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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고은 지우기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고은에 대해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 것은 있다. 그의 왕성한 창작열이다. 평생 시집 한 권 제대로 낼까 말까 한 과작(寡作)의 작가도 수두룩한데, 60년 가까운 작품 생활 동안 펴낸 시집·소설·산문집이 150여 권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아직도 시들이 내 뒤통수에서 써 달라고 잡아당긴다”고 말했다.
 
그의 다산성을 대표하는 작품이 ‘만인보’다. ‘시로 쓴 민족의 호적부’란 별명답게 4001편의 시에 5600여 명의 인물을 담았다. 1986년 1권 ‘할아버지’로 시작한 연작시는 2010년 연산군을 소재로 한 ‘한강배다리’로 30권의 대단원을 맺었다. “민족문학의 총역량을 수렴하면서 21세기 우리 문학의 방향을 제시했다”(제1회 만해상 선정 이유)는 칭송을 받으며, 시인이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성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았다. 2006년 시인 이시영은 “다산성에 비해 그다지 특출한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작의(作意)의 노출’이 심하고 시적 상상력이 협소한 태작(駄作)이 상당수 보인다는 비판이었다. 비슷비슷한 시들이 반복되는 것도 꼬집었다. 고은의 위상을 생각하면 같은 진보 문단 내에서 쉽지 않은 비판이었지만 큰 반향은 없었다. 보수 진영에서는 우파 인물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부정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고은의 성추문이 불거지자 곳곳에서 흔적 지우기가 한창이다. 서울시는 3억원이나 들여 그의 서재를 재현한 ‘만인의 방’을 조성 석 달 만에 철거하기로 했다. 광교산 자락에 거처를 제공했던 수원시도 그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시인의 고향 군산에서도 관련 사업을 접는다는 소식이다. 유명 인사를 끌어와 지자체 홍보나 단체장 업적 쌓기에 이용하려다 역풍을 맞았다.
 
그의 추문이 문학판에서는 새로운 얘기도 아니라는 것이 더 충격이다. 알면서도 쉬쉬했던 것은 진보 문단 혹은 진영에서 발했던 그의 휘광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리라. 그 휘광이 만든 짙은 그림자와 음습함은 고은 문학 자체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마저 어렵게 만든 게 사실이다.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최영미), “불교의 돈오(頓悟)적 일갈이 섬광처럼 번득이는 시”(평론가 김병익)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 감탄고토(甘呑苦吐)식의 흔적 지우기에 그치지 않고, 이참에 그의 문학 자체에 대한 진지한 평가와 논쟁이 이뤄지면 어떨까.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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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