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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버금가는 ‘경제 권력’ … 힘의 원천 발권력은 양날의 칼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누구인가.”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백악관 기자회견장. 한 기자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클린턴은 NBC 백악관 출입기자인 안드레아 미첼을 가리키며 이렇게 답했다.
 
“그에게 물어봐라. 그가 (가장 힘이 센 사람과) 결혼했으니까”
 
앨런 그린스펀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첼의 남편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이다. 그는 대(大)안정기를 이끌며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Fed 의장을 18년 3개월간 역임했다.
 
중앙은행은 정부 기관이 아니지만 통화의 독점 발행권을 갖는다. 국가에서 통화발행 권한을 받은 이들은 종이와 인쇄기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중앙은행장을 현대의 연금술사로 부르는 이유다.
 
구로다 하루히코

구로다 하루히코

임명된 것만으로 엄청난 권한을 쥐는 중앙은행장을 그래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도 한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장은 16년째 직을 수행 중이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장의 연임 안도 최근 의회에 제출됐다. 중앙은행장,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중앙은행은 1668년 스웨덴에서 처음 설립됐다. 미국의 배우이자 사회평론가인 윌 로저스는 1920년 “역사가 시작된 후 세 가지 위대한 발명이 있었다. 불과 수레바퀴, 그리고 중앙은행이다”라고 말했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주요국의 통화제도는 금본위제였다. 중앙은행이 소유한 금만큼만 화폐를 발행했다. 경제가 발전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통화제도는 관리통화제로 바뀌었다. 중앙은행이 자율적으로 돈을 찍어 발행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돈을 너무 많이 찍으면 물가가 뛰고, 적게 유통하면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외부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한 통화량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나라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법으로 보장한다. 한국에도 ‘한국은행법’이 있다. 중앙은행은 법이 부여한 권한을 통해 금리를 조절하고 경제 전반의 통화 흐름을 결정한다.
 
제롬 파월

제롬 파월

대신 정부는 중앙은행에 통화안정과 경제의 지속번영을 위한 책임을 지운다. Fed는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한국은행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책임진다. 금융시장이 중앙은행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인 중앙은행의 역할이 드러났다. 최종 대부자는 금융 시장에 패닉이 덮쳤을 때 누구든 문을 두드리면 담보를 잡고 아낌없이 대출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금융시스템 작동을 위해서다.
 
위기의 파고가 덮치자 주요국 중앙은행장은 대대적인 발권력을 동원해 수렁에 빠진 세계 경제를 살려냈다.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자 힘의 원천인 발권력은 경제를 살리지만, 때론 중앙은행의 운명을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돈을 찍어낼 수 있는 힘은 모든 권력자에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그래서 중앙은행장을 좌지우지하고 싶어 한다.
 
1951년 한국 전쟁의 영향으로 미국의 물가가 올랐지만 경기를 살리고 싶었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당시 Fed의장인 토마스 매케이브를 물러나게 했다. 재무부 차관보 윌리엄 마틴을 Fed 의장으로 임명했다.
 
마틴은 Fed 의장이 되자 ‘물가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목적에 맞게 긴축 정책을 펼쳤다. 트루먼은 마틴을 “배신자”라고 몰아붙였지만, 마틴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주열

이주열

중앙은행은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장치도 마련해 둔다.
 
대표적인 것이 Fed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사의 임기다. FOMC는 12명의 위원으로 이뤄져 있다.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한 7명의 Fed 이사와 뉴욕 Fed 총재가 상임위원을 맡는다. 11개 지역 Fed 총재 중 4개 지역 총재가 순번에 따라 위원을 맡는다.
 
Fed 이사의 임기는 14년이다. 고민의 산물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마리너 에클스(34년 11월~48년 1월 재임)를 7대 Fed 의장으로 내정하면서 개혁을 주문했다. 에클스는 10년이던 Fed 위원의 임기를 14년으로 늘리되 홀수해 2월 1일에 한 명씩 교체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통상 2년마다 한 명씩 임기가 만료된다. 어떤 대통령도 4년 임기 중 FOMC 위원을 2명 이상 바꿀 수 없다.
 
대통령이 연임해도 4명만 교체할 수 있다. 12명의 위원 중 3분의 1만 자기 사람으로 채우는 황금 법칙을 만들었다.
 
최근 이 법칙이 사실상 깨졌다. 재닛 옐런 전 Fed 의장이 연임에 실패하면서부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년 임기를 마친 옐런을 재선임하지 않았다. 여기에 2019년 1월까지 임기였던 윌리엄 더들리 뉴욕 Fed 의장도 조기 퇴임 의사를 밝혔다. 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중 4명의 Fed 위원을 뽑을 수 있게 됐다. 중앙은행 내 트럼프의 입김이 더 세지게 됐다.
 
중앙은행이 정권에 휘둘리는 건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발권력을 노리는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은 이어졌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재정 지출보다는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내는 게 쉽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총재가 임기(4년)를 못 채우고 물러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조순 전 총재는 김영삼 정권과의 갈등 속에 취임 1년 만에 사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7명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임기 4년, 연임 가능)을 모두 교체했다.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차기 총재로 임명되며 98년 한은의 독립성 확보 후 처음으로 연임 길을 열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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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