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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미투' 가해자 지목 인사 흔적 지우기…지자체 골머리

지난 27일부터 서울도서관 3층에 마련한 고은 시인 만인의 방이 가림막으로 완전히 가려졌다. 고은 시인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임선영 기자

지난 27일부터 서울도서관 3층에 마련한 고은 시인 만인의 방이 가림막으로 완전히 가려졌다. 고은 시인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임선영 기자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사) 3층에 조성된 고은(84) 시인의 기념공간인 ‘만인의 방’이 27일 오후 전면 철거수순에 들어갔다.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전부 치운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거론돼왔던 고은 시인이지만 과거 여성 문인 등을 성희롱·성추행했다는 추문에 휩싸이자 나온 조치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면서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바로 철거하지 않고 가림막을 치는 건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논의하기 위해서다”며 “확정되면 지체 없이 철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흔적 지우기…
 
‘만인의 방’(60㎡)은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약 3억원을 들여 만든 곳이다.  고은 시인이 『만인보(萬人譜)』를 집필하던 경기도 안성시 서재를 재구성했다. 공간의 이름도 그의 작품에서 따왔다. 이 공간은 고은 시인의 방대한 기증품들로 채워져 있다. 집필 당시 사용한 서가와 책상(일명 ‘만인보 책상’), 『만인보』 육필원고가 있다. 인물 연구자료와 도서 3000여 권, 메모지는 물론이고 평소 사용하던 안경·모자·옷 등도 전시돼 있다. 서울시는 고은 시인의 기증품을 모두 돌려줄 예정이다.   
최근 성희롱ㆍ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고은 시인이 경기 수원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중앙포토ㆍ수원시]

최근 성희롱ㆍ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고은 시인이 경기 수원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중앙포토ㆍ수원시]

 
고은 시인 모시기에 공을 들였던 경기도 수원시도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수원시는 시인의 고향인 전북 군산시를 비롯해 강원 태백시, 경기 파주시와 한때 모시기 경쟁을 벌였다. 결국 2013년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에 문화향수의 집이라는 거처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9억5000만원을 들여 방치된 폐가를 리모델링했다. 고은 시인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뒤 고은재단을 통해 수원시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수원시는 현재 고은 시인이 떠날 문화향수의 집 활용방안을 고심 중이다. 지역 문인들에게 창작공간으로 제공할지, 생태학습장으로 활용할지 아직 결정 못 한 상태다. 수원이 지역구인 이찬열 의원은 “고은 시인이 당장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 문학관은 ‘무산’되는 분위기다. 수원시는 팔달구 장안동 한옥기술전시관 뒤편 시유지 6000㎡에 문학관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200억원의 건립비는 고은재단 측이 내고, 시는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지만, 이 계획이 물거품 된 거다. 미투 운동 와중에 불거진 고은 시인에 대한 부정여론을 반영해서다. 지난달 23일 수원시의회 본회의장에서는 고은 문학관 건립 백지화 요구가 터져 나왔다. 수원시 관계자는 “곧 공식입장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일반관객들의 위드유(with you)집회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렸다. 김경록 기자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일반관객들의 위드유(with you)집회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렸다. 김경록 기자

 
독이 된 셀럽 마케팅
 
지방자치단체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셀럽(유명인)’의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셀럽 마케팅을 위해 모시기 경쟁까지 마다치 않았던 지자체지만 미투 운동에 따른 부정여론을 거스를 수 없어서다. 자연히 셀럽에게 지원했던 시설 등의 활용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밀양연극촌 전경사진. 밀양시는 이달 중순 연극촌측에 계약을 해지하겠나는 통보를 했다. 위성욱 기자

밀양연극촌 전경사진. 밀양시는 이달 중순 연극촌측에 계약을 해지하겠나는 통보를 했다. 위성욱 기자

 
 
