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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일 관계 리셋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평창 동계올림픽이 지구촌 스포츠 제전을 넘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회의 장을 마련하며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1월 초 시작된 남북대화가 북한의 대규모 응원단과 공연단 파견, 김여정·김영남·김영철 등 고위 대표단 참가로 이어지며 남북 소통 창구를 여는 계기를 만들었다.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부부장의 접촉이 불발됐지만, 펜스 부통령이 귀국 후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폐회식에 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대화 의사를 피력함으로써 북·미 대화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남북 여자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 김여정 일행에 대한 과도한 의전 논란, 천안함 사건 책임자인 김영철 방문 처리 등에서 매끄럽지 못한 점은 있었지만,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통해 북핵 위기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한 동력을 창출하려는 시도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미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비핵화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북·미 대화의 성사는 북한의 전략적 결단에 달려 있다. 북한의 핵무장 완성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에서의 북핵 외교 게임은 한층 급박하게 돌아갈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미 대화 성사가 중요하지만 대북 외교게임을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협조를 확보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중국은 우리로서는 사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데서 오는 운신의 제약이 있지만, 미국이 무역 카드와 군사 옵션을 통해 중국의 동참을 확보해 가고 있다. 러시아도 중국만큼 협조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의 외교 노력이 필요하다.
 
북핵 대처에 있어 주변국 중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일본이다. 그간 한·미·일 공조체제는 북핵 문제를 다루는 주요 기제였고, 북한 비핵화에 관해 한·일 양국이 공통의 이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하면 비핵국인 한·일은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억지에 의존하는 상황이 된다. 미국의 군사 옵션이 현실화되면 가장 피해를 입을 곳도 한·일이다. 일본은 주일 미군기지가 있고 후방 지원 업무를 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론 3/5

시론 3/5

한·일은 북한의 비핵화 달성을 위해 긴밀히 협의하고 미국의 군사 옵션이 현실화됨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깨는 일이 없도록 공동 노력해야 한다. 특히 양국은 향후 북핵 교섭이 미국 일각이 제기하는 북핵 동결로 결론 나지 않도록 하는 데도 손을 맞잡아야 한다. 아베 총리가 북핵 해결의 열쇠를 쥔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외국 정상으로 소통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한·미 채널과 함께 미·일 채널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2016년 말 부산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로 악화된 한·일 관계는 개선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온 아베 총리에 대한 별도의 식사 기회가 없었던 점과 한·미 연합훈련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비정상적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한국은 과거사 문제와 다른 분야를 분리해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투트랙 접근을 하지만, 일본은 2015년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원트랙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양국은 관계 악화로 인한 막대한 기회비용을 따져보고 조기 정상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 일본은 위안부 문제가 끝났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스가 일본 관방장관은 “합의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의’를 중시하는 한국과 ‘약속’을 중시하는 일본의 충돌이라 할 수 있다.
 
양국 정부는 상대방에 대한 손가락질로 문제를 더 꼬이게 하지 말고 소통과 숙의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2015년 합의는 현안 해결을 위한 외교적 절충을 시도한 것으로, 보편적·역사적 차원의 문제까지 해결한 것은 아니다. 양측 모두 국내적 고려에 함몰된 ‘뺄셈의 외교’를 버리고 상호 협력을 통한 ‘덧셈의 외교’를 꾀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인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역사 교훈으로 삼는 노력을 통해 합의를 보완해가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와 법치를 유지하는 데 공통 이해가 있다. 아시아 가치사슬 내에서 일본의 앞선 제조업 기술을 확보하는 일도 우리에게 중요하다.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 에너지, 제3국 진출 등 한일 협력의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이웃 국가와의 외교를 흩트리면 외교의 기본 틀이 흔들린다. 올해는 한·일 관계의 새 시대를 열었던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 20주년이 되는 해다. 양국 지도자들은 셔틀 외교를 조기 재개하고 새 비전과 각오로 21세기 한·일 관계의 틀을 짜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바란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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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