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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사업에 연 1조 쓰는데 … 의결권 제한은 기부문화 역행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이 26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김밥 프랜차이즈점을 방문해 ’최저임금 상승은 소비 활성화와 기업의 매출 증대라는 소득 주도 성장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뉴스1]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이 26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김밥 프랜차이즈점을 방문해 ’최저임금 상승은 소비 활성화와 기업의 매출 증대라는 소득 주도 성장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뉴스1]

서울 한남동의 랜드마크이자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한 곳인 리움미술관을 운영하는 곳은 1965년 설립된 삼성문화재단이다. 당시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사재를 털어 이 재단을 설립했다. 국보와 보물 50여 점과 함께 2000여 점의 개인 소장품도 재단에 내놓았다. 이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재산을 세상에 던지는 심경은 나이가 찬 딸을 출가시키는 마음”이라고 적었다. 사재를 내놨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이 재단은 74년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 당시 한 언론은 “정부가 세무조사를 하게 된 것은 재단이 변칙 상속으로 운영되는 유력한 혐의를 포착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44년이 지난 만큼 공익재단도 변했다. 재벌 일가의 기업 지배보다 순수 공익사업에 집중하는 곳이 더 많아졌지만 당국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중앙일보는 대기업집단 20곳(지난해 12월 27일 공정위가 발표한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이 설립한 공익재단 37곳의 보유 주식 내용(2016년 사업연도 기준)과 손익계산서를 전수조사했다. 조사는 지난해 이들 공익재단이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그 결과 37개 공익재단은 총 75개 대기업 계열사 주식을 보유했지만 그룹 지배력에 영향을 주기에는 미미한 곳이 대다수였다.
 
공익재단이 투자한 대기업 계열사 75곳 중 공익재단이 가진 지분율이 1%에도 채 미치지 못한 계열사는 37개로 절반에 달했다. 총 56개 계열사들은 공익재단이 상속·증여세 면세 한도인 지분율 5% 이내로 보유했다. 지분율이 5%가 넘어 경영권에 미치는 공익재단의 영향력이 커 보이는 곳이 19개에 달했지만 이 중 9개는 청소·식당·통근버스 등 용역 자회사 지분(6개)이거나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의결권 없이 배당만 챙기는 우선주 형태(3개)였다. 일각의 주장대로 “총수의 지배력 확대를 위해 공익재단을 활용한다”고 일반화하기엔 어려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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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대상 공익재단 37곳의 절반 이상(19개)이 수익사업보다는 공익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많았다. 교육·사회복지 등 공익사업을 위한 기부·출연금으로 모은 돈이 재단 운영을 위해 부동산·주식 등 수익성 자산에 투자해 번 돈보다 많은 곳이 과반이었다는 의미다. 공익사업에 돈을 쓴 비중이 수익사업에 쓴 돈보다 더 큰 곳도 24곳에 달했다. 전반적으로 공익사업과 자체 수익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공익사업에 사용하는 ‘상식적인’ 모습을 보인 곳이 더 많았다. 37개 공익재단이 2016년 한 해 공익사업에 쓴 돈을 모두 합하면 1조2474억원에 달한다.
 
중앙일보 전수조사 20개 대기업 37개 공익재단 현황

중앙일보 전수조사 20개 대기업 37개 공익재단 현황

과거에는 국내 대기업 소속 공익재단들이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을 돕는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 없이 계열사 지분을 공익재단에 몰아주는 식으로 그룹을 지배하거나 재벌 2세에게 지분을 물려주기 위해 공익재단을 이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90년 공익재단은 국내 기업 발행 주식의 20%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93년에는 규제를 강화해 5% 이상 보유한 특정 기업 지분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추징하도록 했다. 기업 입장에선 5% 이상 지분을 공익재단으로 기부해도 세제 혜택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에 공익재단을 활용한 편법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확장 행위들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불었던 지주회사 전환 붐도 공익재단을 재벌 지배력 강화에 동원할 필요성을 낮춘 원인이 됐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환위기 당시 재벌 대기업의 순환출자가 문제가 되면서 지주사로 전환하는 곳이 늘었다”며 “굳이 공익재단을 동원해 지배력을 확대할 이유가 사라지다시피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운영상의 미흡한 점이 발견된 곳은 상당수 있었다. 공익사업보다 수익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아 영리와 비영리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곳도 상당수(15개) 있었다. 일부 공익재단은 재무제표를 아예 공시하지 않거나 수익사업으로 번 수입은 있는데 비용은 전혀 쓰지 않은 것으로 회계처리하는 등 재무 기록을 신뢰할 수 없는 곳(9개)도 더러 있었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도 배당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곳도 37곳 중 15곳에 달했다. 공익재단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는 이유는 공익사업에 배당금을 활용하기 위해서이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운영되는 곳이 꽤 많은 것이다. 경제개혁연대와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은 이런 점을 근거로 “공익재단은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존재일 뿐”이란 주장을 편다. 현재 국회에는 공익재단이 보유한 대기업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민주당 박영선·박용진 의원이 2016년 6월 발의한 법안들이다. 공정위가 지난해 12월부터 공익재단 전수조사에 나선 것도 이들 법 개정안의 타당성을 살펴보려는 목적도 있다.
 
지배구조 전문가들도 공익재단의 미흡한 운영에 대해 관계당국이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견해다. 독일 차 부품 명가 보쉬도 공익재단 로버트보쉬재단이 지분 92%를 소유하고 있고, 신탁회사에 위탁해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독일 종합미디어그룹 배텔스만도 3개 공익재단이 전체 주식의 80.9%에 대한 의결권을 갖고 있다. 일부 자사주(회사가 자기 회사 주식을 산 경우)를 제외하면 공익재단의 의결권 자체를 제한하는 해외 사례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공익재단이 재벌의 사익 추구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면 관계당국이 감독을 잘하면 될 문제”라며 “기부 활성화의 순기능은 고려하지 않고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공익재단이 총수 결정에 반대해 재단의 이익을 대변할 권리조차 빼앗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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