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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도약하는 새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우리 포럼의 참가자 중에는 열띤 개발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유지 보수를 계속해 주면서 비트코인 세계는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2010년 어느 날 플로리다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한예츠 라즐로도 그런 개발자 중의 한명이었다. 이전의 중앙처리장치(CPU) 사용 채굴 방식에서 벗어나 그래픽 카드(GPU)를 이용해 채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것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당시 비트코인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비트코인의 가치가 상승하면 미래에 큰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이는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코어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보다 강력한 버전인 0.2 버전의 출현과 동시에 비트코인 마켓이라는 교환시장이 설립되었다. 그 당시 한예츠 라즐로가 비트코인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련의 암호학 관련자들이 비트코인 채굴 경쟁에 합류했다. 사람들은 그래픽 카드를 탑재한 가정용 컴퓨터를 소규모 디지털 화폐 채굴장으로 만들었다. 나는 과거 내가 꿈을 꾼 것을 생각하며 공장 같은 곳에 컴퓨터가 여럿 있는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한예츠 라즐로는 2010년 5월 18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흥미로운 제안을 적었다.

 
“누구든 피자 두 판을 우리 집으로 보내주실래요? 비트코인 1만개로 지불할게요.”

비트코인 거래

비트코인 거래

 
그는 저녁 식사를 해결할 목적만은 아니었다. 비트코인으로 현물을 구입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현물을 판매하는 상점은 비트코인을 받지 않았을 때였다. 피자가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즐로에게 주소나 입맛을 물은 사람은 있었지만 누구도 피자를 보내지 않았다.

 
나도 댓글을 달았다.

 
“축, 성공. 아름다운 비트코인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당신의 노력에 보답하고자 최고급 와인 한 병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라즐로는 약간 짜증이 났을 것이지만 참았다. 가게로 전화해 주문하고 신용카드를 들고 기다리면 30분 안에 먹을 수 있는데……. 라즐로는 그날 밤 피자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댓글에 일일이 답하며 비트코인을 받아줄 피자가게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났다. 한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피자 두 판을 보냈다. 처음으로 비트코인과 현물이 교환된 순간이었다.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재미 삼아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나는 마리아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빌, 나도 그래픽 카드를 사서 심심하면 채굴을 하고 있어요. 벌써 500개를 채굴했어요. 이게 달러라면 좋을 텐데. 그런데 가격이 조금씩 올라가요. 정말 고마워요. 빌 혹시 알아요. 이게 금덩이가 될지. 당신도 열심히 채굴하세요. 굿바이 b-보이”

 
그녀는 이후로 나를 b-보이라고 불렀다. 릭은 무슨 일인지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며 마지막 메시지를 비트코인 포럼에 남기고 사라지라고 요구했다. 머리도 어지럽고 당시 관심은 세계은행의 개발협력 프로젝트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는 방안을 연구 하고 싶어 그러겠다고 했다. 공식적인 포럼의 마지막 게시물을 남기고 나는 사라졌다.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시스템 개선을 위해 작업해둔 걸 손보고 있습니다. 신버전개발을 마친 후에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춰 작업해 볼 생각입니다."

 
마지막 글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2011년, 사실 무언가가 꿈틀댐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국 과학잡지에서 '세계를 바꿀 아이디어 10'에 비트코인을 올렸다. 그 소식이 있었던 날, 릭은 나를 만나자는 제안을 하였다. 나는 린다의 죽음 이후 그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린다 언니의 정체도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그들과 연결된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싫었다. 하지만 친구였고 여전히 비트코인 개발 협력자로서 그의 존재를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스타벅스 카페는 늘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그건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상징이다. 릭은 턱수염을 깎지 않고 있었는데 표정이 밝아 보였다.

 
“비트코인의 존재감이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했어. 너 얼마나 캤니.”

 
나는 동그라미를 몇 개 그리다 그냥 지우면서 말했다.

 
“왜? 음. 이건 나중에 의미 있는데 사용할 거야.”

 
“네게 경고장을 날리겠어. 우리의 정체를 알리고 싶지 않아. 누군가 우리를 죽일 수도 있어. 그게 FBI든 CIA든 그 누구든. 너 반정부 인사로 분류되고 싶지 않지.”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너랑 나랑 린다를 기리며 노벨경제학상이나 다른 과학상 후보에 오르면 좋잖아. 말 잔치뿐인 경제학계에 획기적인 인물이 탄생하였다. 이렇게 신문에 나면 너도 좋잖아.”

 
“빌. 너 지금 농담하니.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깟 노벨상 상금이 얼마라고.”

