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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트럼프…아끼는 이는 떠나고, 미운 이는 못 자르고

“지금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건 ‘누가 다음으로 백악관을 떠날까’다. 스티브 밀러(정책보좌관)일까, 아니면 멜라니아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아시아순방 도중 백악관의 측근들과 대선 승리 1주년 기념사진을 찍었다. 뒷줄 왼쪽이 롭 포터 선임비서관, 재러드 쿠슈너 보좌관, 스티븐 밀러 정책보좌관, 호프 힉스 공보국장이다. 왼쪽 앞은 댄 스캐비노 소셜미디어국장. 이 가운데 흐릿하게 처리된 포터 비서관과 힉스 국장은 최근 잇따라 사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아시아순방 도중 백악관의 측근들과 대선 승리 1주년 기념사진을 찍었다. 뒷줄 왼쪽이 롭 포터 선임비서관, 재러드 쿠슈너 보좌관, 스티븐 밀러 정책보좌관, 호프 힉스 공보국장이다. 왼쪽 앞은 댄 스캐비노 소셜미디어국장. 이 가운데 흐릿하게 처리된 포터 비서관과 힉스 국장은 최근 잇따라 사임했다.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3년 전통의 워싱턴 중견 언론인 모임 ‘그리다이언(Gridiron) 클럽’ 만찬에 참석해서 한 자조적 농담이다.
 
그는 “정말 많은 사람이 백악관을 떠나고 있는데 이건 사실 신나고, 기운 나는 일”이라며 “나는 (직원들의) 이직을 좋아하고 혼란을 좋아한다”고도 말했다. 비판적인 언론인들 앞에서 자기비하적 농담을 했던 만찬 전통을 따른 것이지만 자신의 처지를 반어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주목을 끌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믿었던 측근들이 떠나면서 분노와 고립감 속에 동맹국들과 무역 전쟁 같은 독단적인 정책 결정을 한다며 이를 ‘트럼프의 혼돈’ 또는 ‘왕의 혼돈(King Chaos)’라고 부르고 있다.
 
백악관의 혼돈이 시작된 건 지난달 7일 롭 포터(41) 전 선임 비서관이 전처 두 명을 폭행한 사건이 불거지면서 갑자기 사임하면서부터였다. 포터는 지난해 1월부터 대통령을 향한 모든 보고서의 수발과 대통령 지시사항 전달을 책임진 부속실장 역할을 맡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 가운데 가장 오래 접촉하는 이도 그였고, 당연히 신임도 컸다. 트럼프 대통령은 포터의 전처 폭행이 불거진 뒤에도 “그가 결백하다고 하더라”며 두둔했을 정도다.
 
 포터는 지난 1월 백악관 회의에서도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과 함께 “철강ㆍ알루미늄 관세가 미국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무역 전쟁을 촉발할 위험이 크다”며 반대 입장에 섰다고 한다. 공교롭게 포터가 떠나자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탄 결정을 내린 셈이다.
 
호프 힉스 백악관 공보국장이 지난달 27일 밤 미 하원 정보위에서 비공개 증언을 하고 의회를 떠나고 있다. 힉스 국장은 다음날 사임을 발표했다. [AP=연합뉴스]

호프 힉스 백악관 공보국장이 지난달 27일 밤 미 하원 정보위에서 비공개 증언을 하고 의회를 떠나고 있다. 힉스 국장은 다음날 사임을 발표했다. [AP=연합뉴스]

 
최근 사임 발표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또 하나의 충격을 안긴 건 포터의 백악관 연인이었던 호프 힉스(30) 공보국장이다. 힉스는 장녀 이방카의 추천으로 2014년 트럼프 재단 때부터 공보담당 비서를 맡은 뒤로 대선을 거쳐 지금까지 남아 가족을 제외하곤 가장 오랜 측근이었다. 그만큼 트럼프 패밀리의 신뢰가 두터웠다는 얘기다. 하지만 힉스는 지난달 27일 하원 정보위 비공개 청문회에서 “대통령을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했다”고 증언한 게 문제가 되면서 사임했다. 
 
