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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살인자, 가정 파탄자"…데스노트 남기고 극단적 선택한 부부

 남편과 동반 자살을 한 A씨(33·여)가 두 딸에게 남긴 유서. [사진 유족]

남편과 동반 자살을 한 A씨(33·여)가 두 딸에게 남긴 유서. [사진 유족]

남편과 동반 자살을 한 A씨(33·여)가 두 딸에게 남긴 유서. [사진 유족]

남편과 동반 자살을 한 A씨(33·여)가 두 딸에게 남긴 유서. [사진 유족]

"우리 예쁜 공주님들, 엄마 마음에 큰 병이 생겨서 너무 많이 지치고 힘이 들어. 우리 딸들에게 밝은 모습으로 좋은 엄마가 돼주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한가 봐. 많이 사랑한다고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중략) 그렇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늘 곁에서 지켜줄게. 약속해."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딸을 둔 A씨(33·여)가 지난 3일 전북 무주에서 남편 B씨(37)와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하며 남긴 유서의 일부다. 
 
A씨는 전업주부, B씨는 농산물 유통업체 이사였다. 부부는 하루 간격을 두고 숨을 거뒀다. 두 사람이 남긴 유서에는 아직 어른들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두 딸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 그리고 양쪽 부모에게 불효를 저질렀다는 죄스러운 마음 등이 담겼다.  
 
아내와 동반 자살을 한 B씨(37)가 남긴 유서. [사진 유족]

아내와 동반 자살을 한 B씨(37)가 남긴 유서. [사진 유족]

아내와 동반 자살을 한 B씨(37)가 남긴 유서. 아내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친구 C씨(37)에 대해 "죽어서도 복수하겠다"고 적었다. [사진 유족]

아내와 동반 자살을 한 B씨(37)가 남긴 유서. 아내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친구 C씨(37)에 대해 "죽어서도 복수하겠다"고 적었다. [사진 유족]

동시에 누군가를 지목하며 "죽어서라도 복수하겠다"는 살벌한 말도 적혀 있다. 두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일종의 살생부(殺生簿) 혹은 데스노트(death note)를 남긴 셈이다. 도대체 이들 부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유족은 지난해 A씨가 남편 친구인 C씨(37)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과 C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이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C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줄곧 "A씨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항소심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5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3일 오전 0시28분쯤 전북 무주의 한 캠핑장 카라반(승용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이동식 주택)에서 A씨 부부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두 사람은 대전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A씨는 발견 당일 숨지고, 남편 B씨는 하루 뒤인 4일 오전 8시30분쯤 숨을 거뒀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성폭행 이미지. [중앙포토]

성폭행 이미지. [중앙포토]

앞서 '자살이 의심된다'는 가족의 신고를 받고 수색에 나선 경찰은 A씨 부부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 의식을 잃고 쓰러진 두 사람을 발견했다. 카라반 안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과 빈 소주병이 있었다. 유서도 발견됐다.
 
유족에 따르면 A씨 부부가 편지지에 기록한 유서는 모두 13장이다. A씨가 두 딸 앞으로 남긴 유서 2장, B씨가 양쪽 부모에게 쓴 유서 3장, 두 사람 이름으로 된 유서 4장 등이다. 나머지 유서 4장은 이들이 동반 자살을 하기 일주일 전쯤 A씨 혼자 본인 승용차 안에서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며 변호사에게 남긴 유서라고 한다.  
 
