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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영화도, 만화도 담배에 노출…웹툰 3개 중 1개 흡연 묘사

학교 내에서 여학생들이 흡연하는 모습을 묘사한 웹툰. [자료 노진원 교수]

학교 내에서 여학생들이 흡연하는 모습을 묘사한 웹툰. [자료 노진원 교수]

올해 고3이 된 김모(19ㆍ부산 금정구)양은 대입 입시로 바쁜데도 일주일에 2번 이상 웹툰을 챙겨본다. 웹툰에서 종종 담배를 피우거나 건네주는 장면이 나와도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만화 속 흡연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스며들었다고 한다. 김양은 "웹툰 주인공이 담배 피우는 모습이 섹시해 보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태백시에 사는 전모(19)군은 가끔 흥행작 위주로 영화를 챙겨 본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에서 흡연 장면이 나오면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특히 담배를 피우는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서 주목도가 달라진다. 그는 "잘 생긴 미남 배우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 나도 피워볼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교도소 재소자가 브랜드 이미지가 명확하게 나오는 담배 제품을 보여주는 영화 속 장면. [자료 노진원 교수]

교도소 재소자가 브랜드 이미지가 명확하게 나오는 담배 제품을 보여주는 영화 속 장면. [자료 노진원 교수]

'말보로' 담배를 은밀하게 주고받는 교도소 수감자들(영화 『7번방의 선물』), 대화 도중 자연스레 '디스' 한 개비를 꺼내 무는 의경(웹툰 『뷰티풀 군바리』)…. 청소년들이 쉽게 접하는 영화ㆍ만화에서 담배나 흡연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관람가 영화 한 편당 5번 담배가 등장했고, 웹툰은 작품 3개 중 1개꼴로 흡연 장면이 나왔다. 노진원 을지대 의료경영학과 교수팀은 각종 미디어에 등장하는 담배ㆍ흡연 실태를 심층 분석한 결과를 5일 공개했다.
 
노 교수팀 조사에 따르면 TVㆍ영화ㆍ웹툰ㆍ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의 흡연과 담배 노출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2006~2016년 관객 수 상위 영화 94편(청소년 관람 불가 제외)을 점검한 결과, 흡연 장면이 연간 50~60회씩 등장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평균 30~40회인 것과 비교하면 최근작에서 담배 노출이 크게 늘어났다.
연도별 흥행 영화(청소년 관람가) 속에 등장하는 흡연 장면 노출횟수. [자료 노진원 교수]

연도별 흥행 영화(청소년 관람가) 속에 등장하는 흡연 장면 노출횟수. [자료 노진원 교수]

영화 94편의 흡연 장면은 총 459회로 집계됐다. 영화마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평균 4.9회 나온다. 특히 흡연 장면의 5.2%(24회)에선 담배 브랜드를 명확히 식별할 수 있었다. 연기자가 특정 담배 제품을 잡고 있거나 담배 진열장에 특정 브랜드만 전시하는 형태도 있다. 장면 전체에 담배가 클로즈업되는 경우도 꽤 됐다.
웹툰 주인공이 흡연을 권유하는 장면에서 실제 제품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자료 노진원 교수]

웹툰 주인공이 흡연을 권유하는 장면에서 실제 제품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자료 노진원 교수]

최근 청소년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은 웹툰도 담배에 여럿 노출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ㆍ다음의 인기 상위 웹툰 53편(지난해 7월 기준)을 분석했더니 18편(34%)에서 흡연 장면이나 담배 브랜드가 드러났다. 특히 웹툰은 특정 담뱃갑이 직접 노출되거나 담뱃갑 이미지만으로 브랜드를 연상할 수 있는 장면이 상당수였다. 남자 주인공이 대학 선배에게 '보햄 시가' 담배를 권하거나, 여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라이터를 빌려주며 자연스레 흡연하는 식이다.
 