경남 밀양시는 ㈔밀양연극촌 이윤택 이사장의 성 추문이 불거지자 지난 19일 연극촌과의 무료 위탁운영 계약을 해지했다. 이에 부북면 밀양연극촌 시설 활용 방안과 각종 공연예술축제 진행 여부가 문제다. 당장 밀양연극촌의 주도로 해마다 7월쯤 함께 추진해 왔던 여름공연예술축제(6억5000만원)를 어떻게 할지 고심 중이다. 여름공연예술축제는 밀양지역 최대 축제 중 하나였다. 밀양시와 밀양시의회가 계속 개최 여부를 놓고 논의를 하고 있지만 ‘이 씨 흔적 지우기’가 우선이라는 정서가 강해 개최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게다가 하용부 밀양연극촌장의 성폭행 의혹까지 불거져 지역의 여러 공연도 차질이 예상된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성추행 논란 공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후 이 모습이 연출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뉴스1]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성추행 논란 공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후 이 모습이 연출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뉴스1]

 
계약해지하고 폐쇄하고 
 
김해시도 지난 20일 이윤택 이사장이 대표로 있는 김해예술창작스튜디오 운영단체인 도요창작스튜디오와 위·수탁 협약을 해지했다. 도요마을 내 이작초등학교 도요분교에 자리한 김해예술창작스튜디오는 김해시가 경남교육청에서 부지를 빌려 2009년부터 이 씨에게 위탁했다. 김해시는 매년 운영비 4000여만 원을 지원했다. 계약 해지 통보에 따라 이 씨 측은 김해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 이달 말까지 철수해야 한다. 김해예술창작스튜디오가 주관해 온 ‘도요마을 강변축제’와 ‘연극체험프로그램’ 사업 보조금 지원도 취소됐다. 올해 이 두 행사엔 5500만 원의 예산이 지원될 예정이었다. 김해시 관계자는 “계약 해지가 급하게 내려진 조치라 지금으로선 이 공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별다른 계획이 없다”며 “사태를 지켜본 뒤 후속 대책을 논의할 방침이다”고 전했다.
미투 운동 와중에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배병우씨. [뉴시스]

미투 운동 와중에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배병우씨. [뉴시스]

 
유명 사진작가 배병우(68)씨의 이름을 딴 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했던 전남 순천시도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순천시는 배씨가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재직 당시 제자들에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인 지난 23일 문화의 거리 내 ‘배병우 창작 스튜디오’를 폐쇄했다. 순천시가 2016년 문화재생을 통한 도시재생 활성화 차원에서 총 6억원을 들여 지은 지상 3층, 연면적 168㎡ 규모의 공간이다.
 
배 작가는 이곳에서 사진 전시를 비롯한 지역 학생과 시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 운영, 토크 콘서트 진행 등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5년간 순천시로부터 행재정적 지원을 받기로 했으나 이번 사건이 불거진 뒤 운영 협약을 해지당했다. 최소 5년 이상 활용할 목적으로 신축했던 스튜디오 건물은 당분간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됐다. 순천시 관계자는 “배 작가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며 “이미 사업을 추진했는데 다소 난감하다. 스튜디오 건물은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협의해 활용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재동 화백 모습. [연합뉴스]

박재동 화백 모습. [연합뉴스]

 
반면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의 성폭력 논란과 관련해 울산 울주군은 박 화백의 입장 표명을 기다리고 있다. 박 화백은 2015년부터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울주군이 영화제를 관리·감독, 후원한다. 사단법인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측은 “아직 거취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라면서도 지난 27일 예정돼 있던 법인 출범식을 무기한 연기했다. 울주군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박 화백이 긍·부정이든 거취 표명이든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 화백은 울주군 출신이다. 영화제 관계자는 “영화제 초기 열정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울주군 출신의 명망 있는 문화예술인을 찾았다”고 위원장 선정 배경을 밝혔다. 이승진 울산시민연대 팀장은 “인지도와 지역 연계성을 앞세운 셀럽 마케팅보다 콘텐트 등 내실에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은숙 수원대 학술연구 교수 역시 “셀럽을 내세운 마케팅에 나섰던 지자체였지만 이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곤혹스러울 것”이라며 “앞으로 문화·예술인에게 공간을 지원할 때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수원의 경우 지역문인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아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수원·밀양·순천·울주=김민욱·위성욱·김호·최은경 기자, 임선영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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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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