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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침묵하는 남자들

김경희 정치부 기자

김경희 정치부 기자

“그 남자가 좋았으면 로맨스고 별로였으면 미투하는 거냐.”
 
미투(#MeToo) 운동에 관한 기사에 달린 한 인터넷 댓글에 실소가 나왔다. 피해자들을 조롱하려고 쓴 글인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어서다.
 
문제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자신이 정말 ‘별로’라는 사실을 몰랐거나 모르는 척 했다는데 있다. “왜 이제와서 폭로하느냐” “○○ 취향 참 독특하네” 식의 무분별한 2차 가해는 몰상식의 극치다. 자신의 삶까지 송두리째 흔들어가며 실명으로 용기를 낸 이들에게 익명의 그늘에 숨어 할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누군가는 또 ‘미투’ 얘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한국사회에도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이슈가 다른 이슈를 덮어버리기 일쑤인 ‘다이내믹 코리아’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미투는 계속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미투의 힘은 지리한 법정 공방을 거치지 않고도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게 만드는 데 있다. 피해자들이 실명으로 진실을 얘기할 때 가해자들은 우르르 무너졌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 김지은 비서는 “제가 증거이고, (잘못된 일이란 건) 무엇보다 안 지사가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가해자가 유명인사가 아닌 경우 형식적인 사과조차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미투의 한계일 수 있다. 그래도 우리가 미투를 지지하는 이유는 가해자들이 폭로의 두려움 속에서 반성이라도 하도록, 끊임없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또 다른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투 운동을 그저 남녀의 문제,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서초동에선 “여기자, 여검사랑 술 마시기도 꺼려진다”, 여의도에선 “어떤 정치인이 여자들하고 악수도 잘 안 하려고 한다더라”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마치 여성들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듯한 이런 프레임은 여성들의 활동을 제약하는 또 다른 덫일 뿐이다.
 
미투 운동의 핵심은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다.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 본질을 봤으면 좋겠다. 남자들도 얼마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성폭력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약자일 수 있다. “너도 즐긴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뒤따를까 봐 입을 다물게 된단다. 이젠 군대·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남자들의 미투도 이어지길 바란다. #남자미투를응원한다
 
김경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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