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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게임의 규칙을 바꿔야 할 때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논설위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논설위원

정치란 따지고 보면 국민을 웃게 만드는 기술이다. 믿을 수 있어야 편하고, 편안해야 웃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간 우리 정치판이 보여준 거라곤 사리사욕과 당리당략, 독점적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모습뿐이었다. 웃음은커녕 분노를 자아냈다. 공부라도 하면 좀 덜할 텐데, 그런 정치인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얼마 전 국무총리실 주재로 국회의 대정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 부처의 정치인 장관은 알맹이 없는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장관은 그 전에도 몇 차례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도 공부와는 담을 쌓은 듯하다. 마음이 정치판에 써먹을 치적 쌓기에 쏠려 있어서다. 이러니 즉흥적이고 방향 없는 정책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정치가 모처럼 국민을 빙긋 웃게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주인공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내용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아쉬운 게 없을 리 없다.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어려움을 좀 더 덜어주지 못한 게 그렇다. 대신 특례업종을 확 줄인 건 박수받을 일이다. 근로기준법 적용조차 못 받는 근로자가 수두룩하다는 건 국가적 수치다. 이런 부끄러움을 걷어냈다.
 
더욱이 툭하면 근로자를 위한답시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정부와 기업을 겁박하고 옥죄던 행태가 법안 심의 과정에서만큼은 수그러들어 눈길을 끈다. 심지어 통과될 때까지 노동계나 정부도 전후 사정을 몰랐다. 외부 입김을 차단한 셈이다. 홍영표 환노위원장의 냉철한 현실 인식과 리더십, 결단이 돋보였다. 여야 정치인의 협치가 더해져 일군 업적이다. 이 법안 통과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하나 제거됐다. 더불어 대법원의 근로시간 관련 판결을 앞두고 입법부가 사법부에 명확한 시그널을 줬다. 경제를 챙겨야 한다는 사인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2015년 ‘9·15 노사정 대타협’에 포함된 주요 합의사안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은 현 정부 들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노동개혁이 첫발을 뗐다고 볼 수 있다. 정치권발 노동개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9·15 사회적 대타협 합의문’의 전문엔 이렇게 적혀 있다. ‘산업구조 변동 등 우리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매우 엄중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시장 기능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시장의 변화와 우리의 취약점을 제대로 짚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대한민국호의 생존전략이란 점도 명확하게 했다.
 
노사정의 인식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지는 게임이 복잡해졌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더해져 초경쟁 시대로 일컬어진다. 낡아빠진 게임 규칙(제도)을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 199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더글러스 노스는 “제도가 경제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제도의 포용성을 강조했다. 우리에겐 규칙을 바꿀 토대로 ‘9·15 사회적 대타협’이 있다. 노사정이 치열한 논의 끝에 조금씩 양보해 도출했으니 포용성도 갖췄다.
 
알다시피 노동계는 대타협 4개월여 만에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담은 이른바 2대 지침을 정부가 강행한 걸 이유로 들었다. 한데 현 정부 들어 2대 지침은 폐기됐다. 합의 파기의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그렇다면 노사정 대타협을 이행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그런데도 바뀐 건 없다. 대신 새로운 사회적 대타협을 한다고 부산을 떤다. 그러나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관한 한 ‘9·15 노사정 대타협’에 담긴 방대한 내용을 넘어설 수 있을까. 경제주체끼리 갈등의 골만 패이고 시간만 허비하진 않을지 걱정이다.
 
“공리공담(空理空談)만 하고 실질적인 논의를 전혀 못 하는 무능한 사회.” 18세기 말 박제가의 비판(『북학의』)이 만물이 소생하는 춘삼월에 떠올라 영 마뜩잖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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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