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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여자는 거짓말쟁이?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희정 충남지사의 현직 비서가 5일 밤 TV뉴스에 직접 출연해 안 지사로부터 당한 성폭행 피해사실을 폭로했다. 익명은커녕 음성변조나 얼굴 모자이크 처리도 없었다. 공인이나 유명인도 아닌 성폭력의 피해자가 생방송 뉴스에 나와 실명으로 얼굴까지 공개하는 쉽지 않은 용기를 낸 것이다. 
스스로 밝힌 이유는 "안전보장"이다. 방송으로 이름과 얼굴이 알려져야 상대하기 두려운 안 지사 측의 위협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그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진실성에 대한 요구 충족'이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가 어렵게 피해사실을 털어놓을 때마다 피해자 보호에 신경쓰기보다 저의를 먼저 의심해왔다. 피해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조금이라도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피의자와 어떤 방식으로든 합의를 하면 피해자는 무고나 꽃뱀으로 몰리기 일쑤였다. 설령 성적 행위가 사실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집요하게 둘만의 로맨틱한 관계가 틀어져 홧김에 해코지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다시 말해 나를 드러내고 완벽한 증거를 내놓기 전까지는 늘 잠정적인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았다는 얘기다. 배우 오달수의 예에서 이미 목격한 바 있듯이 피해자가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후에야 비로소 발뺌하던 가해자로부터 어정쩡한 사과라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방송인 김어준의 어설픈 공작설까지 더해져 미투 폭로자는 본질을 벗어난 진위 논란으로 흐를 위험을 차단하려면 '실명에 얼굴 공개'라는 수준으로 고발의 수위를 스스로 높여야 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왼쪽)와 배우 오달수. 두 사람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실명으로 얼굴까지 공개하며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왼쪽)와 배우 오달수. 두 사람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실명으로 얼굴까지 공개하며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안 지사 피해자의 얼굴 공개는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인생을 통째로 거는 싸움에 내몰린 것으로 봐야 한다. 아무리 본인의 결정이라 하더라도 아무 힘없는 지방 6급 공무원에 불과한 무명의 일반인 피해자를 모자이크 처리 없이 방송에 내보낸 게 과연 옳았는지 의문이 생기는 이유다. 믿고 찾아온 피해자를 보호할 다른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얼굴을 내보낸 것 역시 피해자 스스로 진실을 증명하라는 '잠정적 거짓말쟁이 프레임'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동갑인 아일랜드 여성 작가 루이스 오닐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토대로 쓴 『애스킹 포 잇(Asking For It)』에서 알고 지내던 동네 소년들에게 강간당한 소녀 엠마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남자인 그들은 유죄임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모두 무죄다. 하지만 여자인 나는 다르다. 정직함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거짓말쟁이다. "
 
또 한번의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은 지금 딱 우리 얘기 같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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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