 
“그깟 노벨상 상금. 상금액도 많지만, 그 명예가 어디인데. 우리가 뭔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빌. 제발 그 입 좀 닥치지 않을래. 비트코인의 익명성은 완전하지 않아. 앞으로 채굴하려면 이렇게 해. 여기 종이에 채굴과 관련한 정보를 줄게. 비트코인이 거래가 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조심을 해야 해. 실제 거래자와 비트코인 주소 간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할 거야. 거래자의 비트코인 주소를 찾기만 하면 언제 얼마만큼의 돈을 누구에게로 보냈는지 경찰이 아니라도 누구나 손쉽게 알 수 있는 거잖아. 넌 절대 팔지 마.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고통을 생각하며 어디론가 숨어. 린다의 채굴량이 내 채굴량의 2배 수준이야. 초기에 그녀가 우울해 하며 채굴하는 것을 좋아하더라. 빌을 도와야 한다면서. 그 비밀번호를 누군가는 알고 있어. 아마 내년 이맘때쯤 너의 일본 가명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10인에 등재할 거야.”

 
비트코인 거래자가 여러 주소를 사용하는 경우 거래자와 비트코인 주소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어진다. 나는 알았다는 말을 하고 그와 헤어졌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더는 릭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월스트리트에서 비트코인을 사라는 호객행위도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SNS에서의 비트코인 가격 움직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괄목할 만큼 가격이 상승하여 나의 종이 상의 부는 많이 증가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린다의 언니 미쉘이었다.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그녀와 마주한 나는 뭔가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릭은 무서운 남자예요. 린다는 사실 가정 폭력에 시달렸어요. 결혼도 사실 릭이 린다를 강간하고 아이를 가져서 한 거예요. 불행하게도 아이는 뱃속에서 사산했어요. 린다는 이후 심한 산후 우울증을 겪었죠. 릭이 싫어 잠자리를 거부하면 그날은 온갖 변태적인 행위를 하는 거예요. 몇 번을 도망쳤다가 릭이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그런 삶이 반복되었어요. 릭은 또 한편으로 멀쩡할 때는 린다에게 용서를 구하고 잘못했다며 애원을 하곤 했죠. 린다는 정이 많은 아이예요. 이게 린다가 남긴 유서고 장례식 가기 전 제게 우편으로 날아온 거예요, 거기에 린다의 비트코인 전자지갑 비밀번호가 있어요. 릭이 저를 의심해요. 그 비밀번호를 캐려고요. 린다가 그랬어요. 릭이 월가의 사람들과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수년간에 걸친 프로젝트라고 했어요. 그리고 작년에 죽을 무렵 올해가 비트코인의 의미 있는 첫해가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 아이의 말이 맞을수록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어요.”



알았다는 답변을 한 후 그녀에게 멀리 피신하라고 했다. 헤어진 후 집으로 오는 나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SNS의 비트코인 시세판 논쟁은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 마음 한편에서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나의 논문은 각국에서 번역되었고 거래소가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기술에 대한 찬양과 비트코인에 대한 의혹이 동시에 제기되었다. 2010년 4월에 1비트코인의 가치는 미국 달러화 기준으로 14센트였지만, 매일 매일 올라 1년 후에는 20달러를 능가하고 있었다. 나는 무서운 생각에 비트코인 시스템을 유지, 보수해주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의 연락도 끊기로 했다. 그게 2011년 4월이었다.

 
2011년 5월 어느 날 신문을 본 나는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다. 한 여인의 죽음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미쉘 윌슨. 얼굴을 보니 린다의 언니였다. 의문의 죽음이라는 글을 보는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은퇴하신 아버지에게 집을 빨리 처분하자고 했다. 급하게 집을 처분하고 플로리다로 이사를 하고자 짐을 급히 꾸렸다. 암호학자들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제네시스 블록을 추적했다. 나카모토의 것으로 확인한 주소로 흘러 들어간 움직임을 분석해서 내가 얼마나 비트코인을 소지하고 있는지를 추정했다. 다행히도 그 주인이 누구인지는 확인이 가능하지 않았다. 나는 비트코인이 세계시민이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고 사적 이익을 위해 단 한 푼도 쓸 생각이 없었다. 
 
훗날 린다의 계정을 확인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텅 빈 계좌였고 그것은 누군가의 계좌로 분산되어 옮겨졌다. 블록체인 추적 기술을 사용하면 코인이 있는 지갑의 주소는 쉽게 볼 수 있다. 그 흐름이 일관성이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의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옮기는 작업을 여러 주소로 분산해서 실행했다. 누군지 예상이 되니 더더욱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새 보금자리에 짐을 푼 순간 세상과 당분간 단절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릭에 대한 분노가 화염이 되어 나를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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