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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동네서 책 팔며 놀 궁리하는 청년 석·박사들

'책방놀지'의 북매니저 임주아 시인.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의 북매니저 임주아 시인. 전주=김준희 기자

'종이책은 죽었다'고들 말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장을 넘기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지 오래다.  
 

문화인류학 전공한 선·후배 5명 뭉쳐
'카페형 서점'이자 사회·문화 연구소
놀지는 Knowlede와 지(知) 합성어
본업은 연구원·회사원 등 다양
북매니저는 신춘문예 출신 시인
시 낭독회와 음악 감상회도 호응
"지식이 놀이처럼 즐거웠으면…"

대형서점이 들어서면서 동네책방들도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최근 반전이 일어났다. 시나브로 사라졌던 동네책방들이 하나둘 다시 문을 열고 있어서다. 주인의 이력과 책방의 성격은 다르지만 '개취(개인의 취향)'와 '지식 공유'에 가치를 둔 '별종 책방'이 늘고 있는 것이다.
 
'책방놀지' 간판.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 간판. 전주=김준희 기자

전북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병원 맞은편에 둥지를 튼 '책방놀지'도 이런 책방 중 하나다. 책방놀지는 책방과 지식을 뜻하는 Knowledge와 지(知)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전북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장세길(47)씨 등 남녀 선·후배 5명이 의기투합해 지난해 6월 문을 연 동네책방이다. 서울 연남동·망원동·해방촌 등에선 흔하지만 지방에선 아직 낯선 '카페형 서점'이다. 커피와 맥주·와인 등을 즐기며 책도 맘껏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아시아 사회·문화를 탐구하는 연구소도 겸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병원 맞은편에 있는 '책방놀지' 전경. 전주=김준희 기자

쇼윈도 안 '책방놀지'.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가 지난달 받은 전주 지역서점 인증서. 전주에는 동네책방 10여 곳이 있다고 한다. 전주=김준희 기자
 
운영위원들은 비슷한 시기에 대학원에서 같은 지도교수 아래서 석·박사를 땄다고 한다. 나이는 30~40대로 모두 지자체 연구원, 콘텐트 제작업체 직원 등 본업이 따로 있다. 평상시에는 북매니저인 임주아(30·여)씨와 아르바이트생 겸 디자이너 이다애(27·여)씨가 책방을 지킨다. 운영위원들은 퇴근 후 밤이나 주말에 책방 손님을 맞는다.
 
"교보문고나 홍지서림처럼 책의 종류나 수로 이길 수 없지만 우리가 팔고 싶고, 소개하고 싶은 책을 팔아요."  
지난 6일 오후 4시 책방놀지. 북매니저 임씨는 "책방놀지는 주인의 취향을 판매하고 정서와 문화를 전파하는 곳"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책방놀지' 내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 내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가 매달 여는 '밤의 음감회'에서 손님들이 듣고 싶은 음악을 적은 엽서들. [사진 임주아 책방놀지 북매니저]

'책방놀지'가 매달 여는 '밤의 음감회'에서 손님들이 듣고 싶은 음악을 적은 엽서들. [사진 임주아 책방놀지 북매니저]

이른바 '북큐레이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북큐레이션이란 북(book)과 큐레이션(curation)의 합성어다. 특정 주제에 맞춰 책을 선별해 보여줌으로써 책과 책 읽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방법을 말한다. 현재 책방놀지의 책장에는 새 책과 헌 책 500권가량이 꽂혀 있다.  
 
책꽂이에는 칸마다 쪽지가 붙어 있다. '치열하게 지역 현장을 살아온 세 사람의 지역에 관한 답지' 등 임씨와 운영위원들이 책을 읽은 감상과 추천 이유 등을 짤막하게 적은 종이다.  
 
카페형 서점인 '책방놀지' 주방. 임주아 북매니저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카페형 서점인 '책방놀지' 주방. 임주아 북매니저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운영자의 책장'에는 『지배받는 지배자』 『검은 역사 하얀 이론』 등 인문·사회서적들이 주를 이룬다. 헌 책들도 운영위원들이 읽고 고른 책이다. 운영위원들은 애초 협동조합을 구상하다 책방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책방이 서로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는 판단에서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맏형' 격인 장씨다. 가수 요조가 운영하는 '책방무사'를 보고 반한 장씨가 "나도 이런 책방을 내고 싶다"고 제안하자 후배들이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일사천리로 성사됐다.  
 
'책방놀지'의 한 책장.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의 한 책장. 전주=김준희 기자

당초 통닭집이던 단층짜리 낡은 건물(99㎡)을 장씨가 사들여 책방으로 개조했다. 장씨는 "은행이 (책방을) 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사업장이라기보다 지식을 공유하는 오프라인 플랫폼이자 책을 매개로 한 문화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책방 뒤편에는 운영위원 5명이 주축이 된 '아시아사회문화연구소'가 쓰는 세미나실이 있다. 커다란 탁자와 의자, 60인치 TV, 노트북, 프린터 등을 갖춘 공간이다. 운영위원 육수현(37·여)씨는 "현재 '소수자'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있다. 올해 안에 책을 출판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책방에서 파는 음료를 마시고 1000원만 더 내면 세미나실을 소모임이나 스터디 장소로 2시간 동안 무료로 쓸 수 있다.      
 
