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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깜깜이 중매 외교’의 위험성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대북 특사단이 돌아왔다. 이제 그 보따리를 들고 내일 미국을 찾는다. 놀랄 만큼의 속전속결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겠다는 계산이다. 나쁠 건 없다. 북한 김정은의 핵무장 시간 끌기,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통제 불능 지배구조를 감안할 때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우리는 중매를 서는 입장”이라고 한다. 평양과 워싱턴의 상호조건을 타진하면서 양자 간 대화를 중개해 나가는 과정이 중매와 비슷하다는 뜻일 게다. 사실 진정한 중매는 이제부터다.
 
옛말에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 중매를 잘못하면 뺨이 석 대라고 했다. 그만큼 제대로 된 중매를 하긴 쉽지 않다. 자칫하다간 뺨 맞는 정도가 아니라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엉뚱하게 중매자만 유탄 맞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지금 우리 상황이 딱 그렇다.
 
1500년대 초 영국 왕 헨리 8세의 재혼을 둘러싼 중매도 취지는 좋았다. 헨리 왕의 세 번째 왕비가 사망하자 측근 토머스 크롬웰이 중매에 나섰다. 헨리는 ‘빼어난 외모’를 네 번째 왕비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그게 충족이 안 되면 재혼을 않겠다고 고집했다. “국가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도 했다. 다급해진 중매자 크롬웰은 유럽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독일 클리브 공작 요한 3세의 딸 앤이 딱 적격”이란 편지를 헨리 왕에게 띄운다. 크롬웰은 당시 고립무원이던 영국을 살리기 위해선 전략적 동맹이 절실했고, 그걸 중매로 풀려 했다. 크롬웰은 앤의 매력을 구구절절 적은 편지를 헨리 8세에게 보냈지만 헨리 8세는 “그런 건 됐고, 예뻐?”란 질문만 반복했다. “예쁠 뿐 아니라 몸매도 최고”란 크롬웰의 답신에 헨리 왕은 앤의 초상화를 그려 보내라고 요구했다.
 
다급해진 크롬웰은 ‘과장된’ 초상화를 보냈다. 일단 ‘입구’까지만 끌고 가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그게 사달이 났다. 헨리 왕 입장에선 깜깜이 중매에 속았다. 초상화만 보고 신이 난 헨리 왕은 결혼날짜를 잡고 앤을 마중 나갔다. 그런데 웬걸, 초상화와 실물이 너무 차이가 났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은 했지만 6개월 만에 이혼했다. 분이 안 풀린 헨리 왕은 크롬웰을 처형했다. ‘국익’을 위해서였다지만 크롬웰의 왜곡된 중매는 ‘닥치고 외모!’를 외친 헨리 8세의 불신과 분노만 샀다. 최후가 비참했다.
 
현 상황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우린 한반도 평화라는 국익을 위해 적극적 중매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은 ‘닥치고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외친다. 전제조건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에서 돌아와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협의를 할 수 있다고 했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엄밀히 보면 북·미 관계 정상화, 즉 평화협정체제 전환이란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 비핵화 의지를 밝히면서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다”고 한 점도 “우리 생각은 전과 다를 게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색안경을 끼고 보려는 게 아니다. ‘역사의 교훈’이라는 투명한 안경으로 보이는 게 그렇다.
 
또 하나. 북한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완전 깜깜이인 상황에서 확인 불가, 조건 생략, 자의적 해석 발언은 금물이다. 노동신문에는 없는, 과장된 북한발 메시지를 전하다간 두고두고 한·미 간 혼란과 화근만 키울 수 있다. 중매의 철칙은 투명성이다.
 
부연 설명 한 가지. 헨리 8세와 크롬웰의 틈새에 꼈던 앤. 결혼은 결렬됐지만 기가 막히게 실속을 챙겼다. 이혼 논의 과정에서 왕실에서 왕과 왕비 다음으로 높은 ‘여동생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유일 승자였다. ‘핵보유국 지위’를 챙기려는 북한의 노림수와 오버랩된다. 이럴 때일수록 들뜨지 않는, 냉철한 중매가 필요한 이유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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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