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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평창올림픽의 ‘겨울 동화’가 남긴 숙제들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스포츠평론가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스포츠평론가

우리의 한 발은 엉망진창의 현실에 빠져 있고, 다른 발은 현실 저 너머로 뻗어 있다. 비루한 삶에 처박혀 있되 이를 벗어나려는 상상이 진창에 빠져 있던 한쪽 발마저 간신히 움직이게 만든다. 이 힘을, 스포츠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즉시성의 미학으로 보여준다. 재방송은 재미없다. 1초 후의 결과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1000분의 1초라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선수들을 우리는 즉시성에 입각해 한 달 가까이 지켜봤다.
 
수많은 선수들의 절실한 동작과 간절한 눈빛을 통해 우리는 사라진 줄 알았던 우리 내면의 힘을 확인했다. 그들은 규칙 안에서 규칙을 초월했다. 규칙은 그물망처럼 촘촘하다. 손을 살짝 뻗어도 실격이다. 규칙 안에서, 규칙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궁극적으로 규칙을 초월한다. 그리하여 규칙의 범위를 더 확장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 뼘이라도 더 자유로운 세계를, 상상의 제전(祭典)에서나마 펼쳐 보였다.
 
이렇게 평창의 ‘겨울 동화’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잔치가 끝나고 나면 계산서가 기다린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대회 기간 한반도의 군사적 한파가 누그러졌고 다가올 봄에도 대화와 협상의 기운이 조금은 지속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됐다. ‘평화 올림픽’을 지속적으로 추구한 결실이니, 더 큰 열매가 맺도록 노력해야 한다. 평화에는 좌우가 없다.
 
사회 내부로 보면, 계산서 항목이 복잡해진다. 평창 올림픽의 경제적 명분이었던 강원도 지역 경제의 활성화가 어떻게 이뤄질지 걱정이고, 며칠 동안의 경기를 위해 무참하게 훼손된 가리왕산의 복원이 가능한지도 우려스럽다.
 
각 경기장의 사후 활용 방안도 현실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일부 개발론자들은 더 많은 이벤트와 더 많은 시설로 개발해야 한다면서 심지어 설악산 능선 높은 곳으로 도로를 닦고 관광호텔도 짓자고 강변한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역사와 문화와 내면적 삶의 여행이지 결코 위락과 레저로서의 관광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시론

시론

아니, 그 이전에, 올림픽 시설들은 강원도민의 문화적 삶을 위해 쓰여야 한다. 일차적으로 지역 주민의 일상적 요구에 따른 기본 시설로 배치돼 그 속에서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삶의 문화가 이뤄질 때, 그 풍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다정한 걸음으로 강원도를 또 찾게 된다. 결코 업자들에게 평창과 강릉을 맡겨서는 안 된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시작으로 빙상 팀추월 경기로 이어진 공정성을 향한 외침 또한 이번 올림픽이 남긴 의미이자 과제이다. 이를 단순히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변화된 감수성이나 ‘88만원 세대’의 박탈감의 표현 정도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
 
세대론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문제를 단순화시킨다. 그 결과 논점이 흐려지고 정파적으로 변질한다. 세대론은 수면 위에서 얼핏 본 사회적 현상이다. 수면 아래에는 세대 차이 정도가 아닌, 우리 사회의 수많은 모순과 갈등이 뒤엉켜 있다. 그것은 이 사회의 모든 분야와 모든 세대에 퍼져 있는 공포와 차별의 기억이다. 일상적 삶을 위협하는 공포, 그 위에서 잔인하게 작동하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 이는 결코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빙상 팀추월 논란으로 극대화된 공정성 이슈는 공포와 차별의 연대기를 통과하고 있는 거의 모든 세대의 어떤 끔찍한 기억들이 일순간 터져 나온 것이다.
 
진창에 빠진 다른 발을 어떻게 빼내서 움직일 것인가. 눈과 얼음 위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경기들을 통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잔치는 더 나은 삶을 예감하게 할 뿐 그것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실사구시의 실천이 필요하다.
 
스포츠로 인해 즐거웠다면 바로 그 스포츠에 내재한 폐습부터 해결해야 한다. 심석희 선수의 폭행 피해, 빙상연맹의 석연치 않은 결정들과 파벌 논란, 일부 정치인의 낡은 관습, 대한체육회의 거만한 태도들은 더 이상 재연되지 않아야 한다. 평창 발 뉴스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100인의 여성체육인회’는 유소년에서 실업과 대표팀에까지 만연해 있는 체육계 성폭력 문제를 조사하고 처벌해달라고 외치고 있다. 다짐과 선서가 아니라 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 제도 개혁은 물론이다.
 
평창으로 인해 즐거웠다면, 그 선수들로 인해 짜릿했다면 이제는 계산해야 한다. 강원도민의 삶을 성원해야 한다. 선수들의 인권과 미래가 보호되고 보장돼야 한다.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열릴 때, 스포츠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진창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새로운 지평으로 두 발 모두 힘차게 내딛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스포츠평론가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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