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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거두 최장집 “문 대통령 제왕적 아니지만, 구조적으로 제왕 될 위험”

진보 최장집 교수가 본 ‘탄핵 1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7일 광화문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개헌의 초점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화하기 위한 권력 구조에 맞춰져야 한다“며 ’국회가 중심이 된 개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7일 광화문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개헌의 초점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화하기 위한 권력 구조에 맞춰져야 한다“며 ’국회가 중심이 된 개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최장집(75·정치학)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간 별다른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진보의 거두로 평가받지만 은퇴 후엔 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하거나 가끔 강연에 나서는 정도였다. 학자적 소신이 강한 인물로, 그가 2002년 처음 펴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한국 정치 전반을 꿰뚫는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최 교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 1주년(10일)을 앞두고 정치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촛불과 탄핵, 개헌 얘기다. 7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최 교수의 사무실에 마주 앉아 물었다.
 
촛불집회에서 촉발된 박 전 대통령 탄핵이 곧 1년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대통령이 법의 지배와 국민을 대표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안 한 채 굉장히 권위주의화하던 상태에서 터져 나온 현상이다. 지난 두 보수 정부는 대통령제의 부정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승자 독식으로 패자는 완전히 소외되고 배제됐다.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이다.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정부였다. 이걸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고 제도 밖에서 시위를 통해 들고 일어나 탄핵으로 이어진 것이다. 제도가 위기에 처하고 법치가 작동하지 않자 시민이 시위로 권력을 견제하고 제대로 법이 작동하도록 했다. 민주화 때부터 이어진 ‘운동의 전통’이 발현된 것으로 본다.”
 
촛불집회가 민주주의 복원의 핵심 변수였다는 것인가.
“그렇다.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 촛불집회는 여기까지가 좋은 포인트였다. 문제는 그 이후다. 보수 정당과 보수 세력이 붕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조기 대선으로 새 정부 출범했을 때 힘의 구조가 지나치게 불균형해졌다. 좋은 보수 세력과 협치해야 사려 깊게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 진보 일색, 진보가 압도하는 환경은 잠재적 위험이자 걱정의 대상, 우려의 대상이다.”
 
최 교수는 지난달에 쓴 논문 ‘헌법 전문 개정 논의와 민주이념’에서 ‘모든 권력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수 인민의 권력도 견제되지 않으면 독재화할 수 있다’고 썼다. 다수의 지배가 곧 독재로 연결될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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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촛불을 든 배경에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있고 자연스레 정치권의 개헌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현행 헌법이 1987년부터 30년이 됐으니 이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부각됐다. 촛불 시위도 있었고. 개헌은 필요하다. 그런데 ‘좋은 개헌’이라야 한다.”
 
어떤 게 좋은 개헌인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제어하는 분권형 개헌을 해야 한다. 대통령제는 입법부와 사법부가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한다고 해도 여전히 대통령이 강하다. 가령 미국은 의회가 강하고, 정당도 제대로 정립돼 정치적 역할을 하며, 사법부도 강하다. 그런데도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트럼프 현상이 그 결과의 하나다. 한국은 입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사법부가 너무 취약하다. 정치학적 용어로 전제정(專制政·독재)화할 수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규모 촛불집회를 통해야만 겨우 대통령의 권력을 제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구조를 그냥 두고 4년 중임으로 바꾼다? 임기가 8년으로 연장되는 효과밖에 없다. 차라리 현행 5년 단임제가 더 낫다. ‘대통령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그 임기는 끝나게 돼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1등 공신이다. 저는 여러 면에서 의회 중심제를 선호한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곳은 모두가 의회 중심주의를 택하고 있다. 더 민주주의에 가까운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인가.
“문 대통령 개인을 제왕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대통령이 권력을 행사하고 정부를 운영하는 구조 자체가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없게 돼 있다. 우리 사회에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취약하다. 개인의 권리를 잇는 시민 사회가 국가의 공적 영역과 비교하면 너무나 약해 (대통령직이) 구조적으로 제왕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권력을 분산시킬 수는 없나.
“예산과 인사권을 국회가 가져야 한다. 미국의 경우 상원에서 비준하지 않으면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수 없다. 인사권은 대통령과 상원이 반드시 합의해야 하는 구조다. 미국의 경우 예산은 하원의 권한이다. 우리 국회는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선거제도를 바꿔 정당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은 중간선거가 있어 대통령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꼭 대통령제를 유지해야 한다면 총리라도 국회에서 선출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회의 신뢰가 낮다. 그래서 의회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많다.
“지금 제도하에선 정치에 대한 모든 불만이 정당과 의회를 향하게 돼 있다. 의회에 권한을 주면 정당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를 구성하고 책임감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 전제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면 의회가 우리 사회와 더 밀착되고 제반 문제를 다룰 여지가 생길 것이다.”
 
현 여권은 헌법 조문의 여러 곳을 한꺼번에 바꾸는 개헌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권력 구조만 놓고 심도 있게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선거제도 개편과 연동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논의를 풀기 쉽지 않을 거다. 대통령이 탄핵까지 된 상황에서 권력 구조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지만 그건 곤란하다. 선거 때 공약으로 내놨다? 개헌은 정당의 정책이 아니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룰을 담아야 한다. 타협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반드시 국회가 개헌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개헌 드라이브를 거는 건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야당이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방식은 민주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민주당에선 헌법 전문에 '촛불 정신'을 포함시키자고 한다. 정부안을 준비중인 국민개헌특위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오는데 그에 대한 견해는.
"촛불시위는 당연히 안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촛불시위가 한국민주주의의 발전이나 정치과정에서 큰 전기이긴 하지만 보편성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혁명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산물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프랑스 헌법 전문에도 프랑스 대혁명이란 말은 한마디도 없다. 기본적인 정신이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면 충분하다. 보수고 진보고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원리가 들어가야지 쟁점이 되는 사건을 나열할 필요가 없다.”
 
노(老)학자는 인터뷰 후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 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끝부분 어딘가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개헌 의제로서 정부 형태 내지 권력 구조를 다루는 것은 문제 자체가 복잡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한다는 식으로 서두를 일은 절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도 길게 남았으니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관련된 문제들 하나하나에 대해 심도 있고 신중하게 논의해 합의에 이르는 긴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입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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