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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걸렸다고 성생활 포기?···환자 부부, 가장 큰 문제는

병원에 입원한 여성 암환자가 링거 주사를 맞으며 병원 복도를 돌고 있다. [중앙포토]

병원에 입원한 여성 암환자가 링거 주사를 맞으며 병원 복도를 돌고 있다. [중앙포토]

혈액암 환자 A씨(45)는 지난해 치료를 위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암 진단 전까지만 해도 ‘잉꼬부부’로 불렸지만, 치료를 시작하면서 부부 관계가 점점 소원해졌다. A 씨는 이전처럼 부인과 성관계를 하길 원했다. 하지만 부인은 "치료가 우선인데 무슨 소리냐"면서 더는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백혈병에 걸린 50대 여성 B 씨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뒤 꾸준히 항암 치료를 받았다. B 씨는 치료 중 조심스레 의료진을 찾아가 상담을 신청했다. 그는 "면역억제제를 먹는데 성생활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남편에게 ‘피곤하다, 약 먹고 있어서 안 된다’고 피하는데 혹시 해도 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A 씨와 B 씨처럼 암에 걸린 환자들은 ‘아픈데 성생활을 해도 되나’라는 의문을 많이 갖게 된다.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배우자가 꺼리지않을까 하는 생각에 성생활을 하고 싶어도 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국내 혈액암 환자의 절반 정도만 성생활을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엔 질병이 아니라 부부간 대화 부족에 따른 의견 차이가 크게 작용했다.
 
삼성서울병원 장준호ㆍ조주희 교수팀은 7일 이러한 내용의 논문을 공개했다. 2013~2015년 서울 3개 대학병원과 한국혈액협회를 통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혈액암 환자와 그 배우자 91쌍을 연구한 결과다. 실제 성생활을 하는 암 환자 부부를 동시에 조사ㆍ분석한 건 세계 최초다.
혈액암 환자 부부는 절반만 성생활을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신체적 문제보다는 대화 부족과 의견 차이가 컸다. [중앙포토]

혈액암 환자 부부는 절반만 성생활을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신체적 문제보다는 대화 부족과 의견 차이가 컸다. [중앙포토]

조사 대상자들은 모두 조혈모세포 이식 후에 치료를 진행하거나 마쳐서 성생활이 가능한 환자들이다. 특히 혈액암 환자들은 다른 암과 비교하면 대체적으로 젊은 편이다. 하지만 발병 이전보다 성생활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조사 대상자의 절반 수준인 52.8%만 성생활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환자와 배우자의 성생활을 바라보는 생각과 태도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환자는 배우자보다 성생활이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를 높게 매겼다. 환자들의 평균 점수는 4점 만점에 2.57점인 반면, 배우자는 2.14점으로 낮았다.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교수는 “성생활이 왜 불만이냐, 왜 안 하냐고 물으면 환자는 ‘본인은 원한다’, 배우자는 ‘환자가 원하지 않아서 못 한다’고 완전히 다른 말을 한다. 성생활 감소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남성 환자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남성 환자(2.81점)는 여성 환자(2.07점)보다 성생활의 중요성을 더 높게 평가했다. 이 때문에 남성 환자와 여성 배우자 간의 간극이 컸다. 조 교수는 “남성 환자는 성생활 욕구가 높은데 그게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남성들이 이런 걸 요구하면 배우자는 ‘치료나 잘 받아야지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반응을 보인다”면서 “남성들에게 성생활은 정상성 회복의 상징이다. 단순한 욕구 충족이 아니라 ‘내가 건강해’ ‘치료 잘 받고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인데 남녀 갈등과 차이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면 상대방의 거절을 두고 오해의 골이 깊어진다. 환자 15.4%, 배우자 22%는 각각 상대방의 거부로 성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환자의 체력 저하에 대해서도 환자는 46.2%가 동의했지만, 배우자는 37.4%로 차이가 있었다.
혈액암뿐 아니라 대부분의 암 환자는 성생활에 대한 욕구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 한다. [중앙포토]

혈액암뿐 아니라 대부분의 암 환자는 성생활에 대한 욕구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 한다. [중앙포토]

근본적인 이유는 성 문제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침묵이다.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 있냐는 질문에 환자의 48.4%가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배우자는 그 절반에 미치지 못한 23.1%에 그쳤다. 예를 들어 환자가 ‘성생활을 원한다’고 돌려서 말했지만 배우자는 못 알아들었을 수 있다. 또한 성 문제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다. 부부끼리도 성생활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도 대화 부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 교수는 “의사도 이 문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의사는 ‘환자가 궁금하면 물어보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그치고, 환자는 ‘중요하면 의사가 이야기하지 않겠어’ ‘괜히 물어봤다가 치료에 집중하지 필요 없는 거 말한다고 뭐라고 하지 않을까’라며 넘어가는 식이다”고 말했다.
 
혈액암뿐 아니라 다른 암 환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 연구에 따르면 성생활을 할 수 있어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고, 서로 편하게 대화를 하지 못 하는 식이다. 특히 여성 환자가 절대적인 유방암에선 만족스럽지 못한 성생활이 부부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조 교수는 “유방암 환자 부부가 젊은 경우엔 갈등이 매우 많다. 이혼하고 별거하거나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부인이 그걸 비난하지 못 하는 일도 있다”면서 “특히 환자가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신체적 문제가 많이 생기면서 남편과의 성관계 자체가 불편해지고 그 문제를 그대로 안고 간다”고 말했다.
암 환자 부부 사이에 성생활로 쌓인 오해도 터놓고 대화를 하면 쉽게 풀릴 때가 많다. [중앙포토]

암 환자 부부 사이에 성생활로 쌓인 오해도 터놓고 대화를 하면 쉽게 풀릴 때가 많다. [중앙포토]

하지만 부부간에 터놓고 이야기하면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가 쉽게 풀릴 때가 많다. 연구팀에 따르면 환자ㆍ배우자 모두 성생활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5.5배 높았다. 조 교수는 “50대 후반 부부는 상담받으면서 ‘미쳤다고 그런 데 신경 쓰냐’ ‘치사해서 안 한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대화로 잘 풀면 부부 관계가 좋아지게 된다. 서로 ‘성생활은 원하냐, 원하지 않냐’는 대화만 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고 말했다.
 
장준호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암 환자의 성 문제는 지금까지 중요성이 간과됐지만, 점차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환자와 배우자 모두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게 첫 단추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한편 적절한 교육과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암 환자에게도 성생활은 삶의 질에 있어 중요한 문제다. 이들 부부를 위한 성교육 등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Bone Marrow Transplant’에 실렸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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