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시 열흘 만에 정부 대책
지위 이용한 성폭력 최대 10년형
형량 배로 늘려 처벌 강화했지만
성범죄, 입증 힘들어 불기소 많아
성폭력 근절 실효성 있을지 의문
하지만 이날 대책이 발 빠르게 나오긴 했지만 피해자인 여성의 입장을 세심하게 반영하지 못한 탓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나온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일벌백계식 처벌 강화만으로는 근절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재련 변호사는 “성폭력은 증거 확보가 너무 어렵다. 가해자가 부인하면 진실게임 양상으로 가 버린다”고 말했다.
또 ‘업무상 위계·위력’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 실제 지난해 연기자 지망생을 성폭행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 A씨의 사건은 단순한 ‘비동의 간음’으로 간주돼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연예계 영향력을 가진 A씨의 행동이 ‘업무상 위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업무상’이란 문구의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많다”고 짚었다.
피해자들의 진술을 어렵게 할 수 있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서도 정부는 여성단체 일부에서 주장했던 ‘폐지’ 대신 ‘위법성 조각사유(죄가 안 됨) 적극 적용’을 내놓았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310조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이날 대책에는 온라인 악성 댓글 처벌 방침이 포함됐다. 민갑룡 경찰청 차장은 “경찰청 사이버수사과가 상시 모니터링해 댓글이 피해자에게 악의적일 경우 작성자의 IP를 추적해 사법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고용부는 ▶홈페이지에 익명 신고창구를 개설하고 ▶남녀고용평등 업무 전담 근로감독관을 배치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감독하겠다고 밝혔다. 또 문체부는 12일부터 100일 동안 ‘특별 신고·상담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처벌 강화 위주로 가다 보니 가해자를 변화시키려는 교육이 부족해 보인다.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 조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는 “예술계 성폭력에서 예술대학·예술고 문제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지영·이에스더·정종훈 기자 jylee@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