지난해 7월 백악관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힉스 국장은 포터 전 선임비서관과 함께 비서실장과 동급인 17만 9700달러(약 1억 9346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포터-힉스' 커플의 사임은 트럼프 대통령으로 가는 문고리가 와해된 것을 의미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포터와 힉스 외에도 트럼프 재임 15개월 만에 2016년 대선을 함께 치렀던 측근 대부분이 백악관을 떠났다. 지난해 2월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시작으로 캐슬린 맥팔랜드 전 국가안보 부보좌관(4월), 마이크 둡케 전 공보국장(5월),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7월), 숀 스파이서 대변인, 스티브 배넌 최고 전략가(8월), 오마리사 매니골트 대외협력국장(12월), 디나 파월 국가안보 부보좌관(1월)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20년 가량 개인 경호원이었던 키스 실러 전 백악관 집무실 운영국장도 지난해 9월 사임했다. 이제 백악관에 남은 건 퍼스트 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그리고 스티브 밀러 정책고문 등 손꼽을 정도다.
 
지난해 8월 사임한 스티브 배넌 전수석전략가. [AP]

지난해 8월 사임한 스티브 배넌 전수석전략가. [AP]

 
스티븐 배넌 최고 전략가가 떠난 이래 백악관 최고 실세로 통했던 쿠슈너-이방카 보좌관도 존 켈리 비서실장이 본격 견제에 들어가 백악관을 떠나는 게 시간문제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켈리 비서실장이 쿠슈너 보좌관의 복잡한 부동산 사업 및 금융문제를 이유로 1급 기밀을 볼 수 없도록 비밀취급 권한을 강등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러시아ㆍ중국ㆍ카타르 등 해외 투자자와 접촉했다는 내용을 포함해 언론이 쿠슈너 보좌관에 대해 일제히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내자 트럼프 대통령도 딸 부부를 뉴욕으로 돌려보내는 걸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리다이언 클럽 만찬에서도 “재러드가 보안검색을 통과 못해 오늘 늦었다”며 “이방카, 네가 뭔가 해야 한다. 그는 좋은 사람인데 고통을 받고 있다”고 뼈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정치에 제동이 걸리고 완충 역할을 했던 측근들이 빠져나가면서 백악관내 권력 공간에 뜻하지 않은 진공상태가 생기자 참모들간 권력투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무역정책을 놓고 철강업계 출신인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최근 보좌관급으로 승진한 피터 나바로 통상산업국장이 보호주의를 밀어붙이자, 자유무역주의자인 게리 콘 경제보좌관이 “대통령이 철강 25% 관세를 확정할 경우 물러나겠다”며 배수진을 친 게 대표적이다.
  
대북정책에서도 강경파인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대화파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사이의 대립이 계속되면서 북한과 대화를 누가, 언제, 어떤 구체적 조건으로 시작할지 뚜렷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운’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맥매스터 보좌관은 쉽게 자를 수가 없고, 사랑하는 측근들은 잡을 수 없다는 게 혼돈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러시아 대선 개입 관련 로버트 뮬러 특검수사에 중립을 지키는 세션스 장관의 경우 사법방해로 탄핵의 빌미를 제공할까 두려워 해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러시아의 대선 개입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역린을 건드린 맥매스터 보좌관도 대안이 마땅치 않아 쉽게 자를 수 없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공화당 및 보수 인사들의 ‘블랙리스트’를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 외교·안보정책 전문가들이 많다. 트럼프에겐 맥매스터를 대체할 '인재 풀'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제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내 권력 암투와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진보성향 뉴 리퍼블릭의 진단에 이런 위기 인식이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측근은 줄고 점점 고립되고 분노하게 되면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악에 받친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철강 무역 전쟁보다 훨씬 큰 전쟁선포를 할 경우 아부하는 공화당이 막을까, 무력한 민주당이 막을 수 있을까.”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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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