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이현상의 시시각각] GM과의 협상, 느긋해야 이긴다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군산의 공기는 스산했다. 일제 수탈의 흔적을 찾아온 관광객들 위로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어지럽다. 현수막 중에는 ‘향토기업 한국GM을 살려내자’는 구호도 보인다. 미국 GM이 77%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향토기업’이라니….
 
군산시청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한국GM에 대한 군산 시민들의 절실한 기대를 생각하면 어색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했다. 군산시는 수년 전부터 한국GM이 어려워지자 팔을 걷고 도왔다. 판촉 행사는 물론 시청 현관에 군산 공장에서 생산된 차까지 전시하며 홍보했다. GM은 군산의 이런 애정을 모질게 짓밟았다. 이 공무원은 “시청 현관에 전시된 GM 차를 부수고 싶었을 지경”이라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군산이 느끼는 배신감은 냉혹한 글로벌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오히려 순진하다. 2016년 초 취임한 메리 배라 GM CEO는 별명이 ‘규칙 파괴자’이자 ‘GM의 잔 다르크’다. 덩치로 승부하던 성장 규칙을 내실로 바꿔 잔 다르크처럼 기울어 가던 GM을 부활시켰다. 이 과정에서 돈이 안 되는 사업장은 가차 없이 버렸다. 유럽 시장에서 수익성 낮은 소형차 사업을 철수했고, 그 유탄을 군산공장이 정면으로 맞았다. GM의 안중에는 한반도 남쪽 한 중소도시의 절박함이 있을 리 없다.
 
한국GM의 위기에는 강성 노조에도 분명 책임은 있으나, 일차적 원인은 어디까지나 GM의 글로벌 전략이다. GM은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한국을 소형차 생산 기지로 활용했다. 당시만 해도 고유가로 소형차가 각광받았으나, 이후 유가 하락으로 점점 외면받았다. 하지만 GM은 한국에 수익성 높은 차를 배정하지 않았다. GM은 미국이나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는 세계 각 곳의 공장을 단순한 생산 하청 기지로 활용할 뿐이다. 문제는 이런 글로벌 자본의 전략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오늘 한국GM의 운명은 2002년 대우자동차 매각 때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GM은 당시 협상의 지렛대로 ‘부평공장 인수 제외’를 활용했다. 대량 실업을 걱정했던 우리 정부는 기선을 제압당했고, 결국 헐값 시비를 감수하고 대우차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언감생심이었다.
 
지금도 상황이 어렵지만 그때보다는 여유가 있다. GM으로서도 당장 철수하기에는 한국 공장의 능력이 아깝다. ‘GM 갑(甲)-정부 을(乙)’의 일방적 협상 구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협상은 철저하게 우리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GM이 신차 2종을 배정하겠다고 생색을 내고 있지만 턱도 없다.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지 모르는 내연기관 차, 그것도 수익성 낮은 소형차로는 한국 자동차의 내일은 없다. GM이 추진하고 있는 미래형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전략의 한 축을 한국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GM이 한국의 일자리를 볼모로 하듯, 한국은 GM의 미래를 담보로 삼는 전략이다. 그런 담보 없이 지원에 나섰다가는 GM은 곶감 빼먹듯 지원금을 빼먹고 몇 년 후 또 철수 운운하며 손을 벌릴 것이다.
 
최악의 경우 철수하려면 철수하라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어설프게 협상해서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보다는 아예 판을 새로 짜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나 협력업체의 고통이 불가피하지만 실업 지원이나 사회적 안전망 확대 같은 방법으로 풀면 된다.
 
협상의 결과는 ‘윈-윈’이 돼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치킨게임까지 불사해야 한다. 때로는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한 ‘블러핑’도 필요하다. 전 세계에서 각국 정부와 치킨게임을 벌였던 GM을 상대로 우리 정부는 이런 배짱과 노련함을 가지고 있는가. 
 
이현상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