영화ㆍ웹툰은 담배 규제를 안 받는다. 자율적인 가이드라인도 없다. 영화는 등급분류 기준에서 '약물ㆍ흡연 등의 장면이 반복적ㆍ지속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것'(15세 이상 관람가) 정도만 규정하고 있다. 배우가 흡연하는 모습이나 담배를 보여주는 장면이 단발적으로 나오면 큰 문제 없다는 의미다. 웹툰은 통일적으로 사용되는 민간 가이드라인이나 관련 법령이 전무하다. 네이버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 등으로 웹툰 내 담배 노출에 대해선 따로 문서화된 가이드라인은 없다"면서 "다만 자체적으로 흡연이 최소한의 장면으로 간접 묘사되도록 작가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담배를 억지로 피우는 웹툰 속 장면. [자료 노진원 교수]

남자 주인공이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담배를 억지로 피우는 웹툰 속 장면. [자료 노진원 교수]

WHO(세계보건기구)는 FCTC(담배규제기본협약) 가이드라인을 통해 '영화ㆍ게임 등 오락 매체에서의 담배 묘사는 젊은 층의 흡연에 강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담배 브랜드나 그 이미지를 알아볼 수 있게 묘사하는 걸 금지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호주·캐나다·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대중매체 내 담배 광고와 오락 매체 내 흡연 묘사를 모두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흐름에서 뒤처져있다.
 
전문가들도 반복적인 담배 노출에 따른 청소년의 악영향을 우려한다. 노진원 교수는 “웹툰 등 신종 미디어가 하루가 다르게 빨리 발전하지만 규제가 전혀 없다. 특히 웹툰 분야가 활성화된 우리나라가 규제 신설에 앞장서야 하지만 전혀 대책이 없는 상태다”면서 "웹툰이나 영화는 청소년에 쉽게 노출되는 데다 비흡연자의 흡연을 유도하기 때문에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우의 흡연 장면이 그대로 나온 청소년 관람 가능 영화. 이 영화를 본 청소년의 일부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자료 노진원 교수]

배우의 흡연 장면이 그대로 나온 청소년 관람 가능 영화. 이 영화를 본 청소년의 일부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자료 노진원 교수]

실제로 연구팀이 영화 『검사외전』을 본 14~19세 중고생 200명에게 물었더니 흡연 욕구를 느꼈다는 비율은 남학생 18%, 여학생 11%에 달했다. 특히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학생(6.7%)보다는 흡연 경험이 있는 학생(30.8%)이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웹툰 『외모지상주의』를 본 청소년들도 남학생, 흡연 경험자를 중심으로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가 높아졌다는 응답이 많았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모(17)군은 "웹툰을 보다 보면 특정 작품에서 흡연 장면이 자주 나오는 거 같다. 우리 또래가 평소 웹툰과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흡연 장면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 같다”면서 “가급적 그런 장면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주변 친구들은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 궐련이 아니라 전자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묘사하는 웹툰도 있다. [자료 노진원 교수]

일반 궐련이 아니라 전자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묘사하는 웹툰도 있다. [자료 노진원 교수]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광고도 대놓고 하는 광고보다 '맥락 효과'라고 해서 간접적으로 문맥에 맞게 하면 더 효과가 크다. 특히 청소년이나 청년층은 웹툰·영화 등이 감성적으로 접근해서 담배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민간 차원의 자율적 가이드라인이 먼저 나오고, 인식이 달라지면 강력한 법적 규제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현재 교수는 "정부와 창작자들 모두 미디어에서 흡연ㆍ담배 장면이 나오는 게 사회적으로 큰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두 주체의 인식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면서 "앞으로 담배 광고가 가능하거나 제품 노출이 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지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원천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인도는 담배ㆍ흡연 장면이 많은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미리 경고 문구를 집어넣는다. 우리도 미디어 속 흡연 장면이나 담배 제품 노출을 아예 금지하거나 적어도 위해성을 충분히 알릴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담배와 흡연 들여다보니
반면 문화계에선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법적 규제 대신 자율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림 작가(웹툰작가협회 이사)는 "만화가협회와 웹툰자율규제위원회에서 진행한 등급 도입 연구가 마무리 단계다. 전체 연령가와 19금으로만 나눠진 웹툰에 전 연령·12세·15세·18세 등 권고 연령을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법적 규제가 아니라 이러한 자율 규제 보완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안희재 인턴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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