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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저도 어차피 적폐니까요" 朴 외교관료들 씁쓸한 낙마

서울 도렴동에 있는 외교부 청사. 유지혜 기자

서울 도렴동에 있는 외교부 청사. 유지혜 기자

황준국 주영 대사(2016년2월 부임)가 사실상 직위 해제당했다. 4년 전 그가 수석대표를 맡아 타결했던 한·미 방위비 분담특별협정 협상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여당의 문제 제기로 외교부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2014년 1월 타결된 방위비 협상 결과를 검토했다. 당시 결과물은 본협정문과 교환각서 2건, 이행약정 1건이다. 한·미가 합의할 경우 미국에 추가적인 현금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한 이행약정을 외교부가 의도적으로 국회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게 여당의 비판이었다.  
 
외교부가 2014년 2월 국회에 본협정을 제출하며 이행약정을 함께 제출하지 않은 것은 맞다. 하지만 이행약정은 그로부터 4개월 뒤 최종 합의됐다. 외교부는 이후 약정을 국회에 보고했다. 
 
TF는 이에 대해 “제3자적 시각에서 이면합의 의혹을 초래할 소지를 제공했다”고 결론내렸다. “의혹의 소지가 있다”에도 미치지 못하는 궁색한 결론이었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추가 보완조사를 이유로 황 대사를 지난주 본부로 불러들였고 6일 인사조치를 결정했다. 외교부는 “유사한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36년 동안 외교 일선에서 뛰어온 고위 공직자의 직위를 박탈하려면 적어도 ‘남이 보기에 의심스러울 수 있다’보다는 더 명확하게 잘못이 확정돼야 한다. 외교부 내에서 어차피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였다는 수근거림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식의 인사 조치는 황 대사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갑자기 귀임 조치된 이상덕 주싱가포르 대사도 사유는 갑질 제보 접수였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확정되기도 전에 대사를, 그것도 직위를 해제해서 소환한 일은 전례가 없었다. 실제 이 대사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한다.  
 
황 대사와 이 대사의 공통점은 박근혜 정부에서 중요한 외교안보 사안에 깊숙하게 관여했다는 것이다. 이 대사는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 당시 동북아국장으로 실무를 총괄했다.
 
외교부 내에는 “‘상부의 지시’로 옷을 벗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냥 벗기는 게 아니라 망신을 주고 벗겨야 한다더라”는 흉흉한 이야기가 퍼져 있다. 공교롭게도 황 대사와 이 대사 모두 이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정부가 바뀌고, 전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인사에서 이른바 물을 먹는 것은 통상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전 정부의 정책 결정을 갖고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하물며 외교는 상대가 있는 일인데 말이다.  
 
이 또한 한국의 고위 공직자로서 견뎌내야 할 숙명이라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외교부 젊은 직원들이 받는 영향이다. “저도 어차피 적폐니까요”라고 말하는 서기관, “박근혜 정부 때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한 건 잘못이었나봐요”라고 말하는 사무관을 여럿 만났다.  
 
이런 조치를 결정하는 ‘상부’의 분들에게 묻고 싶다. 외교관들이 외교 전장에 나가 상대국과 겨룰 때 차기 정부에서 책임 추궁당할 것을 더 의식한다면, 그것이 문재인 정부에 이익이 되겠는가.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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