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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대부의 마지막 수업 “학교 건물 이대로 둘 건가”

지난 2월 28일 정년퇴임한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 교수. 장진영 기자

지난 2월 28일 정년퇴임한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 교수. 장진영 기자

지난달 22일 오후 5시. 서울대 미술관(MoA) 오라토리엄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정년퇴임을 앞둔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 교수의 마지막 강의였다. ‘건축학도의 큰 스승’으로 불리는 그를 위해 제자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자신의 역할을 대학 강의실에만 가두지 않고, 건축가협회 건축교육원장을 맡아 초·중·고등학생 대상 건축 교육에 앞장 서고, 젊은 건축가들을 가르치는 공동건축학교 교장을 맡아 한국 건축계를 이끌어온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건축강의』

『건축강의』

서울시립대와 서울대 강단에서 건축 이론을 가르치며 41년 8개월 24일을 보내고 2월 28일 퇴임한 그가 최근 10권짜리 『건축강의』(안그라픽스)와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뜨인돌)을 함께 펴냈다. 『건축강의』는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20년 전에 기획한 것. “건축학에 기본이 되는 서적, 교재랄 게 별로 없는 게 늘 아쉬워 교수로서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는 그는 “건축학에서 반드시 다뤄야 하는 것들을 다루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건축학 전체를 꿰뚫고, 건축학의 대계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썼다”고 말했다. 반면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은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국민건축교과서’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두 권의 책 중 1권이다. 퇴임을 앞둔 그를 만난 기자가 그가 마지막 강의와 인터뷰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했다.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좋은 건축보다 좋은 학교가 먼저="좋은 건축이 뭐냐고요? 이 질문 대신에 좋은 학교가 무엇이냐고 질문했으면 해요. 그러면 좋은 건축이 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거든요.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곳이 학교입니다. 초·중·고등학교 12년을 평균 나이 84세로 계산하면 인생의 1/7을 학교에서 보내는 거죠. 여기에다가 어린이와 십대 청소년의 ‘감성’을 고려하면 그 시간의 중요성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학교 건축은 모두 ‘판박이’처럼 획일적이고 경직돼 있어요. 그 곳에서 아이들이 어떤 자극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중요한 공간을 지금처럼 내버려 두고 추상적으로 좋은 건축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학교 건축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공공건축물 망치는 전자입찰제="치안센터, 주민센터, 경로당, 도서관, 어린이집 등 작은 공공건축물을 짓는 데 몹시 나쁜 제도가 있어요. 이른바 전자입찰이라는 겁니다. 컴퓨터상에서 임의로 선택된 건축가에게 그 건물 설계를 맡기는 방식입니다. 작은 공공건축물의 80%가 설계안도 받아 보지 않고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임의로 설계자를 선정하죠. 주민들을 늘 가까이 대하는 작은 공공건축물을 그저 ‘저비용’과 허울 좋은 ‘공정’에만 초점을 맞춰 지어온 겁니다.”
 
김광현 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서울 신대방동 ‘농심 어린이집’(2013). 그는 ’기쁨이 건축물의 사용자와 건축가를 이어주는 접점“이라고 말한다. [사진 김광현]

김광현 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서울 신대방동 ‘농심 어린이집’(2013). 그는 ’기쁨이 건축물의 사용자와 건축가를 이어주는 접점“이라고 말한다. [사진 김광현]

◆건축은 모두의 기쁨이다="가장 소중한 건축의 본질은 기쁨이에요. 기쁨이야말로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건축가를 이어주는 접점입니다. 몇 년 전 ‘농심 어린이집’을 설계했습니다. 직원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인데요, 설계자로서 특히 보람 있었던 것은 이 집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이 아주 높았다는 것이었어요. 건축가로서 가장 듣고 싶고 들어야 할 말은 자기가 설계한 집을 통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주 행복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건축가다="건축은 따로 배우지 않더라도 인간의 DNA에 새겨져 있어요. 인간은 이미 그 존재의 본질에서 건축가라는 뜻입니다. 만약 건축가만이 건축에 대해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케냐 마히가 호프 스쿨의 아이들. 지역민의 삶을 관찰한 ‘빗물 저장고’ 아이디어가 아이들의 삶에 희망을 주었다. [노블리티 프로젝트]

케냐 마히가 호프 스쿨의 아이들. 지역민의 삶을 관찰한 ‘빗물 저장고’ 아이디어가 아이들의 삶에 희망을 주었다. [노블리티 프로젝트]

◆케냐에서 확인한 건축의 힘="아프리카 케냐에 ‘마히가 호프’라는 고등학교가 있어요. 이곳에는 물이 아주 귀한데 2010년 국제 비영리기구인 노블리티 프로젝트에서 해결책을 제안했어요. 지붕을 따라 설치한 홈통으로 물을 모으고 정수한다는 구상으로, 농구장에 지붕과 빗물 저장고를 교사, 주민 그리고 건축가가 함께 만들었죠. 비가 내리던 날 아이들이 환호하며 모인 사진을 보면 정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축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건축학도여, 관찰하고 해석하라=“가장 가까운 곳을 항상 관찰하고 자신의 눈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건축은 감상이 아니라 체험=“내가 몸을 움직이는 범위 안에서 일상생활을 관찰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건축은 체험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종이, 나무, 벽돌, 빛, 콘크리트 등도 이전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건축을 배우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건축을 통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건축은 우리의 삶 그 자체다=“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이 참 많아요. 건축에는 문화, 공학, 예술, 산업, 기술, 환경, 경제, 생활, 여가, 전통, 공동체, 법과 제도, 공공성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요. 이 정도라면 건축은 우리의 삶 그 자체라고 할 만합니다.”
 
그는 앞으로 “지금까지 건축학자로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현장에서 일하는 30대의 건축가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며 ‘진짜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젊은 건축가들이 많아요. 그들과 함께하며 저도 그들로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 건축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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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