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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일본, 플레이어와 옵저버 사이

남윤호 도쿄 총국장

남윤호 도쿄 총국장

요즘 일본인이 남북대화에 대해 의견을 물어오면 답을 듣기보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신중론으로 시작해 이쪽 눈치를 보다가 회의론으로 끝내곤 한다. 궁금해서가 아니라 답답해서 묻는다는 인상이다.
 

남북대화에 보인 냉랭한 반응은
외교 고립에 대한 불안감 탓
한반도 이해관계자 자처하는 일본
북핵 해결 위해선 협조 꼭 필요
대북제재 재확인해 안심시켜야

일본 언론은 좀 더 회의적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다. 북한이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던 과거 합의 사례, 김정은의 모순적 언동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한국 특사단의 설명과는 달리 핵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한 노동신문 기사, 영변 핵시설에서 흑연감속로의 가동 흔적을 시사하는 위성사진(38노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유도 시스템을 개량 중이라는 CNN 보도 등이 꼼꼼히 이어졌다. 김정은이 2012년 4월 15일 첫 대중연설을 “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앞으로!”라는 구호로 마무리한 것도 다시 회자된다. 이외에 미사일 발사를 지도하는 김정은의 모습 등 호전적 동영상이 TV 채널을 바꿔 가며 돌아가고 있다. 김정은의 입에 물려 있는 올리브 가지가 실은 가짜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갑자기 풀만 먹고 살겠다는 육식동물 보는 듯한 눈초리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도 섭섭해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동안 대북제재의 한 전선을 담당해 온 일본을 제쳐 뒀다는 불만이다. 이는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 자민당 총재 외교특보가 7일 워싱턴 강연에서 한 말에 진하게 묻어 난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쇼로서 긴장이 완화된 것처럼 연출될 게 틀림없다.”
 
미국에 대해선 싫은 소리를 못하지만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고립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이 부쩍 많이 쓰는 말이 ‘아타마고시(頭越し)’다. 모르는 사이에 자기들 머리 위에서 뭔가 일이 진행된다는 뜻이다. 우리식 표현으론 ‘재팬 패싱’이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예민한 반응들이다.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감지된다.
 
남윤호칼럼

남윤호칼럼

일본은 과거 미·중의 ‘아타마고시’ 외교에 된통 당한 적이 있다. 1971년 7월 15일 닉슨 미국 대통령이 방중 계획을 TV 생중계로 발표할 때의 일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중계방송 불과 몇 분 전에서야 미국의 통보를 받았다. 이게 일본 정부엔 엄청난 쇼크였다.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가 궁지에 몰렸다. 5개월 뒤 12월 24일 중의원에서 벌어진 사토 내각 불신임결의안 찬반토론 속기록을 보면 ‘아타마고시’ 외교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야당의 비판이 잘 나온다. 결국 이게 이듬해 내각 총사퇴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우리에겐 가물가물하지만 일본 정가에선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한다. 물론 지금 이 문제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추궁할 만한 야당은 없지만 예민해 있는 건 분명하다.
 
북한 핵·미사일에 관해 일본은 스스로 중요한 플레이어 중 하나라고 본다. 미사일과 핵의 위협 반경에 들어 있으니 자기들 이슈로 간주한다. 반면 한국은 일본을 큰 변수로 감안해 주지 않는 양상이다. 제재 국면에선 플레이어로 인정해 주다 협상에선 옵서버로 나가 있으라 한다. 재팬 패싱을 오히려 통쾌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당장엔 별문제 아닌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세한 균열이 나중엔 메우기 어려운 간격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본의 우경화 분위기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하면 지하철을 멈추고, 대피 사이렌을 울리는 게 일본이다. 열도 침공 시나리오를 그린 공상소설 같은 책들이 서점의 국제안보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복귀를 노리는 일본 우파의 구미에 딱 맞는 환경이다.
 
북한 핵을 다루는 데엔 국제사회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다. 그게 현실이다. 대화 국면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부의 노력이 부각되곤 있지만, 이게 어디 우리 혼자 힘만으로 이룬 것인가. 유례없이 강력한 국제적인 대북제재의 성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 당국자들도 잘 알 것이다.
 
곧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를 예정이다. 이때 지금까지의 대북제재 공조엔 미동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일본이 우리와 다른 궤도로 북한에 대응하거나 접근하면 우리에게도 부담이다. 북핵 폐기를 달성하는 일은 우방국이 거들어도 모자랄 판이다. 이웃이 등을 돌리면 힘들어지는 건 우리다. ‘우리끼리’라는 감격은 짧고, ‘국제 공조’라는 현실은 길다.
 
남윤호 도쿄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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