남편 B씨는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장모님께'라는 제목의 유서에서 "이 부족하고 못난 아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큰 불효를 저지르려 합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딸들에게는 "마음속 깊은 곳부터 우리 딸들을 아끼고 사랑했단다. 결코 (우리 죽음은) 너희들 잘못이 아니란다. 단지 아빠, 엄마가 어른 문제가 있는데 이제는 힘이 들고 너무 지쳐서 이 길을 택했단다"라고 애틋한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유서 말미에 "너(C씨)는 내가 지금 내 성질을 못 이겨서 이런 선택을 하지만 죽어서라도 끝까지 복수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라는 '추신(PS)'을 덧붙이며 C씨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성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성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A씨 부부는 두 사람 공동명의로 남긴 유서 4장에는 대부분 가족과 지인들에게 아직 미성년자인 두 딸을 부탁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본인들이 자살 장소로 택한 캠핑장(펜션) 주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해당 유서에는 "본의 아니게 펜션 주인께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어 깊이 죄송스럽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상당히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젊은 부부가 오죽하면 이런 결정을 했나 싶은 마음으로 너그러이 용서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A씨가 숨지기 일주일 전에 쓴 유서에는 C씨에 대한 원망과 저주가 적나라하게 담겼다. A씨는 유서에서 C씨를 '무언의 살인자' '가정 파탄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당신의 간사한 세치 혀가 죄 없는 예쁜 사춘기의 두 소녀를 한순간 고아로 만들었으며 여러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였으니, 그 죄는 어떠한 것으로도 갚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A씨는 "지난 일 년간 밤마다 우리 두 사람은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사람들 앞에서 웃고 있어도, 살고 있어도, 웃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지옥 불구덩이었다"고 털어놨다. 유족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사건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정신과 치료도 받고, 신경안정제도 복용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성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성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A씨는 "피고인(C씨) 당신은 지금처럼 추잡하고 비굴하고 구차하게 그렇게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남은 평생을 우리가 보낸 일 년 지옥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고 저주했다. 그는 그러면서 "제 마지막 이 글이 피고인 ○○○에게 어떠한 방법으로든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가는 길에라도 속 시원하게 하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변호사에게 신신당부했다.  
 
A씨 부부가 C씨와 악연이 시작된 건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법원에 따르면 대전지법 논산지원 형사1부(부장 조영범)는 친구(B씨)가 해외 출장을 간 사이 그의 아내(A씨)를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강간 및 협박)로 기소된 C씨에게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지난해 11월 15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만 지인들을 협박하고 폭행한 혐의에 대해선 유죄로 인정하고 C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양쪽은 항소했고, C씨는 현재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경찰 로고. [중앙포토]

경찰 로고. [중앙포토]

충남 논산의 한 폭력조직 조직원인 C씨는 A씨의 남편 B씨와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로 지낸 사이로 확인됐다. C씨는 앞서 2013년 7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014년 4월 출소했다고 한다.
 
법원에 따르면 C씨는 지난해 4월 14일 오후 11시43분부터 이튿날 오전 1시6분 사이에 충남 계룡시 한 무인모텔에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A씨의 남편과 자녀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해 A씨를 한 차례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A씨는 경찰에서 "4월 10일 밤 C씨를 만나 폭행과 협박을 당한 후 며칠간 협박을 당하다 강간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C씨는 재판부에 수차례 탄원서를 내며 결백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4월 10일부터 15일까지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남녀 관계로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1심 재판부는 C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성폭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성폭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재판부는 C씨가 지난해 4월 10일 밤 A씨에게 부부 사이를 이간질하고 이를 빌미로 A씨의 뺨을 때린 점, 스피커폰으로 여러 지인과 통화하며 A씨 남편을 해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취지의 험한 말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피고인은 A씨로부터 듣지 않고 꾸며냈다고 보기 어려운 그녀의 민감한 개인사와 고민들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술한다"며 "이런 종류의 대화는 어느 정도 친분을 쌓고 신뢰를 가지게 된 상대방과 나눌 수 있는 것이지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범인에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며 무죄를 주장한 C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가 남편이 해외로 출장을 간 4월 10일부터 성폭행을 당한 14일까지 닷새간 C씨와 거의 매일 만나면서도 C씨에게 감금이나 구속을 당한 적이 없는 점, C씨의 협박 사실에 대해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점, 해외에 있는 남편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면서도 한 번도 협박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 등을 토대로 "A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유족은 "(A씨)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금실이 좋았다. 잘못된 판결 때문에 한 가정이 파탄났다"며 1심 재판부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고인들의 한을 풀어주길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은 A씨 부부의 유언대로 남편 B씨의 고향인 논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두 사람에 대한 합동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무주·논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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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