어느덧 1968년의 여름밤 버스에 치여 사망한 그의 당시 나이보다 한 살이 더 많은 내게 그는 무슨 말을 건네올 것인가? 필경 그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너는 문인이 맞는가? 지금 네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너의 세상이 천국이건 지옥이건 간에, 너는 그곳의 적인가? 너는 너의 적이 있기는 한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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