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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국내 최초 서양식 호텔 재현 현장 미리 가보니

“복원(復元)이 아니라 재현(再現)입니다.”
 

1888년 지어진 대불호텔, 당시 커피도 처음 판매
경인철도 생기면서 손님끊겨, 1970년대 철거
대불호텔, 당시 기록이 없어 '복원' 아닌 '재현'

지난 23일 인천시 중구 신포로 23번 길에 있는 대불호텔 앞. 대불호텔 동행 취재에 나선 인천시 중구청 유수미 학예사의 말이다.
유 학예사는 “복원은 말 그대로 ‘원형 그대로 다시 만드는 것’이지만 재현은 ‘당시에 이랬을 것’이라는 사실을 토대로 만드는 것”이라며 “지금 지어진 대불호텔이 복원이 아닌 재현된 것으로 불리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대불호텔 내부에 대한 관련 기록이 하나도 없어 재현하게 됐다”며 “1880년 대 생활풍습에 최대한 가깝게 꾸미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호텔 외관(겉모습)은 기록에 남아 있는 사진과 평면도를 바탕으로 원형 그대로 지어 외관 만큼은 ‘복원’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1896년 개항장 본정통과 대불호텔 모습. [사진 인천개항박물관]

1896년 개항장 본정통과 대불호텔 모습. [사진 인천개항박물관]

 
1970년대 철거 됐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이 전시관 등으로 재현된다. 대불호텔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판매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불호텔은1888년 인천 개항장(현 인천시 중구 신포로 23번길 101)에 처음 들어섰다. 호리 히사타로라는 일본 해운업자가 아들과 함께 세웠다. 이들 부자(父子)는 1883년 인천으로 이주한 뒤 2층짜리 일본식 주거 및 업무용 건물을 지었다.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업무공간 일부를 잠자리를 제공하며 돈을 벌었다. 이후 외국인들이 더 많아지고 숙박시설이 부족해지자 바로 옆에 벽돌조 서양식 3층 건물을 지었다. 국내 첫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이 들어선 것이다. 당시 객실은 11개였다. 호텔 객실요금은 2인실(특실)의 경우 2원50전, 일반실은 1원50전 이었다고 한다. 이후 다른 호텔이 들어서는 등 호황을 누렸다.
1950년대 대불호텔 모습. [사진 인천개항박물관]

1950년대 대불호텔 모습. [사진 인천개항박물관]

 
호텔이 늘어난 이유는 인천에서 서울까지 12시간 걸렸던 당시 도로 사정 때문이다. 인천항에 도착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묵어야 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1899년 인천~노량진을 오가는 경인철도가 생기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울까지 1시간40분이면 도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대불호텔의 경영난은 심해졌고, 결국 문을 닫았다. 호텔 건물은 1918년 한 중국인이 매입해 ‘중화루’라는 북경요리 전문점으로 바꿔 운영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1960~70년대 인구 감소로 1970년 대 중반 폐업했다. 폐업 후 건물주가 바뀌기를 수차례, 대불호텔 건물은 결국 1978년 철거됐다.
대불호텔이 문을 닫은 뒤 '중화루'로 바뀐 1970년 대 모습. [사진 인천개항사박물관]

대불호텔이 문을 닫은 뒤 '중화루'로 바뀐 1970년 대 모습. [사진 인천개항사박물관]

 
대불호텔 재현사업은 인천 개항장 도시재생사업 중 하나로 추진됐다. 재현 사업은 2014년 10월부터 시작됐다. 사업비는 모두 25억8000만원이다. 유 학예사와 함께 호텔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실내장식과 전시물에 대한 막바지 고증 및 보완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1970년 대 철거됐던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이 최근 복원 및 재현 돼 일반에 공개된다. 임명수 기자

1970년 대 철거됐던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이 최근 복원 및 재현 돼 일반에 공개된다. 임명수 기자

 
호텔은 전시관(1~2층)과 연회장(3층)으로 꾸며졌다. 1층 제1전시관에는 대불호텔의 역사와 당시의 사진들이 놓였다. 한쪽은 유리바닥으로 꾸며졌다. 유리 안쪽에는 이번 재현 공사 중 발견된 옛 대불호텔 지하구조물(빨간벽돌의 기둥과 계단 등)이 보관돼 있다.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바닥을 유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제2전시관이 있는 2층에는 당시 객실 2개가 마련돼 있다. 1~2인이 묵을 수 있는 객실에는 침대와 화장대, 차를 마실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장식장 등이 놓여 있었다.  

대불호텔 내부 제1전시관에 기록된 대불호텔의 역사. 호텔 객실요금이 적혀 있다. 임명수 기자

대불호텔 내부 제1전시관에 기록된 대불호텔의 역사. 호텔 객실요금이 적혀 있다. 임명수 기자

 
전시관 안쪽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숙박시설인 ‘우역’ 등 우리나라 호텔(여관)의 역사가 한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에는 일본의 호텔의 역사와 사진이 전시돼 있다. 3층은 당시 연회장처럼 꾸몄졌다. 공식 개관은 4월 6일이다. 입장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유수미 학예사는 “당초 다음달 개관할 계획이었지만 내부에 설치된 시설 등에 대한 고증작업을 벌이느라 늦어졌다”며 “완벽한 재현은 아니지만 최초의 서양식 호텔과 당시 생활상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불호텔과 함께 재현된 중구생활사 전시관 전경. 임명수 기자

대불호텔과 함께 재현된 중구생활사 전시관 전경. 임명수 기자

 
한편, 1960~70년대 인천시 중구지역 주민들이 살았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중구생활사 전시관’도 대불호텔과 같은날 오픈한다. 지하1층, 지상2층 구조로 1968년 인천의 중심지 중구의 모습과 인천역(전철 1호선) 대합실 모습 등이 담겨져 있다.  
 
또 이들 시설물 주변에는 일본은행거리, 차이나타운, 동화마을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도 많아 가족들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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