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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팀 첫 골 희수 그리핀 “북 선수들, 일본 꼭 이기려 했다”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가 26일 한국 선수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가 26일 한국 선수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지 말고, 우리 꼭 다시 만나.”
 
26일 오전 강릉 올림픽선수촌은 눈물바다가 됐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이별의 순간. 한국 선수들은 함께 찍은 사진과 손편지를 북한 선수들에게 선물했다. 북한 선수들은 “평양냉면 먹으러 평양에 꼭 오라”고 전했다. 지난 20일, 7∼8위 결정전인 스웨덴전을 끝으로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일정을 마친 남북 선수들은 폐회식(25일)에 함께 참석한 뒤 이날 눈물 속에 이별했다. “북한 선수들과 헤어질 때 울 것 같다”던 세라 머리(30·캐나다) 감독은 북한 선수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한국 선수에게 북한 선수는 낯선 이방인이었다. 남북한 선수들은 서로 경계했고,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빙판에서 몸을 부딪치고 함께 식사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라커룸에서 수다를 떨고 방탄소년단(BTS) 등 K팝을 함께 들으며 친해졌다. 한 달간 동고동락하면서 정이 쌓였고, 비로소 하나가 됐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이 24일 오후 강릉 올림픽파크 코리아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릉=우상조 기자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이 24일 오후 강릉 올림픽파크 코리아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릉=우상조 기자

 
북한 선수의 합류 전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팀에는 또 한 그룹의 이방인이 있었다. 랜디 희수 그리핀(30), 박윤정(26·마리사 브랜트), 박은정(29·캐롤라인 박), 임대넬(25·임진경), 이진규(18·그레이스 리) 등이다. 
 
미국인 아버지를 둔 그리핀에게 한국은 어머니의 나라다. 그리핀은 2017년, 캐나다 교포 2세인 박은정과 임대넬은 2015년 올림픽 출전을 위해 특별귀화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4개월 만에 미국 가정에 입양된 박윤정은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국적을 회복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이진규는 부모 모두 한국인이지만 이중국적자다.
 
국내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를 찾을 수 없었던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맨땅에 헤딩’을 했다. 미국 대학의 선수 명단을 구한 뒤 이름에 ‘KIM’ ‘PARK’ 등이 들어간 선수에게 “혹시 한국계인가. 그렇다면 귀화해서 뛸 생각이 없나”를 물어보는 e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박은정, 임대넬, 그리핀을 찾아냈다. 박윤정은 레베카 베이커 골리 코치의 추천으로 팀에 합류했고, 이진규는 지난해 미국 전지훈련 도중 머리 감독 눈에 띄었다.
 
한국·북한말·영어 … 통역 하느라 바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서 맹활약한 미국·캐나다 출신 대표 선수들. 왼쪽부터 박은정, 랜디 희수 그리핀, 이진규, 박윤정, 임대넬. [우상조 기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서 맹활약한 미국·캐나다 출신 대표 선수들. 왼쪽부터 박은정, 랜디 희수 그리핀, 이진규, 박윤정, 임대넬. [우상조 기자]

 
그리핀은 “모든 선수가 새 팀에 적응할 때는 어려움을 겪는다. 북한 선수들도 단일팀에 처음 합류했을 때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길게는 10년 이상 대표팀을 지키며 똘똘 뭉쳤던 기존 선수들에게 이들은 낯선 존재였다. 박은정은 “처음 대표팀 트라이아웃을 할 때 한국 선수들이 나와 대넬을 향해 한국말로 뭐라고 했다. 느낌이 이상해 ‘너희들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다’고 했더니, 그 후로 모든 게 좋았다”고 기억했다. 그리핀은 “모든 선수가 새 팀에 적응할 때는 어려움을 겪는다. 북한 선수들도 단일팀에 처음 합류했을 때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팀은 지난달 25일 북한 선수단 15명(선수 12명, 감독 1명, 보조인력 2명)이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입촌하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임대넬은 “단일팀이 처음 결성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모든 게 불확실했다”며 “걱정을 했는데 북한 선수도 올림픽 출전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뛰고 있다는 걸 느꼈고,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북 선수 올 때 당황 … 이젠 그들을 사랑
 
올림픽 기간 박윤정과 북한 김은향이 다정하게 셀카를 찍는 모습이 목격됐다. 박윤정은 “사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우리 뜻과 무관하게) 북한 선수들이 온다는 말에 주저하는 마음이 생겼다”며 “북한 선수들은 팀에 잘 녹아들었고, 우리도 그들을 사랑했다. 스포츠를 통해 남북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게 우리에겐 아이스하키 이상의 의미”라고 평가했다.
 
단일팀의 첫 골은 희수 그리핀이 넣었다. 사진은 당시 사용된 퍽. [연합뉴스]

단일팀의 첫 골은 희수 그리핀이 넣었다. 사진은 당시 사용된 퍽. [연합뉴스]

 
처음 한 달간 단일팀에는 세 가지 언어가 필요했다. 통역을 자처한 단일팀 공격수 조수지가 영어를 한국말과 북한사투리로 풀어줬다. 또 캐나다·미국 출신 선수와 남북한 선수가 어울리도록 가교 구실도 했다. 
 
코치진은 ‘남북하키용어집’까지 만들어 공유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일상 대화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이스하키 용어는 서로 달랐다. 주요 용어 75개 중 남북이 같이 쓰는 말은 퍽·스케이트·아이싱 3개뿐이었다. 머리 감독과 영어권 선수들을 위해 북한 용어의 발음을 알파벳으로 병기했다. 이진규는 “처음에는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북한 선수들이 영어 표현에 잘 적응했다. 나중에는 패스나 슛 같은 단어도 이해했다”고 말했다.
 
북한 선수들도 14일 일본전은 꼭 이기고 싶어 했다. 1-4로 진 이 경기에서 박윤정의 패스를 받은 그리핀은 단일팀의 올림픽 첫 골이라는 역사적인 골을 넣었다. 그리핀은 “내가 넣은 골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모두 함께 만든 골”이라고 말했다. 
 
이곳저곳 튕기는 바람에 그리핀도 처음엔 골인 줄 몰랐다. 이 골이 된 퍽은 캐나다 토론토의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명예의 전당에 영구 전시된다. 그리핀은 “이제야 그 골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알게 됐다”며 “이젠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아주 기분 좋은 일”이라고 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이 24일 오후 강릉 올림픽파크 코리아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릉=김원 기자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이 24일 오후 강릉 올림픽파크 코리아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릉=김원 기자

 

북 선수 귀국 “평양냉면 먹으러 오라”
 
한국 대표팀은 오는 4월 이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3부리그)에 출전한다. 5명 모두 이 대회까지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다. 하지만 그 후는 장담할 수 없다. 박윤정을 뺀 4명은 아직 이어가야 할 학업이 남아 있다.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그리핀은 듀크대 생물학과 석·박사 통합 과정에 재학 중이다. 2주간의 휴식기 동안 밀린 논문을 쓸 계획이다. 박은정은 컬럼비아대 의과대학원, 임대넬은 캐나다 라이어슨대를 다니는 중이다. 이진규는 올림픽에 출전하려고 고등학교(새턱 세인트 메리 스쿨)를 1년 휴학했다. 졸업 후 예일대 진학이 예정돼 있다.
 
그리핀은 “올림픽 기간 일본 선수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들은 협회나 후원 기업의 탄탄한 지원 덕분에 아이스하키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한다”며 “우리도 올림픽을 앞두고는 많은 지원을 받았다. 지원이 올림픽 이후에도 이어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실업팀(수원시청)이 생기지만 한 팀만으로는 경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릉=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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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