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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국가대표] ② 휠체어컬링 '영미~' 없는 '5성 어벤저스'

평창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휠체어컬링 대표팀. 왼쪽부터 이동하, 정승원, 방민자, 서순석, 차채관. 이천=장진영 기자

평창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휠체어컬링 대표팀. 왼쪽부터 이동하, 정승원, 방민자, 서순석, 차채관. 이천=장진영 기자

'영미~'는 없어도 '5성 어벤저스'가 있다. 여자 컬링 대표팀이 만든 평창올림픽의 감동을 휠체어컬링 대표팀이 평창패럴림픽에서 이어간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큰 기쁨과 감동을 준 종목은 컬링이었다. 특히 사상 최초로 은메달을 따낸 여자 대표팀은 화제를 쏟아냈다. 스킵(주장이자 마지막에 투구하는 선수) 김은정(28)은 무표정한 얼굴로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안경 선배'란 별명을 얻었다. 빗자루같은 브룸으로 패블(얼음알갱이)을 문질러 스톤 속도를 조절하는 김영미(27)의 이름을 외친 '영미~'는 국민적인 유행어가 됐다.
여자컬링 대표팀 스킵 김영미(가운데)가 스위퍼 김영미(오른쪽)에게 지시하는 모습

여자컬링 대표팀 스킵 김영미(가운데)가 스위퍼 김영미(오른쪽)에게 지시하는 모습

장애인들이 출전하는 패럴림픽에도 컬링 경기가 열린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선수들이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휠체어에 탄 채 경기를 하기 때문에 스위핑은 하지 않는다. 자연히 투구를 하는 선수가 '헐', '얍'과 같이 소리로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영미'를 외칠 일도 없다. 휠체어컬링 대표팀 스킵 서순석(47·스킵)은 "우린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다. 대신 실수를 하면 만회할 수 없기 때문에 투구를 정확하게 해야한다"고 했다.
 
다른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허리를 숙이기 어렵기 때문에 대다수 선수는 딜리버리 스틱이라고 불리는 긴 장대를 써 스톤을 밀듯이 하우스로 보낸다. 투구 선수 뒤에는 다른 선수가 붙어 투구자의 휠체어를 잡아준다. 반동으로 밀려나는 것을 막아 정확하게 스톤을 굴리기 위해서다. 선수 구성도 다르다. 남·녀로 구분된 비장애인 경기와 달리 혼성(混性)으로 치러진다. 한국 대표팀은 서순석, 차재관(46·세컨드), 정승원(60·서드), 이동하(45·서드) 등 남자 4명과 홍일점인 방민자(56·리드)로 구성됐다.
휠체어컬링은 스톤을 손잡이 부분에 스틱을 끼워 투구한다. 이천=장진영 기자

휠체어컬링은 스톤을 손잡이 부분에 스틱을 끼워 투구한다. 이천=장진영 기자

보통 컬링 팀은 스킵의 성(姓)을 붙여 부르기 때문에 여자컬링 팀은 '팀 킴'으로 불렸다. 공교롭게도 5명 전원이 김씨라 '가족이나 자매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서순석은 "우리는 '오성(五姓)'이 있다. 선수 다섯 명의 성이 모두 다르다. '5성 어벤저스'로 불러주면 좋겠다"고 웃었다.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다섯 선수는 실제로 모두 역경을 이겨낸 '영웅'이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 사고로 몸이 불편해졌지만 스스로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서순석은 22살이던 1993년 뺑소니 사고로 척수장애를 입었다. 지금도 정확하게 사고를 당한 날과 시간까지 기억한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 자바 자격증을 따내며 평범한 사회 생활을 하려 했다. 하지만 장애인인 그를 고용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휠체어컬링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중학교 시절 야구선수를 할 정도로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졌던 그는 나이 마흔에 컬링을 시작했고, 4년도 되지 않아 2014 소치패럴림픽에 출전했다. 9위에 머무르며 아쉬움을 삼킨 그는 평창에서 재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서순석은 "이번에는 결승까지 올라가 가족들 앞에서 경기하고 싶다"고 했다.
휠체어컬링은 투구자 뒤에서 다른 선수가 휠체어를 붙잡아 정확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천=장진영 기자

휠체어컬링은 투구자 뒤에서 다른 선수가 휠체어를 붙잡아 정확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천=장진영 기자

홍일점 방민자는 25년 전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됐다. 그는 10년 동안 방에만 틀어박힌 채 세상을 등졌다. 여동생의 조언으로 장애인복지관을 찾아 수공예를 배우던 그는 론볼(잔디 위에서 하는 컬링과 비슷한 경기)을 처음 접했다. 이후 컬링을 시작했고, 패럴림픽에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방민자는 "컬링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사회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위해 애써준 어머니와 동생에게 메달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나머지 선수들도 비슷하다. 막내 이동하는 추락사고, 맏형 정승원과 차재관은 산업재해를 입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컬링으로 얻은 새로운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한국 휠체어컬링은 2010 밴쿠버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당시 거둔 성과는 기적에 가까웠다. 비장애인 선수들이 쓰는 훈련장이 빌 때나 연습을 할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대회 직전엔 연습할 데가 없어 이천 장애인훈련원 수영장을 얼려서 연습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세계적인 강팀과 겨루며 실력을 쌓았다. 지난해엔 훈련원 내 전용컬링장도 완성돼 마음껏 훈련할 수 있게 됐다. 비디오 분석시스템과 전력분석원까지 갖췄다. 대표팀 구성에도 변화를 줬다. 종전까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한 팀이 패럴림픽에 출전했으나 이번에는 8명의 선수를 선발한 뒤 최종 평가를 통해 5명을 추렸다. 진정한 의미의 '드림팀'인 셈이다.
백종철 감독(가운데)과 컬링 대표팀 선수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천=장진영 기자

백종철 감독(가운데)과 컬링 대표팀 선수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천=장진영 기자

8년 만의 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도 크다. 지난 1월 키사칼리오 오픈에선 준우승을 했고, 지난달 브리티시 오픈에선 전승으로 우승했다. 우승후보로 꼽히는 노르웨이도 2번이나 이겼다. 대표팀을 이끄는 백종철 감독은 "1차 목표는 4강 진출이다. 11경기 중 7승 이상을 거두면 준결승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최근 국제대회에서 강호들을 연이어 이겨 선수들의 자신감이 크게 높아졌다. 4강에만 간다면 홈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충분히 메달도 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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