'책방놀지'의 알바생 겸 디자이너인 이다애(27)씨가 본인이 직접 그린 시 낭독회 포스터를 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의 알바생 겸 디자이너인 이다애(27)씨가 본인이 직접 그린 시 낭독회 포스터를 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인터뷰 중간중간 손님들이 커피를 주문했다. 그때마다 북매니저 임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아메리카노며 카페라테를 '뚝딱' 만들었다. 
 
임씨는 아직 무명(無名)이지만 문단에 등단한 어엿한 시인이다. '복숭아'란 시(詩)로 201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책방놀지'의 한 책장. 전북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운영위원 5명이 엄선한 책들이 꽂혀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의 한 책장. 전북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운영위원 5명이 엄선한 책들이 꽂혀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알바생 이다애씨는 책방에서 매달 여는 시 낭독회 등의 웹포스터와 안내용 책자를 직접 손으로 그린다. 그는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선배인 임씨의 소개로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 임씨가 대학 학보사 편집장일 때 이씨는 신문 만평을 그렸다고 한다. 이씨는 "그림을 그리는 동화 작가가 꿈"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서양화가 서완호(35)씨도 책방놀지의 단골이다. 서씨는 "일주일에 두 번 책방에서 취미반으로 수채화 수업을 하고 가끔 독서모임도 갖는다"고 했다.

 
3월의 '기획 도서'로 선정된 『체 게바라 평전』과 『전태일 평전』. [사진 임주아 책방놀지 북매니저]

3월의 '기획 도서'로 선정된 『체 게바라 평전』과 『전태일 평전』. [사진 임주아 책방놀지 북매니저]

'책방놀지'를 연 운영위원들이 주축이 된 '아시아사회문화연구소'가 주로 쓰는 세미나실. 독서모임이나 스터디 장소로도 빌려 주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를 연 운영위원들이 주축이 된 '아시아사회문화연구소'가 주로 쓰는 세미나실. 독서모임이나 스터디 장소로도 빌려 주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개업 초기에는 책방 손님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임씨가 북매니저로 합류하면서 책 종류가 다양해지고 프로그램도 풍성해졌다. 딱딱한 사회과학 서적 일색에서 시집과 소설·에세이 등 문학 서적이 추가됐다.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도 하루 평균 20여 명으로 늘었다. 임씨가 책방놀지 인스타그램에 글과 사진 등을 다양하게 올리면서 젊은 층의 공감도 얻고 있다.
 
'책방놀지' 내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 내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는 매달 '기획 도서'도 전시한다. 이달의 책은 『체 게바라 평전』이다. 이 책을 추천한 장씨는 "서른 살이 막 넘어가던 시기에 과거에 얽매였던 나를 현재에 충실하게 만들어준 책"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매달 열고 있는 '시 낭독회'와 엽서에 듣고 싶은 음악을 적어 내면 북매니저가 틀어주는 '밤의 음감회'는 책방의 대표 프로그램이 됐다. 다음달 7일에는 여행 에세이 『때가 되면 이란』의 저자 정영효 시인을 초대해 낭독회를 연다.
 
'책방놀지' 내부 모습. 커피와 와인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독서 공간이다. 벽에는 장근범 사진작가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 내부 모습. 커피와 와인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독서 공간이다. 벽에는 장근범 사진작가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이 프로그램들을 기획한 임씨는 "지역에도 신간을 내거나 주목받아야 할 작가가 많다. 하지만 모든 게 서울과 중앙에만 집중되다 보니 문학적 경험을 쌓을 기회나 기초적인 프로그램조차 드물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문학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하고, 서울에 가야만 주목받는 풍토를 깨고 싶다"고 했다.

 
책방놀지는 지난달 전주시로부터 '지역서점 인증서'를 받았다. 최근엔 희소식이 하나 더 생겼다. 유명 출판사이자 동명(同名) 계간지를 펴내는 '문학동네'가 전국 동네 책방 12곳과 제휴해 꾸린 '문학동네 북클럽 아지트'에 책방놀지가 이름을 올려서다. 전북에선 유일하다.
 
'책방놀지' 내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책방놀지' 내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하지만 여전히 책방은 적자라고 한다. 매출에 대해 장씨는 "영업 비밀"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다른 동네책방과 달리 직원도 있고, 적지만 어느 정도 매출이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고 했다. 
 
운영위원들은 책방놀지에 대해 "우리들의 '지적 놀이터'"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 이들이 꿈꾸는 책방놀지의 미래상은 뭘까. 육씨는 "지식이 공부가 아닌 놀이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지식을 나누는 작지만 알찬 공간이 동네 곳곳에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책방놀지'가 연 시 낭독회에 초대된 이희중 시인. [사진 임주아 책방놀지 북매니저]

'책방놀지'가 연 시 낭독회에 초대된 이희중 시인. [사진 임주아 책방놀지 북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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